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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주성치, 뻔한데 날 울컥하게 해

등록 2013-03-08 19:36수정 2013-07-15 16:18

[토요판] 이승한의 몰아보기
쿵푸 허슬(2004. 홍콩자치구, 중국. 주성치 감독)
<오시엔>(OCN), 10일(일) 아침 8시10분

동교동 이씨가 처음 주성치(저우싱츠)를 접한 건 <천왕지왕 2000>이었다. 친구가 빌려온 비디오테이프로 접한 그의 첫인상은 글쎄, 좀 그랬다. 왕정(왕징) 감독의 작품들이 흔히 그렇듯 코미디는 필요 이상으로 가학적이고 줄거리는 산으로 올라갔으므로. 어린 이씨는 주성치를 그저 그런 B급 코미디 작품을 찍는 그저 그런 배우라 생각했다.

그를 다시 보게 된 건 <소림축구>였다. 첫 만남이 탐탁지 않았던 터라 반신반의하며 찾아간 극장에서, 이씨는 비로소 주성치 영화의 문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가난하고 못났지만 선량한 주인공이 고생 끝에 행복을 찾는다는 뻔한 줄거리. 정말 뻔한데, 속에서 울컥하고 뜨거운 게 올라왔다. 내가 왜 이러지? 싱(주성치)의 바람처럼 홍콩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쿵푸를 연마한다는 허무맹랑한 <소림축구>의 결말을 보며, 이씨는 극장 구석에서 찔끔 울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파릇파릇하던 시절 찍었던 <신 정무문>에서 마흔을 목전에 두고 찍은 <소림축구>까지, 주성치의 영화들은 바보 취급을 당하던 주인공이 사실은 잘못 살아온 게 아니었음을,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영화였으니까. 그리고 스무살의 이씨에게는 ‘네가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줄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쿵푸 허슬>을 주성치의 최고작으로 꼽는 사람은 드물다. 세계 시장을 겨냥해 화장실 농담 수위도 낮췄고, 특유의 속사포 대사나 말장난도 사라졌으며, 오랜 짝패 오맹달(우멍다)도 안 나오는데다가, 어깨에 힘은 또 너무 많이 들어가 있는 영화니. 하지만 이씨는 주성치가 <쿵푸 허슬>을 찍는 광경을 상상할 때마다 울컥하곤 한다. 마치 <소림축구>를 처음 보았을 때처럼.

<당산대형>을 보고 자신도 이소룡(리샤오룽)처럼 가족을 지키는 남자가 되겠다 생각했던 8살 소년은, 액션보다는 코미디에 재능이 있단 이야기를 듣고 평생 코미디라는 한 우물만 팠다. 그리고 그 분야의 거장으로 인정받고 난 뒤에야, 소년은 마침내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용쟁호투>의 의상을 입고 <정무문>의 액션 설계를 따라 할 수 있었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1940년대 상하이의 빈민굴 ‘돼지촌’을 지켜내는, 이소룡 같은 영웅이 될 수 있었다. 그의 나이 마흔이었다.

어쩌면 그건 주성치가 스스로에게 주는 위로가 아니었을까. 자신을 매료시켰던, 그래서 배우가 되게 만들었던 8살의 기억과 결심이 사실은 틀린 게 아니었다는 작은 위로. 남들은 다 박장대소하며 보았던 <쿵푸 허슬>을 보며 이씨가 매번 엉엉 우는 것은, “난 틀리지 않았어”라 생각하며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 건 그 때문이다.

이승한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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