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리플리>(문화방송)
TV 보는 남자
<미스 리플리>(문화방송)는 이상한 드라마다. 거짓말을 일삼는 장미리(이다해)는 뻔뻔하지 않고, 심지어 유약하고 만성 불안증에 시달린다. 그에게 이용당하는 사람들은 장명훈(김승우)과 송유현(박유천), 문희주(강혜정)에 이르기까지 모두 진심으로 장미리를 대한다. 이들은 성품도 좋다. 송유현은 재벌 2세의 전형을 벗어나 실력과 애정으로 일하고, 문희주는 밝고 긍정적인데다가 재능까지 겸비했다. 장명훈은 노력해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뿐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아낀다. 냉혈한처럼 보이는 것도 공과 사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성향 때문이다. 모두들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고난과 시련도 자신의 힘으로 극복한 사람들이다. 이를테면 어른이다.
반면 장미리의 만성 불안증은 그의 거짓말이 치밀한 계획이 아니라 거듭된 우연을 통해 우발적으로 이뤄졌다는 데 기인한다. 그는 나쁘지 않다. 단지 억울했을 뿐이다.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그 순간부터 내내 억울했을 뿐이다. 이 억울함은 그때 그 일만 일어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가정법에서 기인한다. 자신이 가진 한 줌의 재능과 우연이 겹쳐져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되지만, 이 기반이 바스러질 만큼 허약하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자신의 거짓말에 사로잡혀 현실을 도피하고 꿈도 꾸지 못했던 미래를 실제로 꿈꾸게 된다. 그래서 장미리가 매회 처하게 되는 위기상황은 거짓말 때문이 아니라 거짓말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자신 때문이다.
이때 눈에 띄는 건 장명훈이다. 장명훈으로 나오는 김승우는 진심을 다해 자기 삶을 사는 사람을 연기한다. 회장 딸과 결혼한 것도 진심이었고, 재산을 노리고 결혼했다는 얘기를 듣지 않으려고 누구보다 노력했다. 실력과 인품으로 인정받은 남자는 그 모든 상처를 자기 것으로 껴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종종 장명훈의 얼굴은 누구보다 피로해 보인다. 시청자가 설득당하는 것은 김승우의 일관된 톤 덕분이다. <미스 리플리>는 그의 능력을 새삼 드러내는 드라마다. 장명훈이 장미리를 제자리로 돌려보내겠다고 다짐하는 건 복수가 아니라 자기 치유를 위해서다. 이 드라마에 정작 ‘나쁜 놈’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두들 뭔가를 지키려고 애쓸 뿐이다. 최선을 다해, 그게 어떻게 보일지라도, 자신이 믿는 정의에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더없이 결말이 궁금하다. 최후의 순간에 장미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 뒤에 남은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진심과 욕망이 계급 구조 안에서 이토록 거칠게 충돌하는 드라마를 우리는 또 어떻게 기억해야 할 것인가. 차우진/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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