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 데드>
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TV
3시간 뒤 아빠는 좀비가 된다. 품에는 돌도 채 안 된 어린 딸이 안겨 있다. 아빠는 어떤 선택을 할까. 주검에서 내장을 꺼내 비닐봉지에 담고 긴 막대기에 동여맨 뒤 자신의 어깨에 막대기를 걸쳐 고정시킨다. 좀비는 본능적으로 인간의 피를 따라간다. 좀비로 변한 다음 업혀 있는 아이에게 해코지를 할까 싶어 양손은 등 뒤로 갈 수 없게 앞으로 동여맸다. 3시간 뒤 좀비로 변한 아빠는 막대기에 걸린 내장만 보고 걸어간다. 방향은 살아남은 인간들이 사는 곳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단편영화제에 출품된 <카고>(Cargo)는 7분짜리 짧은 이야기다. 그러나 여운은 참 길다. ‘인간으로서의 죽음’을 앞둔 아빠의 애끓는 부성이 오롯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1954년 발간된 리처드 매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를 통해 세상에 등장한 좀비물은 콘텐츠 생산자들의 무한 상상력이 거듭 덧대어지면서 점점 감성코드가 풍부해지고 있다. 영화 <웜바디>가 대표적인 예이다.
좀비 드라마의 방점을 찍는 것은 미국 케이블 <에이엠시>(AMC)에서 제작돼 현재 시즌 3까지 방영된 <워킹 데드>(사진)일 것 같다.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나, 만화 그 이상의 것을 시공간적으로 펼쳐 보인다. 한국에서도 <폭스> 채널을 통해 미국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시즌 3까지 방영됐고, 마니아층도 제법 많이 생겼다. 현지에서는 이달부터 시즌 4가 촬영에 들어갔고, 10월께 첫 방송을 탈 예정이다.
<워킹 데드>도 여타 좀비물처럼 좀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들의 사투를 그린다. 죽음의 극한에 몰렸을 때 인간의 본성이 얼마만큼 변질될 수 있는지 잘 드러난다. 시즌 1, 2가 좀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좀더 안전한 장소로 가기 위한 인간들의 분투기를 다뤘다면, 시즌 3은 살아남은 인간들 사이 생존 갈등을 그린다. 시즌 3에서 좀비는 그저 막대기 하나로도 충분히 제압이 가능한 살아 있는 주검일 뿐이고, 가장 큰 위협은 ‘또 다른’ 인간들이다. 음식과 총, 그리고 생필품이 한정된 상황에서 내가 살아남으려면 다른 사람의 희생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워킹 데드>는 그저 살이 잘리고 뜯기는 잔혹한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하는 좀비물이 아니라 인간 존재와 관계, 그리고 인간의 삶에 대해 냉정하게 물음표를 던진다. 이 때문에 미국 <뉴스데이>의 번 게이 기자는 좀비물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시즌 3에 ‘A+’의 평점을 매겼다. 시청률도 점점 높아져서 시즌 3 때는 회마다 평균 1142만명이 시청했다. 시즌 1(평균 524만명)에 비해 갑절 이상 늘었다. 일요일 밤 9시 프라임타임의 동시간대 지상파 드라마를 누르기도 했다.
<워킹 데드>에서는 살아 있는 인간들도 좀비 보균자로 묘사된다. 좀비에게 물리지 않더라도 죽는 순간 좀비로 변한다. 심장이 멎는 순간, 좀비가 된다는 게 의미심장하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워킹 데드’(Walking Dead, 걸어 다니는 주검)가 아니라 아무런 열정 없이 그냥 살아만 가고 있는 ‘워킹 데드’(Working Dead, 주검처럼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좀비물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것도, 좀비처럼 아무런 의식 없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것에 대한 회의감 때문은 아닐까.
오늘도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심장박동이 느껴질 만큼 치열하게 살았느냐고. 혹여 좀비처럼 멍한 눈과 죽은 심장으로 하루를 허투루 산 건 아니었냐고.
김양희 기자whizzer4@hani.co.kr
사진 폭스채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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