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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두 괴물의 싸움이라 불리는 공동집필…“처음엔 정말 격렬했죠”

등록 2012-08-02 20:25수정 2012-09-07 10:43

드라마작가 김영현(왼쪽)씨와 박상연씨는 이 시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야기꾼이다. “1주일에 70분짜리 드라마 2회 분량을 혼자 쓰는 건 정말 잔인한 일이기에 같이 쓴다”고 했다. 원고료는 “거의 반띵(반으로 나눔)한다”고 한다.두 작가가 비가 내린 지난달 5일 서울 여의도 공동작업실 앞 공원을 우산을 쓴 채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드라마작가 김영현(왼쪽)씨와 박상연씨는 이 시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야기꾼이다. “1주일에 70분짜리 드라마 2회 분량을 혼자 쓰는 건 정말 잔인한 일이기에 같이 쓴다”고 했다. 원고료는 “거의 반띵(반으로 나눔)한다”고 한다.두 작가가 비가 내린 지난달 5일 서울 여의도 공동작업실 앞 공원을 우산을 쓴 채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우리는 짝] ‘드라마 스타작가’ 김영현·박상연

대장금-공동경비구역의 두 작가
선덕여왕·뿌리깊은 나무 등 합작

김영현과 박상연. 한국 드라마 업계에선 두 사람이 찢어지길 바란다. 둘이 따로 쓰면 이른바 ‘특급 작가’가 한 명 더 늘어나는 셈이기 때문이다. 국내를 넘어 세계로 수출된 초유의 히트작 <대장금>(2003)을 쓴 김영현(46) 작가와 한국 영화사의 수확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2000)의 원작 작가이자 영화 <고지전>을 집필한 박상연(40) 작가. 혼자서도 특출한 소출을 거둔, 드라마 판에서 흔히 쓰는 말로 ‘전생에 나라를 구한 업적이 있지 않고서야’ 평생 갖기 힘든 작품 목록을 각기 지닌 두 작가가 공동집필을 고집한다. 왜?

두 사람, 연애하는 거 아닐까? 방송가에선 이렇게 ‘추측’을 하는 이들도 있다. 둘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손사래친다.

“그런 말 많이 듣는데요, 아니에요.”(김영현)

“연애를 하면 결혼을 하고 살지, 왜 이러고 있겠어요.”(박상연)

지난달 5일 서울 여의도 한켠에 있는, 두 작가의 집필실 겸 두 작가가 만든 ‘작가기획사’ 케이피앤쇼(KP&Show) 사무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케이피앤쇼 소속 보조작가의 올해 입봉작(데뷔작)을 함께 기획하고 토론하느라 바쁘다고 했다. ‘케이피앤쇼’는 두 작가와 보조작가 3명으로 구성된 회사다. 김·박 두 작가의 성에서 영문 첫자를 따서 “아무렇게나 지은” 이름이라는데, 말인즉슨 ‘김과 박이 쇼를 한다’는 뜻이다.

2007년 고현정·하정우의 <히트>부터 2009년 이요원·고현정의 <선덕여왕>, 지난해엔 세종의 한글창제담에 문자와 권력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담은 <뿌리깊은 나무>까지, 두 이야기꾼의 공동작업은 어김없이 ‘화제’와 ‘시청률’ 두 토끼를 잡았다. 그 사이사이, 케이피앤쇼 이름으로 <최강칠우>와 <로열 패밀리> 같은 드라마를 기획해 내놓았다.

처음 본 건 12년 전, 부산에서였다. 2000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 떼를 지어 영화 구경을 간 피시통신 퀴즈동호회 회원들 모임에서라고 했다. 김 작가에 대한 박 작가의 첫인상은 “뭔가 되게 우울한 사람인가 보다”였고, 그 역은 “재기발랄하고 좀 튄다는 느낌”이었다. 당시 28살의 박 작가는 한달 전 <공동경비구역…>이 개봉해 “잘나가는 시나리오 작가”였고, 34살의 김 작가는 지금으로 보면 격세지감, “몇 년을 씨름해온 드라마 편성이 잘 안 풀려 너무도 못 나가던 작가”였던 것이다.

