이경규
‘중년 버라이어티’ 이끄는 이경규
'혹독한 설움’ 자신 돌아보는 계기
도우미 자처 ‘양보하는 팀워크’ 주도
“데뷔 29년…‘참을 인’ 석자 새겼죠”
'혹독한 설움’ 자신 돌아보는 계기
도우미 자처 ‘양보하는 팀워크’ 주도
“데뷔 29년…‘참을 인’ 석자 새겼죠”
“제가 하는 영화사 이름 ‘인앤인 픽쳐스’에서 ‘인’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참을 인’ 자입니다.” 이경규가 말랑해졌다. 툭하면 화내고 버럭 하는 캐릭터로 한 시대를 풍미한 그가 나이 오십 넘어 성격개조를 선언했다. 요즘 한창 인기가 높은 ‘남자의 자격’ 방송 1년을 맞아 만난 이경규는 정말 변해 있었다. 모든 것의 우선순위가 ‘참자’로 바뀌었다고 한다. “참을 인 자 세개를 가슴에 품고 살렵니다. 욱하는 성격 때문에 적이 늘어요. 사람들이 떠나갔어요. 예전엔 후배들이 인사하면 고개만 까딱했는데 이젠 반갑게 두팔 벌려 그들을 맞아요. 이렇게 안하면 이젠 힘들어요. 야, 내가 봐도 내가 많이 변했네.” 잘린 그날, 이경규의 새 인생이 시작되다 이경규의 힘은 프로그램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강한 주도력이었다. 그런 그가 부드러운 남자가 되기로 한 데는 최근 몇년 새 그에게 벌어진 일들이 계기가 됐다. 20여년을 1인자로 대접만 받던 그는 혹독한 설움을 당했다. 시청률이 예전만 못해지면서 영원한 친정 같았던 문화방송을 떠나야 했고, 이후 진행한 프로그램들도 단명하면서 생애 최대의 위기가 왔다. “엠비시에 나갈 테니 자르지는 말아달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자르더라고요(웃음). 그날이 저를 되돌아보는 계기였습니다.” 그는 인터넷에 오른 비판글·악플을 모두 읽었다고 한다. “저를 분석한 글이 얼마나 많은지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잘나갈 때는 비판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는 주의였어요. 피디들에게도 과감하게 이야기하고…. 내리막길을 걸어보니까 그런 것들을 돌아보게 된 거죠. 그랬더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요.” 얼마 전에는 여성 스태프들에게 립글로스도 돌렸다. 이경규, 자상해졌다. 중년 예능스타들의 이심전심 생존경쟁
물론 에두르지 않고 날아가는 그의 직격탄 자체가 사라질 수는 없는 법이다. 요즘 최고 인기 예능이자 이경규의 부활을 만들어낸 <해피선데이>의 ‘남자의 자격’ 코너에서도 이윤석을 향한 이경규의 구박은 멈추지 않는다. 그래도 함께 ‘늙어가는’ 동료 같은 후배에 대한 애정이 절로 묻어난다. 평균 나이 40살 아저씨들이 지지고 볶아대며 매주 새로운 과제를 좌충우돌 허둥지둥 풀어내는 이런 모습이 ‘남자의 자격’을 아이돌 스타 없이도 1년 만에 시청률 20%를 넘나드는 인기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냈다.
< 해피선데이 > '남자의 자격' 코너의 한 장면
혼자 북치고 장구치면서 프로그램을 책임졌던 이경규는 ‘남자의 자격’에서 도우미를 자처하고 있다. 다른 출연자들도 서로 오히려 양보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이런 팀워크가 인기의 비결 뒤에 숨어 있다. “피디가 큐 사인을 내도 모두 가만히 있을 때가 있어요. 대본 없이 알아서 진행하는 것인데도 서로가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려고 하는 거죠.” 서로 도우면서도 후배들에게 밀리지 않고 살아남겠다는 왕년 스타들의 ‘생존경쟁’도 재미를 더한다.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유일한 버라이어티라 생각합니다. 우리 나이가 되면 밀려납니다. 저희가 안 밀리려고 버티고 있다는 것을 시청자들이 절로 느끼시면서 자기 주변 힘 빠진 중년 내 남편, 우리 아빠로 보아주시는 것 같습니다.” “저 권력자 아니에요” 20여년 이경규를 정상에 있게 해준 원동력은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드는 그의 감식안이었다. 강호동을 발굴해 개그맨으로 변신시켰고, 록스타 김태원의 예능 자질을 가장 먼저 눈치챈 이가 이경규다. “일단 만나면 느낌이 오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권합니다.” 그렇게 발굴한 후배들이 그를 뛰어넘고 있다. 후배의 성장이 반가우면서도 혹시 질투도 나지 않을까? “(후배들이) 정말 열심히들 하는구나 싶어 기분 좋은 일이죠. 그런데 제가 개그맨으로 최정상에 올라가봤고, 또 내려오는 것도 경험해보니 그렇게 될 때 잘 극복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해요.” 오랫동안 이경규를 따라다닌 표현이 ‘규 라인’이다. 자기 프로그램에 후배를 끼워넣는 권력자란 이야기다. 그는 웃었다. “제 밥그릇도 못 챙기는데 누굴 챙기겠습니까. 다만 추천은 합니다. 김구라를 ‘라디오 스타’에 적극적으로 추천했습니다. 윤석이는 서로 잘 맞아서 같이 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캐스팅은 피디의 영역입니다. 그 경계선을 넘는 건 월권입니다. 그럴 권력도 없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는 표정 개그로 브라운관에 나타난 지 29년, 내년이면 데뷔 30돌이다. 소감을 묻자 “벼락을 맞은 것 같다”고 한다. ‘번쩍’하는 순간 그 세월이 지나갔다는 것이다. 피디들은 대부분이 동생이 됐고, 1시간 방영분을 6시간 넘게 찍는 변화도 만만찮다. 그래도 영화 <복수혈전>을 기어코 찍었던 도전정신은 그대로다. 내년에는 ‘30주년 단독 콘서트’를 하겠단다. 영화는? “감독은 10년 뒤 다시, 당장은 올 연말 개봉 영화부터 만들 겁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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