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의 5집 앨범은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이 변하고 있고 그 안에서 그녀의 삶이 점점 더 넓고 깊어지고 있다는 걸 분명히 보여준다.비투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섹시한 부위는? 내 머리!
사람은 관계의 산물이다. 극단적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사람이란 그것만으로는 텅 비어 있는 아무것도 아닌, 다만 관계들의 좌표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다소 억지스러운 면도 있고, 한편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무얼 생각하는지 대략 감잡을 수 있는 이야기다. 생물학적 개체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 그리고 그들의 집합적 삶을 이야기하는 한에서 관계는 곧 개체의 식별 코드이고, 어떤 면에서 ‘사회 속’ 개체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생물학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성장한다. 요정 혹은 엘프 캐릭터의 네 소녀가 만든 가수 ‘핑클’의 리더에서 5집 <모노크롬>을 발표한 ‘중견’ 솔로 여가수에 이르기까지, 이효리가 그려온 궤적은 이런 면에서 개체의 사회적 삶과 관계를 통한 성장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효리의 5집 앨범은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이 변하고 있고 그 안에서 그녀의 삶이 점점 더 넓고 깊어지고 있다는 걸 분명히 보여준다.비투엠엔터테인먼트 제공
1997년 ‘SES’에서 시작한 걸그룹 혹은 미소녀그룹의 등장은 당시 충격이었다. ‘소녀대’ 같은 일본의 아이돌 여성그룹이 언젠가는 한국에도 등장하리라 예상했지만, 실제로 그들이 눈앞에 나타나자 머릿속으로만 그리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더구나 한국의 걸그룹은 일본의 아이돌 그룹과는 달랐다. 이효리가 리더로 참여한 핑클은 1998년 데뷔했다. 핑클은 1999년 두 번째 앨범으로 연말 가요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걸그룹이 가요시상에서 대상을 받은 건 이들이 처음이었다. 2002년 4집 앨범을 마지막으로 핑클은 더 이상 앨범을 발표하지 않았다. 이효리는 2003년 솔로 앨범 를 발표했고, 수록곡 ‘10 minutes’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녀의 솔로 데뷔는 더할 수 없이 성공적이었다. 좁은 음역과 음악적 역량의 미숙함이 지적되었지만, 대중의 지지는 절대적이었다. 이후 발표된 앨범에서 음악적 자질이나 표절 문제 등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여자 솔로 가수로서 입지는 더욱 굳혔다. 연예인으로서 입지는 가수로서 입지보다 오히려 단단했다. 특히 신동엽과 함께한 예능 프로그램 <해피 투게더>(KBS2), 유재석과 더불어 이른바 ‘국민남매’의 신화를 만든 <패밀리가 떴다>(SBS)는 그녀를 TV 예능 프로그램의 절대자로 자리매김했다.
연예인으로서 최고의 성공을 구가했지만, 가수 혹은 뮤지션으로선 그다지 순탄치 못했다. 2집과 4집에서 불거진 표절 문제는 그녀의 성장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였다. 결국 솔로 4집 발표 이후 그녀는 한동안 음반을 발표하지 않았다. 어쩌면 최근 발표한 5집 이전의 3년은 가수 혹은 연예인으로서 그녀에게 암흑 시기였을지 모른다. 그녀는 3년 동안 한푼도 벌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3년 동안 많은 일을 했다. 특히 채식주의자, 반려동물운동가로서 보여준 모습, 그리고 정치에 대한 소신 있는 발언 등으로 지난 3년간을 기록한다. 자신의 신념과 그에 따른 작은 행동이 우리 삶 전체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를 일상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구체적 실천과 연결짓자는 그녀의 생각은, 선거 때마다 투표를 독려하고 그 의미를 나누는 발언으로 이어졌다. 이런 그녀의 생각과 행동을 두고 사람들은 여러 양상으로 반응했고, 또 연예인의 사회 참여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소셜테이너’니 ‘폴리테이너’니 하는 말의 중심에 그녀가 있다.
