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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우리 사귀어요” 진취적 여성상 뜨는 이유가…

등록 2012-11-05 20:08수정 2012-11-05 20:13

왼쪽부터 <마의>의 김소은, <내 딸 서영이>의 최윤영, <신사의 품격>의 윤진이.  각 방송사 제공
왼쪽부터 <마의>의 김소은, <내 딸 서영이>의 최윤영, <신사의 품격>의 윤진이. 각 방송사 제공
내숭은 없다…사랑은 표현하는 거야
내 딸 서영이·마의·착한남자 등
사랑 쟁취하려는 여자 조연 인기
진취적인 현대 여성상 반영됐지만
어리고 예쁘고 부유하단 공통점은
완벽한 여성 바라는 남성 로망 반영

“우리 사귀어요.”

<한국방송>(KBS) 2텔레비전 <내 딸 서영이>의 조연으로 나오는 최호정(최윤영)은 이상우(박해진)에게 대뜸 사랑을 고백했다. “나 오빠가 좋은 것 같아요. 아니, 좋아요. 자꾸 생각나고, 보고 싶고, 이거 좋아하는 거잖아요”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속마음을 술술 풀어놓는다. 상우가 “난 싫다”며 단칼에 거절하지만 구애는 계속된다. 엄마 김강순(송옥숙)이 보다 못해 집에 가두자 창문을 뛰어넘어 맨발로 상우의 집까지 찾아간다. 김강순은 상우를 잊게 하려고 유학까지 보냈건만 호정은 3년 뒤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상우앓이’다. 이런 그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호정이 귀여운 맛에 본다”며 ‘호정앓이’에 빠졌다.

같은 채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의 강초코(이유비)도 거침없이 사랑을 표현한다. 상대 박재길(이광수)이 싫다고 해도 상관없다. 초코는 그리 잘생기지도 않은 재길에게 “세상에서 가장 잘생겼다”며 “제발 짝사랑만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할 정도다.

이런 상황은 지난여름 벌어졌던 상황의 데자뷔다. 지난 8월 종영한 <에스비에스>(SBS)의 <신사의 품격>의 임메아리(윤진이)도 그랬다. 최윤(김민종)을 짝사랑하는 메아리는 저돌적인 사랑 표현으로 시청자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최윤과 직장 동료가 술을 마신다는 정보를 입수한 메아리는 그곳을 찾아가 옆자리에 앉아 소주를 들이붓듯 마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강변북로(강 변호사) 언니, 이 오빠 좋아해요? 전 좋아해요. 언니가 키도 크고 예쁜데 오빠랑 일도 하니까 너무 짜증나요.” 메아리는 결국 최윤과의 결혼에 골인했다. 시청자들은 ‘메앓이’(메아리앓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었다.

이들의 모습은 드라마들이 전통적으로 그려온 여성상과 거리가 멀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뒤돌아 눈물만 흘리는 순애보적 인물도, 부잣집 멋진 남성의 구애에 수동적으로 넘어가는 신데렐라 모습도 아니다.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라는 모토를 지닌 현대적 여성상이 뒤늦게 드라마에 상륙한 셈이다. 사랑을 고백하려고 하면 남녀를 떠나 거절당할까봐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호정과 메아리는 이런 ‘상식’을 뛰어넘는다는 점에서도 재미를 더한다. 사극에도 임메아리 같은 인물이 등장했다. <문화방송>(MBC) <마의>의 숙휘공주(김소은)다. 숙휘공주는 천민인 마의 백광현(조승우)을 만나려고 일부러 병든 강아지를 데리고 찾아가 그의 볼에 입맞춤까지 했다. 공주와 천민의 사랑은 여느 사극에서 보기 힘든 파격적 설정이다.

하지만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으로 사랑을 쟁취하려는 노력은 아직 조연급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강초코를 제외하면 여유는 있지만 철은 없는 어린 여성들의 행동이라는 공통점 내지 ‘한계’도 드러낸다. <내 딸 서영이>의 최호정은 대기업 이사를 아버지로 둔 전형적인 부잣집 딸이다. <신사의 품격>의 임메아리도 그런 축이다. <마의>의 숙휘공주는 말 그대로 조선의 공주다.

따라서 잇따라 등장한 진취적 여성상이 주는 신선함의 이면에는 어리고, 예쁘고, 부유한 여성들의 적극적 사랑 표현에 대한 남성들의 ‘로망’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남성들에게는 모든 것을 갖춘 젊은 여성이 중년이거나, 천민이거나, 가난한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상황에 대한 동경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성 시청자들 입장으로서는 “이런 여성이 내게도…”라는 심리가 작동한다는 설명이다.

대중문화평론가 황진미씨는 “현대사회에서 누가 그렇게 자기 감정에 충실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는 “사랑을 하려면 보통은 사회적 지위나 돈이나 가족 등등, 많은 것을 따져보고 생각해야 한다”며 “사랑을 위해 앞뒤를 재지 않으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시청자들이 이들에게 박수 치는 이유는 ‘공주’의 순도 100% 사랑이 마치 값비싼 순금과도 같기 때문”이라며 “다만 우리가 가질 수 없는, 동경하는 사치품”이라고 말했다.

음성원 기자 e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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