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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북쪽 이웃’에 대한 새로운 드라마적 상상력

등록 2011-08-12 20:00

드라마 <스파이 명월>(전현진 극본·한국방송)
드라마 <스파이 명월>(전현진 극본·한국방송)
TV 보는 여자
드라마 <스파이 명월>(전현진 극본·한국방송)은 남한의 한류스타 이강우(문정혁)를 포섭할 목적으로 남파된 간첩 한명월(한예슬)의 활약을 그린다. 남파 간첩 캐릭터가 타이틀롤(제목과 같은 이름의 주인공)까지 꿰찬 드문 사례다. 어디 주인공뿐인가. <스파이 명월>에는 북한의 최정예 특수공작원 최류(이진욱)와 20년 이상 남한에서 암약중인 고정간첩 한희복(조형기), 리옥순(유지인) 같은 간첩들이 떼로 등장해 조국과 인민을 위해 목숨 걸고 임무를 완수하려 든다. 이처럼 불순한 세력들이 암약하건만 드라마 초반 잠깐 등장했던 국가안전보장국(NSA) 요원들은 그림자도 비치질 않는다. 한반도의 평화와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협하기엔, 간첩들의 면면이 너무 ‘찌질하기’ 때문이다.

훈련이야 남부럽지 않게 받았다. 특수공작원을 꿈꾸는 한명월은 영화 <쉬리>의 이방희(김윤진)나 드라마 <아이리스>의 김선화(김소연) 못지않은 칼질·총질·발길질 실력을 갖췄다. 그런데 부지런히 갈고닦은 이 실력을 남한에서 액션 배우로 활동하는 데 주로 쓴다. 흥신소에서 빈둥대던 고정간첩 한희복은 “20년 만에 날벼락 같은 임무를 맡고 당황한 나머지” 북쪽에 엉뚱한 메시지를 전송한다. 화끈한 미인계로 전설적인 스파이가 된 리옥순이 한명월에게 ‘교본’이라며 건넨 것은 1970년대에나 봤음 직한 에로영화 비디오테이프다. 사명에 불타는 그들은, 남한에선 그저 변두리에 사는 소외된 이웃이다. 신명을 바쳐 일할수록 대한민국의 안전이 아니라 그들의 인생이 꼬인다. 애초 한류스타를 꼬셔서 월북하게 만들라는 명령을 내린 그들의 보스부터가 웃기는 이다.

<올인> 등을 집필한 드라마 작가 최완규는 언젠가 “우리는 유일한 분단국에 산다. 분단을 소재로 상상력을 발휘하면 세계적으로 팔리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민족적 비극으로 장사를 하자는 얘기냐며 펄쩍 뛰는 분이 있을지 모르나, 남다른 상황이 빛나는 창작물의 토대가 된다는 점은 동서고금 문학이 방증한다. 문제는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기엔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는 거다. 북한은 ‘현존하는 위협’이며, 그들을 존중하고 소통하려는 시도는 드라마 <아이리스>처럼 제3의 적에 공동으로 맞서는 경우에 한해 설득력을 얻는다.

그런데 <스파이 명월>은 시침 뚝 떼고 이렇게 말한다. “한반도 북쪽에 만만하고 웃기는 이웃이 살고 있습니다.” <아이리스>의 김선화는 돌아갈 조국을 잃고 떠돌며 분단의 비극을 온몸으로 현현한다. <스파이 명월>의 한명월과 그의 동지들은 웃겨서 친근하다. 기왕 함께 살아야 한다면 내 이웃이 한명월처럼 웃겨서 친근하고 측은해서 손 내밀고 싶은 이였으면 좋겠다. <스파이 명월>은 ‘위협적인 상대’를 극단적으로 희화화하는 방식으로 분단을 소재로 한 드라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미경/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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