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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8년 이어온 ‘놀러와’ 졸속폐지 생각하니 씁쓸

등록 2012-12-28 19:33

<놀러와>(2004~2012, 문화방송)
<놀러와>(2004~2012, 문화방송)
[토요판] 이승한의 몰아보기
<놀러와>(2004~2012, 문화방송)
<트렌디>(Trend E), 29일(토) 오전 11시30분, <엠비시 라이프>(MBC Life), 30일(일) 오후 9시40분(마지막 회)

“오랜만에 새 프로그램을 연출하게 되어 연락드립니다.” 그날 아침, 숙취에 시달리던 양평동 이씨를 깨운 건 작년 이맘때 종합편성채널(종편)로 이적한 한 피디의 문자였다. 이씨는 다소 복잡한 심경으로 문자메시지를 한자 한자 들여다봤다.

그를 처음 만났던 몇 해 전 겨울, 그가 몸담고 있던 방송사는 시청률을 이유로 그가 연출하던 작품의 폐지를 결정했다. 시청률은 서서히 오르던 중이었고, 골수팬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던 터라 그 결정은 납득이 어려웠다. 하지만 파행 편성과 파행 인사, 그에 대항한 노조의 투쟁과 보복성 해고가 꼬리를 잇는 시절에 합리를 따지는 게 큰 의미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인터뷰를 위해 서울 여의도에서 그를 만난 날은 유난히 습하고 흐렸다.

“좋아지고 있었는데, 위에선 기회를 줄 생각이 없던 모양이에요. 싸우다시피 해서 간신히 마지막 회 촬영 허락을 얻어냈어요. 인사 없이 끝내는 건 시청자들한테도 예의가 아니잖아요.” 이씨는 뭐라 답하면 좋을지 알지 못했다. ‘노조의 투쟁이 승리하면 피디님도 좋은 작품 만드실 수 있을 거예요’ 같은, 뻔한 말은 하지 않았다. ‘엠(M)사’든 ‘케이(K)사’든 승리의 전망은 희미했고 파행의 장기화는 자명해 보였으므로.

몇 개월 뒤, 피디는 이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종편에 가서 이러이러한 작품을 하게 됐다고. 이씨는 종편의 등장을 반대하는 사람이었고 동료들의 투쟁에서 이탈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그의 선택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그를 비판하는 건 쉽지 않았다. 머릿속이 오로지 그를 만나 인터뷰를 하던 여의도의 습하고 눅눅한 찻집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씨는 좋은 작품 하시라는 덕담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그렇게 옮겨간 이는 그 하나가 아니었다. 언론에선 엄청난 이적료를 받고 종편으로 이적하는 스타 피디들에 대해 앞다투어 보도했지만, 그 뒤엔 멀쩡한 작품을 시청률의 논리로, 혹은 정치적인 이유로 어이없이 뺏긴 이들이 더 많았다. 이씨는 말을 아꼈다. 유난히 추운 겨울이었다.

이씨는 마지막 방송조차 제대로 녹화할 기회도 없이 졸속으로 폐지된 <놀러와>를 잠시 떠올렸다. 그래도 그 피디는 마지막 방송이라도 녹화했지, 8년을 한 <놀러와>는 대체 이게 뭔가 하는 생각에 이르니 입맛이 썼다. 엠사도 케이사도 이젠 ‘종편보단 낫잖아요’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종편으로 가는 피디들을 비판하는 건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만 가고 있었다. 여전히 습하고 흐린 겨울이었다.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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