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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옛날이 그리운 게 아냐, 그 시절의 내가 그리운 거지

등록 2012-09-07 19:42수정 2015-10-23 14:52

응답하라 1997(2012, 티브이엔(tvN))
응답하라 1997(2012, 티브이엔(tvN))
[토요판] 이승한의 몰아보기
응답하라 1997(2012, 티브이엔(tvN))
<티브이엔> 9월8일(토) 오후 2시 1~6회. 9일(일) 낮 12시 7~14회 연속방송

양평동 이씨는 사촌동생 잔디씨의 집중력에 새삼 감탄했다. 학교다 학원이다 바쁜 와중에 짬 나는 대로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돌려본 결과, 잔디씨는 이제 대사 한줄 한줄을 다 외우는 경지에 도달했다. 티브이 보는 게 업인 이씨도 체력이 달려 그렇게는 못 하는데. 이씨는 그 드라마에 대한 잔디씨의 집착이 소지섭을 향한 애정인지, 아니면 10대의 넘치는 활력인지 헷갈렸다.

“사람 일 참 모르지. 신인 때만 해도 소지섭이 저렇게 스타가 될 줄은 몰랐는데. 너는 소지섭이 <남자 셋 여자 셋>에 나왔던 거 모르지?” 잔디씨가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꾸했다. “언제 이야긴데?” “그게 1997년이던가?” “내가 1996년생인데 알 리가 있나. 고릿적 이야기 알아가 좋겠다.” 그게 벌써 고릿적 이야기 취급을 받을 수준인가 생각하는 동안, 잔디씨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오빠, 오빠야도 그때 막 핑클빵 사 먹고 그랬나?”

얘는 무슨 이야기를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하지? 양평동 이씨는 갑자기 튀어나온 핑클 이야기에 당황했다. “아니. 그때는 아이돌 별로 안 좋아했거든.” “하긴, 오빠는 노래방 가도 조용필 노래 같은 거 부르더라. 영감맹키로.” “네 또래에 소지섭 좋아하는 애도 드물거든? 그런데 그건 왜?” “왜, 케이블 드라마 안 있나. <응답하라 1997>이라고. 옛날엔 저랬구나 싶어서 재미있데. 오빠야도 그때 막 삐삐로 숫자 암호 같은 거 보내고 그랬나?”

이씨는 ‘옛날’이란 말에 기분이 묘해져 잔디씨를 바라봤다. 하기야, 얘한테 <응답하라 1997>은 역사드라마일지도 모르지. “그야 당연히 그랬지. 야, 그런데 넌 물으려면 제대로 물어야지.” “뭔 소리고?” 이씨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그 드라마 보고 할 질문은 ‘오빠는 1997년에 뭐 했는데’가 아니라, ‘오빠는 고2, 고3 때 뭐 했는데’지. 사람들이 1997년에 꿀 발라놓고 와서 그 드라마에 열광하는 게 아니야. 그 무렵의 자신을 그리워해서 보는 거지.”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그리워할 게 없어가 입시지옥을 그리워한다고?” “그게 아니라. 좋아하는 아이돌의 사진을 모으고 앨범을 사재기하며 팬질을 하던 시절의 순수한 애정, 친구들이 세상의 전부였던 단순 명료함,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설렘, 서툴게 연애 비슷한 걸 깔짝깔짝 시도하던 풋풋한 시절의 자신을 그리워하는 거지. 너는 좀 어때? 이제 고1인데 청춘사업은 잘하고 있나?”

이씨의 질문에 잔디씨는 아랫입술을 비죽 내밀며 대꾸했다. “노코멘트다. 그라는 오빠야 니는 어땠는데? 여자친구 많았나?” “여자가 많았으면 내가 티브이 덕후가 되어 있겠니, 지금?”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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