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동네 예체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일한다. 두 달쯤 전 처음 기획을 시작할 때만 해도 프로그램의 가능성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스포츠 중계를 본다거나 주말에 운동을 하러 다니는 것에 딱히 취미가 없는데다, 어떤 구체적인 웃음의 포인트가 있을지도 상상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우리 팀은 굉장히 단순한 논리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천하장사 강호동의 검증된 운동신경과 승부욕, 이수근의 놀라운 민첩성과 습득 능력, 최강창민의 신체 조건(요샛말로 피지컬!), 그걸 살리자, 그것 하나였다. 사람은 자기가 잘하는 일을 할 때 가장 매력적인, 본질적인 측면을 드러낸다. 운동 잘하는 엠시들을 모아 운동을 시키기로 한 것은 그 통념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촬영과 방송이 시작되자, 프로그램은 전혀 다른 부분에서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내가 이 프로그램에 대해 계산이 아니라 애정으로 접근하기 시작한 것은 무대 뒤 관객들의 환호성, 그리고 한껏 집중해 있는 연예인과 일반인들 표정 때문이었다.
탁구대 앞에 선 노인과 아이와 아버지의 얼굴, 그리고 그들을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초조하게 응원하는 가족들의 표정을 편집실에서 재확인했을 때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그건 단순히 일반인들의 묘기를 보고 감탄하거나, 특이한 사연을 듣고 웃고 놀라는 것과는 조금 다른 지점에서 느끼는 감흥이었다.
우리 프로그램에 탁구를 치러 나온 사람들은 남들보다 탁구를 조금 더 즐기고 익힌 사람들일 뿐, 대단한 사연이나 특이한 재치를 가지진 않았다. 그런 지극히 보편적인 사람들조차 ‘승부’의 순간에는 한순간 주인공이 된다. 승부는 어쨌든 개인에게 드라마를 수반한다. 그 특별한 삶의 한순간,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면 겪게 되는 ‘삶의 한 조각’을 우리는 연예인과 카메라라는 통로를 통해 들여다보는 것이다.
프로그램 편집을 하다가 문득 ‘그러고 보니 나도’ 아버지에게 탁구를 배웠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버지도 나에게 “포핸드를 칠 때는 팔꿈치가 90도가 돼야 해”라고 말했다. 어릴 때 다니던 동네 제과점 2층의 탁구장을 떠올렸다. 촬영 나갔던 볼링장의 플라스틱 의자를 보다가 문득 고등학교 시절 콜라를 마시면서 옆 레인 여학생을 힐끔거렸던 방학 때를 생각했다.
운동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리고 운동을 하다 보면, 승부를 벌이다 보면 이런저런 일들이 반드시 일어난다. 대단치 않다 하여도 그건 뻔한 일상과는 조금 다른 즐거운 일들이고, 우리 프로그램은 그런 사건들을 잡아내려고 노력한다.
나는 ‘삶의 조각’들을 보여주는 예능이 좋다. 친구들과의 여행을 보여주는 <1박2일>, 귀농과 합창 같은 유쾌한 일탈을 다뤘던 <남자의 자격>, 순식간에 자라나는 자녀와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빠 어디 가>, 군대에서 있었던 뜨겁거나 바보 같던 기억을 되살려주는 <진짜 사나이>, 너무 편리해진 세상에서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생각하게 해주는 <인간의 조건>. 모두 나에게도 있었던, 혹은 있을 수 있는 어느 순간에 대한 관찰과 재연이다.
<1박2일>을 보던 어느 아빠가 청춘 시절의 무전여행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는다거나, 고구마를 캐는 <남자의 자격> 멤버들을 보며 어느 50대 부부가 귀농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예능 피디로서의 보람은 충분히 거둔 게 아닐까. 평범한 우리의 삶도 보기에 따라 많은 드라마를 가질 수 있다는 걸 알려줄 수 있다면, 그걸로 예능 피디는 나름 괜찮은 직업이 아닌가.
류호진 한국방송 예능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