가수 혹은 대중예술가가, 정치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어떠한 의식을 갖고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구체적인 생각에 동감하거나 반대할 수는 있지만, 그 발언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이들의 표현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도 아니다. 이들의 발언만큼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과 표현도 똑같이 의미 있다. 다만, 그들의 생각은 매체를 통해 퍼지고 전달되어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큰 소리로 들릴 뿐이다. 물론 큰 소리는 사회적 영향력을 갖는다. 그러므로 그 소리는 작은 소리보다 현실적인 ‘의미’를 획득할 가능성이 높다. 영향력 면에서 그 소리는 의미를 가질 수 있고,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 좀더 높은 수준의 사려와 판단을 요구한다. 이런 면에서 그녀의 발언에 대한 논쟁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고, 그 논쟁의 존재는 곧 그 말의 힘을 증명하는 흔적이 될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그녀의 발언이 결국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생겼음을 이야기해준다는 점이다. 이는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그녀에겐 매우 중요한 일이다. 메시지를 갖는다는 것은 노래를 통해 나누고 싶은 생각과 의지가 있다는 것이고, 이는 노래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그녀의 시도와 노력을 드러내는 한 가지 방향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노래는 변화했고, 발전했다. 핑클 시절의 여리고 수줍은 감수성에서 벗어나 자신의 개체적 독립성을 자기 욕망에 대한 자신감으로 표현한 ‘10 minutes’의 적극성이 사회적 수준으로 확장하고 있다. 최근 발표한 그녀의 앨범 <모노크롬>은 대한민국의 모든 여성이 결국 ‘미스코리아’라고, 그들 하나하나가 우리를 대표하는 아름답고 떳떳한 삶의 주인이라고 선언한다(‘미스코리아’, 작사·곡 이효리). ‘힘 있는 사람은 귀를 막았고, 힘없는 사람은 귀가 막’히는 게 요즘 세상인데, 이를 돌파할 방법은 ‘희망’이니 뭐니 하는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이 아닐 뿐 시작될(이미 시작된)’ 우리의 일상적 삶 속의 실천이고 우리의 마음이라 말한다(‘Holly Jolly Bus’, 작사 이효리).
이효리의 5집 앨범이 음악적으로 어떤 성취를 이루었는지, 그리고 그 성취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나는 말할 자격이 없다. 그런 판단을 내릴 만한 능력이나 식견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하고 싶은 말이 변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안에서 그녀의 삶이 점점 더 넓고 깊어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 알 수 있다. 이효리는 관계 속에 있고 또 멀리 있지만, 우리 관계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녀의 이런 생각,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와 형식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는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서 ‘이효리’라는 캐릭터는 삶의 능동성과 적극성을 잃어버린 냉소적 삶에 성찰과 반성을 촉구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다르지 않은 곳’에 ‘너와 나와 우리’가 산다. 우리는 서로 ‘말하지 않’았지만 ‘선택’한 삶이 있고 그것을 꿈꾼다. ‘소용없다 해도 해볼’ 일이고, ‘거기 없다 해도 가볼’ 일이다(‘Better Together’, 작사 이효리).
글 박근서 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나름 학생 들의 좋은 친구가 되려고 애쓰고 있다. ‘텔레비전 코미디’ 로 학위를 받았고, 요즘 주된 관심사는 비디오게임이다. 닌텐도에게 우리를 구원할 영성이 있을지 정말 궁금하다.
고칠 부위는? 없어요!
아이돌의 역사는 이제 ‘구멍 난 서사체’(Syntagmatic Gap)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빼곡한, 그러나 반복적인 역사를 갖추고 있다. 1990년대 말 이래 아이돌의 생성과 소멸은 매우 유사하고 반복적인 패턴이어서 특정 기간의 아이돌을 모른다고 해도 아이돌을 말할 수 있고, 누군가 아이돌사의 전체를 안다고 해도 특정 아이돌의 어떤 면모는 전혀 언급되지 않을 수도 있다. ‘HOT’에서 시작해 ‘B1A4’에 이르는 아이돌의 서사는 매회 <전국노래자랑>(KBS)의 출연자들이 다른 듯 닮은 것마냥 서로 연결되어 있다. 아이돌 역사 초기, ‘핑클’과 ‘SES’의 역사는 그래서 여전히 모든 여성 아이돌의 존재에 깊은 영감을 제공할 정도로 압도적이고 첨예한 것이었다.
SES는 동경했지만 쉽게 알지 못한, 그러나 확실히 세련되다고 여기던 일본 소녀그룹의 한국적 구현이었다. 사실상 걸그룹의 효시인 SES는 댄스와 보컬을 모두 섭렵한 모습이었고, 양갈래 머리와 과하지 않은 힙합풍의 조화를 통해 전에 없던 뭔가의 새로움을 ‘확실히’ 어필했다. 후발주자 핑클은 한국 남성 소비자들이 대중문화에 투영하는 ‘페이버릿 여성’의 모습을 최대한 다채로우면서 익숙하게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처럼 보였다. 초기 핑클은 언제나 화이트칼라 의상에 긴 생머리를 고수했다. 그것은 ‘순수’를 표상한 가장 노골적 유혹이었다.
여기에 다소 이질적인 이효리가 있었다. 지금이야 ‘천하무적 이효리’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당대 대중문화의 최고 지배자이지만 당시 이효리는 확실히 애매한 포지션이었다. 순백의 여신을 구현하기엔 다소 어두운 피부 톤이었고, 앙증맞은 안무를 소화하기엔 어딘가 모르게 파워풀해 보였다. 섹시와 큐티를 강조하는 힙합의 캐릭터로 대세에 부응하긴 했지만 유리, 채리나 등 겹치는 이미지의 스타들과 치열한 다툼을 벌여야 하는 처지이기도 했다.
