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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남자 능력·여자 외모’ 공식 깨질때 재미 ‘배가’

등록 2011-11-14 20:09수정 2011-11-17 14:37

미혼남녀 짝짓기 SBS ‘짝’
세태 드러낸 구애 경쟁 재미
스펙 따른 속물 근성에 공감대
‘○호님’ 호칭 스펙 강조 역효과
남녀의 짝짓기 과정을 담는 프로그램 <짝>은 미혼 남녀 12명을 한 공간에 풀어놓고 남자와 여자의 솔직한 구애 행태를 드러낸다.  에스비에스 제공
남녀의 짝짓기 과정을 담는 프로그램 <짝>은 미혼 남녀 12명을 한 공간에 풀어놓고 남자와 여자의 솔직한 구애 행태를 드러낸다. 에스비에스 제공
“짝 지어주는 프로그램이 아니에요.”

미혼 남녀의 짝짓기 과정을 담는 프로그램 <짝>(에스비에스 수 밤 11시15분)을 연출하는 남규홍 피디의 말이다. 여느 짝짓기 예능 프로그램처럼 ‘커플 탄생’이 목적이 아니라 짝을 찾는 과정에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남 피디의 말처럼 <짝>은 일찌감치 남녀의 신상명세를 공개하고 즉각 맘에 드는 상대를 택하는 기존 짝짓기 프로와는 다르다. 남녀 12명이 ‘애정촌’이라는 합숙촌에서 1주일 동안 함께 생활하며 짝을 찾는 과정을 관찰하는 방식을 취한다. 입촌 첫날 첫인상으로 마음에 드는 상대를 정하지만, 이튿날 나이와 직업·학벌 등 스펙을 까발린 뒤 다시 짝을 정하면서 스펙을 비롯한 상대방의 ‘배경’이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드러난다. 남은 5일 동안 서로를 탐색한 뒤 마지막 날 최종결정을 통해 짝짓기에서 이성의 ‘매력’이 ‘배경’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 엿보는 식이다.

지난 3월24일 시작한 <짝>은 출연자들을 1호, 2호, 3호 식으로 지칭하면서 극심하게 대상화시키는 연출방식으로 선정성 논란도 빚었지만, 심야시간대 시청률 8~10%를 유지하며 ‘롱런’ 예능 프로로 자리잡은 느낌이다. 12명 한팀의 이야기를 2주일에 걸쳐 방영하며 지금까지 200명가량이 출연했다.

■ 남녀의 리얼한 구애 경쟁 <짝>은 마치 <동물의 왕국>을 보는 듯 12명의 남녀를 한 공간에 풀어놓고 생활하게 한다. 그 과정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연거푸 바뀌는가 하면 ‘저 사람을 내 것으로 만들겠다’ 전략을 짜고, 저울질을 하는 등 사랑 앞에 남자와 여자의 본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시청자는 관찰자 노릇을 하면서 더 사실적으로 느끼게 되고, 출연자는 카메라가 늘 따라다니는데다 애정촌을 벗어날 수 없다는 스트레스 등이 작용해 자신의 바닥까지 드러내고 만다. 한 남자 출연자는 블로그에 “스트레스가 쌓여 자신을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가 없었다”고 썼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출연자들의 행동과 심리가 솔직하게 드러나는 것이 재미”라고 말했다.

<사랑의 스튜디오> 같은 종전 짝짓기 프로들이 학력 좋고 얼굴 예쁜 이들이 출연하는 ‘그들만의 리그’였다면, <짝>은 시청자로부터 ‘남 일 같지’ 않다는 공감을 사고 있다. 1회에서 남성 출연자가 여성 출연자의 외모에 반해 접근했다가 여자의 직업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변심하는 모습 속에서 시청자 자신의 처지를 발견하는 식이다. 시청자 장서연(34)씨는 “예쁘다고 좋아하던 남자들이 회사를 그만두자 슬쩍 발을 빼던 내 경험과 비슷했다”고 말했다. 스포츠카를 타고 온 남자에게 열광하는 여자를 보고 일부 시청자는 “속물 같다”고 비판하지만 외려 그것이 솔직한 세태를 반영한 것이란 지적도 있다.

연애, 불륜담을 많이 다뤘던 한 드라마 작가는 “이성을 만나고, 선택에 앞서 간을 보는 것은 우리 사는 곳에서 자연스레 일어나는 일들”이라며 “그것이 <짝>의 장점”이라고 평했다.


■ 남자는 능력? 여자는 외모? <짝>에서 남자들은 대부분 예쁜 여자를, 여자들은 능력 있는 남자를 택했다. 그러나 ‘남자는 능력, 여자는 외모’라는 공식을 깨는 커플이 등장할 때 재미는 더 커진다. 지난 3일 방송에서 복싱선수 남자 2호가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도 금융회사 직원으로 짱짱한 남자 7호와의 경쟁에서 여자 3호와 짝을 이룬 것에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한 공간에 모인 남녀들의 구애전략의 차이도 눈에 띈다. 남자는 짝짓기 성공을 위해 두 여자를 두고 전략을 짜는 경우가 종종 있는 반면, 여자는 대부분 한 남자에게 올인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1회에서 한 여자는 자신을 좋아하던 남자가 다른 여자를 선택하자 “그냥 있으면 안 되겠다”며 쌈을 싸서 먹여주며 구애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남 피디는 <짝>을 연출하면서 “여성들의 적극적인 태도에 놀랐다”고 한다. 많은 여성 출연자들이 마음에 둔 남자 앞에 가려고 물에 뛰어드는가 하면 서슴지 않고 신경전을 벌였다. 남 피디는 “여성들의 달라진 연애관을 시청자들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임경선 연애칼럼니스트는 “방송에서 그런 사람들을 출연시켰을 뿐 현실에서는 여성들이 여전히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여자들의 적극성은 출연자 선발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제작진은 프로그램 게시판을 통해 신청을 받는 한편으로 알음알음 소개로 출연자를 뽑는다. 그중에서 “캐릭터나 특성이 분명한 사람을 뽑는다”고 한다. 한 회에 키, 외모, 학벌, 돈, 집안 등 여러 조건을 다양하게 배치한다. 외모를 중시하는 남자가 나올 땐 외모가 뛰어난 여자를 출연시키는 식이다. 남 피디는 “적절하게 배치할 뿐 제작진은 출연자들의 이야기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스펙과 등급 따져 줄세우기? <짝>은 출연자들을 이름 대신 ‘○○○사장 남자 1호’, ‘○○○직원 여자 1호’ 식으로 지칭한다. 모든 참가자를 같은 조건에서 바라보기 위한 것이라고 제작진은 밝혔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외려 그 사람의 스펙을 부각시키는 역효과를 낳는다.

방송이 사람을 물건처럼 상품화하고 외모와 직업 등으로 줄 세운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재근 평론가는 “이름이 지워지면서 고유성도 함께 지워져 스펙만 더 도드라진다”며 “스펙을 따지고 그걸로 등급을 매기는 문화를 조장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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