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진 기자
현장에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최근 가장 즐겨 쓰는 단어 가운데 하나는 ‘동락’이다. 한자로 ‘한가지 동’과 ‘즐길 락’ 자를 쓰는 동락(同樂)은 ‘함께 즐긴다’는 뜻이다.
최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변화와 미래, 그리고 동락의 길’이라는 주제로 열린 건국대 초청특강에서 “우리 국민들은 힘든 시절을 동고해왔지만, 삶이 안정된 지금 동락하지 못하고 있다. 진정한 동락을 위해 함께 나누고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0월 남산미디어포럼 초청강연과 7월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 강연에서도 그는 동락을 강조했다. 이따금 기자들과 만나는 사석에서도 동락의 의미를 설명하곤 했던 그다.
12월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 차려진 종합편성채널(종편) 4곳의 합동 개국행사에서 최 위원장과 김황식 국무총리, 박희태 국회의장 등이 샴페인을 터뜨리며 ‘동락’하고 있을 때, 밖에서는 영하의 칼바람을 뚫고 “방송의 공공성·여론 다양성 사수”를 외치는 함성이 메아리쳤다. 신문·방송 겸영에 동의할 수 없어 ‘종편행 열차’에 몸을 싣지 않은 중소 신문·방송의 목소리였다. 그것은 또한 종편이 길을 튼 방송사 직접 광고영업의 후폭풍으로 당장 생존 갈림길에 놓인 지역방송·종교방송의 목소리이자 종편 출범으로 자신의 채널을 잃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의 절규이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방송의 공공성’을 주제로 한 최 위원장의 강연이나 발표, 인터뷰 등을 봤던 기억이 없다. 1일 종편 개국행사 때 그의 축사에도 ‘방송의 공공성’이란 문구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4일 방통위 대변인실에 방송 공공성에 관한 최 위원장의 주요 발언들을 구했다. 역시 그런 발언은 없었다. 대신 그는 광고 시장의 ‘파이’를 키우겠다는 말을 흔히 해왔다. 광고 시장이 커져야 방송산업이 발전하고, 그래야 모든 미디어가 동락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최 위원장 뜻대로 광고 시장이 커진다 해도 모든 미디어가 그 안에서 동락할 수 있을까. 종편을 제외한 상당수 언론은 기사를 ‘무기’로 대놓고 광고주를 압박할 만큼 얼굴이 두껍지 않다. 그의 동락이 ‘그들만의 동락’이 아니었다면, 남은 임기 동안이라도 방송의 공공성, 여론 다양성 등에 대해 돌아봤으면 한다. 그게 더 큰 동락의 길일 것이다. 방통위의 설립 목적은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방통위 누리집에 그렇게 나와 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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