화려한 SES와 핑클의 시대가 끝나고 아이돌사에도 격변이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 이효리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 본 이는 그래서 많지 않았다. 당대를 지배한 압도적 외모도 아니었고, 옥주현과 바다처럼 보컬로서 성공 가능성도 크지 않았다. 모두를 사로잡을 수 있는 눈웃음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거친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헤쳐나가기엔 솔로 이효리는 너무 불안한 ‘입지’였다. 하지만 이효리는 아시다시피 놀라운, 그리고 역대 아이돌사를 통틀어서 가장 대단한 ‘반전’을 만들어냈다. 2003년 8월, 이효리의 솔로 데뷔곡 ‘텐미닛’이 세상에 던져졌을 때, 그 충격은 싸이의 ‘강남스타일’ 못지않았다.
바야흐로 ‘기승전 효리’의 정국이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을 지배했다. 2003년 이후 몇 년간 이효리의 위상은 해마다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되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독보적이었다. 1970년대 말~1980년대 초반의 세대에게 이효리는 욕망의 ‘실현’과 ‘표상’ 모두에서 기준점이 되는 존재였으며, 한국 사회의 ‘걸 파워’를 논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그녀의 이름은 환영처럼 동시대에 군림했다. 표절 논란과 연기 실패로 다소 부침을 겪었지만, 이효리의 매체 이미지 과포화 상태는 꽤 오래 지속됐다.
그런 이효리가 갑자기 사라진 것은 놀랍지만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뛰어난 몸매의 소유자이자 유명 광고 모델’이던 전지현 역시 그렇게 사라졌고, ‘최고의 가수이자 연기자’였던 엄정화 역시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활동 반경이 줄어들어 갔다. 관성대로라면 이효리 역시 그렇게 되는 것이 마땅했고, 더욱이 그가 아이돌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역사의 마감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이효리는 전혀 다른 ‘기표’가 되어 다시 대중문화의 중심에 복귀했다. 이효리는 ‘동물 보호’라는 비교적 덜 정치적인 선의의 이름으로 호명되더니 언제부턴가 ‘투표 독려’를 통해 정치적 아이콘으로 부상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정도 수위의 활동이 뭐 그리 대단하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한국 연예 산업의 현실에서 이효리의 행위는 흡사 ‘프라다를 입은 활동가’ 같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이효리는 이상과 삶의 거리를 끊임없이 좁혀가는 대단한 경로를 보여주고 있다. 지상파 예능에서 채식을 공공연히 말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광고 거부 의사를 밝히며, ‘성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소재로 토크하는 여성 연예인은 현재 이효리가 유일하다.
대중문화의 역사에서 무수한 스타들이 위치를 바꾸고, 존재를 변화하며, 자리를 지켜오고, 명성을 유지했지만, 이효리처럼 극적 변화를 택해 위치와 존재를 아예 재사유화하는 경지로 나간 경우는 없었다. 복잡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속에서 스타란 지위는 단일한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특정한 소비 문화적 맥락과 일정한 행동 유형 안에서 머물러야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아이돌 출신이라는 무시당하기 쉬운 존재에서 출발한 이효리는 변덕스러운 대중의 기호를 완전히 사로잡으며 까다로운 연예 권력의 전부를 점령했다가, 슬며시 그리고 매우 자연스럽게 거기서 빠져나가며 개인으로 돌아가는 데 성공하는 거의 유일한 스타가 되어가고 있다. ‘미스코리아’의 비애를 들려주는 이효리는 이제 음악 순위 프로그램 무대에 서는 것이 부자연스럽다며 ‘귀농’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효리의 이런 변화는 우리가 ‘으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효리가 이제 완전히 전복되었음을 확인시킨다. 이효리는 판에 박힌 아이돌의 서사에서 탈피해, 자신이 누리던 현상을 스스로 허물고 보편적인 정서의 30대 중반으로 ‘귀환’했다. 모두가 이효리처럼 되고 싶어 하던 우리 사회의 욕망 계단은 더 까마득하고 좁아졌는데, 효리는 그 욕망의 부질없음을 폭로하며 성큼성큼 내려오고 있다. 천하무적 이효리라는 초실재적 존재는 이제 없지만, 언제든 부담 없이 소주 한잔 하며 세상사를 논할 수 있을 것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친구’로, 그도 나도 나이 들어가고 있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아니 그 현상의 동세대들이, 그것도 아니면 화려한 인기 뒤에 견딜 수 없는 공허함을 애꿎은 일로 달래는 무수한 아이돌만이라도 보톡스가 없어도, 명품백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좀 깨달으면 좋겠다. 이효리처럼.
글 김완 서울 청량리에서 태어나 청량리에서 자랐다. 충 무로영상센터 ‘활력연구소’를 학교 삼아 다녔고, 이후 문 화연대에서 변두리 이슈를 메인 이슈 삼아 활동했다. 현 재는 매체비평지 <미디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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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서
우리 사회의 욕망 계단은 더 까마득하고 좁아졌는데, 효리는 그 욕망의 부질없음을 폭로하며 계단 위에서 성큼성큼 내려오고 있다.한겨레 정용일
김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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