“7년째 예능작가를 하다가 관둔 뒤, 3~4년을 준비한 단독 집필 입봉작 <신화>가 이리저리 까여서 분노와 고통의 세월을 보내던 중에, 제 후배작가가 ‘그냥 두면 큰일 내겠다’ 싶어 자신이 속한 동호회 회원들이 부산에 영화를 보러 간다면서 같이 가자고 해서 갔죠.”(김)

영화만 줄창 하루 서너 편씩 본 뒤, 별로 말도 섞지 않았던 ‘인연’은 귀경 뒤 여의도 작가들의 사랑방 구실을 했던 김 작가의 집필실에서 박 작가도 이따금 놀러 오면서 지속됐다. “만나서 한 거는 수다밖에 없는데 박 작가는 에스에프 영화나 소설의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 등등 수다가 굉장히 잘 떨어지는 상대”(김)였고, “때아닌 사투(사상투쟁)까지 뒤늦게 했다”(박)고 했다.

“얘기하다 보면 옛날이야기 하게 되잖아요? 둘 다 대학에서 운동권 물을 먹었지만, 대학 졸업 뒤 ‘애국적 사회진출’ 안 했으니까, 다 잊고 살잖아요. 때늦은 무슨 사투야, 지금 와서 무슨 소용이야 하면서 사투를 하고 그랬어요. 저는 가만히 있는데 김 작가님이 갑자기 ‘엔엘’(NL, 민족해방계열)의 품성론이 말이 되느냐며 분개하면서 따지더라고요. 김 작가는 피디(PD, 민중민주계열) 쪽, 저는 엔엘 쪽이었거든요.”(웃음)(박)

박상연(왼쪽) 작가, 김영현(오른쪽) 작가
박상연(왼쪽) 작가, 김영현(오른쪽) 작가

박상연
연애하냐고요? 그럼 이러고 있겠어요?
김 작가님과 PD-NL 사상투쟁 하기도
‘히트’ 작업땐 인간관계 끝나나 했죠

김영현
박 작가는 수다 떨기 좋은 짝꿍
싸울땐 왜 같이 하자 했나 후회도
이젠 그 단계는 넘어섰어요

수다 짝꿍은 이후 김 작가의 드라마 <대장금>과 <서동요>(2005) 기획회의에 박 작가가 참여해 거드는 것으로 이어졌다. “당시 저는 영화 시나리오 쓰는 데 골몰하고 있던 터라, 드라마 쪽은 잘 몰라서 <대장금>이 그렇게 히트했다는 것도 정확히 그 의미를 몰랐죠. 드라마라는 게 쓰기만 하면 원래 40~50% 시청률은 나오는 건가 보다 했죠.”(웃음)(박)

김 작가는 <서동요>를 마친 뒤인 2006년 7월, “함께 써보지 않겠느냐”고 공동집필을 정식으로 제안했다. 드라마 집필은 생각지도 않았던 박 작가는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지쳐 있었고 “감독이 되지 않는 이상, 시나리오 작가로 먹고살기는 너무도 힘들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던 터였다.

공동집필은 ‘불가능한 시나리오’라는 게 작가들에겐 ‘정설’이다. 국내에서 공동집필 작가는 <발리에서 생긴 일>의 김기호·이선미 작가처럼 부부이거나, 홍정은·홍미란, 홍진아·홍자람 작가처럼 자매 사이다. 가족 아닌 ‘남남’의 공동 창작은 결별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이런 공동작업을 체험했던 혹자는 ‘두 마리 괴물의 싸움’이라고도 표현한다. 창작은 작가가 자신의 영혼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 투쟁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김·박 두 작가도 첫 공동집필작 <히트>를 쓸 때는 이야기 전개를 놓고 “정말 격렬했다”고 했다.

