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음악방송 감독 티에리 로로
재즈 하모니카 다큐 들고 제천에 온
벨기에 음악방송 감독 티에리 로로
벨기에 음악방송 감독 티에리 로로
“27년 동안 방송 일을 했지만 정치적 이유로 프로그램 기획이나 편성에 영향을 받은 기억은 없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프랑스어권 공영라디오텔레비전방송(RTBF)의 음악방송 감독인 티에리 로로(사진)의 말이다. 이 방송국의 공연·연주실황 녹화·중계 담당 책임자인 그는 세계적인 재즈하모니카 연주자 투츠 틸레망의 인생역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하모니카의 전설, 투츠 틸레망>이 제천국제영화음악축제에 초청돼 한국에 왔다. 14일 충북 제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별걸 다 묻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벨기에는 현지 언어가 플랑드르어권(600만)과 프랑스어권(400만명)으로 나뉜 탓에 방송 역시 두 체제로 되어 있다. 프랑스어권 공영방송국은 일반종합, 문화예술, 외국인용 채널로 구성돼 있으며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가 확실하다고 전했다. 그 중심은 13명의 이사진. 이들은 국회 정당별 의석 비율에 따라 정당 추천 인사들로 짜이는데 정당들은 자기 당의 이념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명망급 인사를 파견한다. 이사진의 만장일치를 거치도록 하는 뉴스앵커 선정 등 민감한 사안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대부분은 국민에 대한 약속인 운영지침에 따라 결정을 내리고 있어 자신과 같은 방송 실무자들은 프로그램이 정치적 영향을 받는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 들고 온 작품은 두 언어권 융합을 지향하는 공영방송의 이념에 딱 들어맞는다고 그는 소개했다. 투츠가 플랑드르어권의 부모한테서 태어났지만 할머니는 프랑스어권 출신이라는 것. 그런 환경에서 자란 그가 세계적인 연주자로 성장해 벨기에 국민의 우상이 된 덕분에 두 언어권 주민이 고르게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그동안 만든 다큐 20여편 가운데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했다. 더군다나 투츠는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 천식을 앓는 등 어려운 조건을 극복했고, 장난감 취급을 받던 민중적인 악기 하모니카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완성했다는 등의 동화적 요소도 함께 갖춰 금상첨화였다는 것.
투츠는 다큐 촬영진의 모든 요구에 응하면서 단 한가지 조건을 내세웠다고 했다. 프랑스어권 담당자가 책임지고 만들어달라는 것. 투츠가 프랑스어권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두 언어권을 아우르려면 그런 편이 낫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총책임은 로로가 맡았고 실무진들은 플랑드르 쪽 사람들로 짰다고 전했다.
<하모니카의 전설>(63분)은 2008년 제작돼 2009년 콘서트 실황중계에 앞서 공중파를 탔다. 한국에 소개된 버전은 일부 곡을 삭제한 52분짜리 해외판이다. 로로는 “방송을 통해 음악인과 일반인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한 뒤 인터뷰 자리를 털었다.
제천/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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