“아, 이걸로 오랜 인간관계가 끝나는구나. 집에 가서도 분이 안 풀리고. 김 작가님도 그랬죠?”(박상연)

“그럼요. 포기하려고 하던 때가 있었죠. 왜 내가 같이 하자고 그랬나 후회하고.”(김영현)

“끝내 이견이 안 좁혀지면 김 작가는 ‘드라마 처음이잖아. 그러니까 내 말대로 가자’, 그랬어요. 그러면 나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어서 ‘같이 하자매?’ 하고 반발하고.”(박)

그런데도 “관계가 무너지지 않았다”(김영현)고 했다. “초반에 우리 둘이 같이 작업한 <히트>와 케이피앤쇼 이름으로 기획·감수한 <최강칠우>가 크게 잘되진 않았어요.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마음 상하기도 했는데도 관계가 더 좋아진 점이 있었어요. 방영은 <선덕여왕>이 먼저 됐지만, 집필계약은 <뿌리깊은 나무>가 빨랐는데, 제가 상연씨에게 24부작(뿌리깊은 나무)은 길지 않으니 같이 해보자고 하고, 그다음엔 50부작(선덕여왕)도 ‘어렵지 않아, 똑같아’ 하며 살살 꼬셨죠.”(김)

“어릴 적부터 글을 쓰는 게 꿈”이었던 박 작가는 소설가로 출발해 시나리오·드라마 작가를 겸하고 있다. 지난해 영화 <고지전>과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로 동시에 작가상 후보에 올랐다. 상은 김 작가와 함께 드라마로만 받았지만, 한 작가가 두 장르에서 후보에 오르는 건 전례없는 일이다. 어릴 적 공부도 잘하는데다 “화를 내는 법이 없었던 범생이”였지만 “텔레비전 드라마 시간에 (가족이) 일찍 잠들어버린 어린 나를 깨우지 않았을 때는 정말 크게 신경질을 냈다”던 김 작가는 “글은 재능으로 쓰는 게 아니라 노력으로 쓰는 것”이라고 했다.

김영현 작가가 차분한 눈망울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조근조근 논리를 펴는 스타일이라면, 박상연 작가는 두 손을 크게 휘젓거나 벌떡 일어나 열변을 토하는 쪽이다.

“싸우다 보면 누가 옳은지 답이 나와요. 더 센 기운을 갖고 설득하는 사람이 이겨요. 100점짜리 아이디어가 나오면 설득이고 뭐고 없죠. 문제는 70점, 80점짜리 아이디어일 때 싸움이 생기는 거죠.”(박)

“싸우다 보면, 드라마관까지 나와요.”(김) “좋은 드라마가 뭔데? 드라마가 뭐라고 생각해!”(박)

“처음에 기분이 상하는 거는 자기 아이디어가 까이니까 기분 나쁜 거거든요. 100%예요. 날 무시하는 거 아냐? 하고 넘겨짚어서 싸움이 나는 거거든요. 이제는 그 단계는 넘어섰죠.”(김)

두 사람은 이야기 구성에 대한 견해가 맞지 않아 일방의 견해만으로 간 적이 <히트> 이후에는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방송가에선 김 작가는 스토리텔링에 능하고 박 작가는 캐릭터 구축이 장점이라며 ‘분업형 공동작업’이란 추측도 나온다. 이에 대해 두 사람은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답한다. “캐릭터와 스토리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보조작가 3명과 함께 하는 회의에서 결정된다고 했다.

두 작가의 드라마는 “캐릭터와 사건을 중심에 놓고 풀어가는” 강한 이야기성을 특징으로 한다. 둘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 시대의 이야기꾼이다. 이 시대 담론을 역사 속에서 퍼올리는 인물(캐릭터)들과 정보와 지식이 스민 고품격 대사, 역동적인 사건과 에피소드가 강하게 시청자를 빨아들인다.

김 작가는 “둘이 같이한다는 건, 두 사람 다 잘 굽히지 않는 편인데도 어쨌든 끝까지 상대방을 설득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박 작가는 “우리는 요샌 너무 믿어서 탈이다. 이제는 상대방이 ‘가’라고 하면 그 뒤에 따라올 ‘나’까지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이날도 <문화방송> 박홍균 피디와 기획회의 약속을 잡아논 상태였다. 박 피디는 <선덕여왕>의 연출자다. 두 작가는 박 피디와 함께 내년에 50부작 드라마를 내보낼 참이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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