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스쿨은 수많은 걸그룹이 쏟아져 나온 2009년 초에 등장했다. 처음부터 두명의 멤버가 주목을 받았다. 어리고 귀여운 유이와 성숙하고 섹시한 가희. 유이는 이제 온 국민이 다 알 만한 표현인 ‘꿀벅지’라는 표현을 등장시킨 장본인이고, 가희는 기존 걸그룹 멤버들에게서 볼 수 없는 카리스마와 화려한 춤 솜씨를 지닌 ‘왕언니’였다. 둘은 나이 차가 8살이다.
2009년 4월 디지털 싱글 ‘디바’를 발표한 애프터스쿨은 두달 뒤에 푸시캣 돌스의 내한공연 무대에 섰다. 나도 공연에 갔는데, 솔직히 가희만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그해 가을 발표한 ‘너 때문에’는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 오랜 기간 1위를 유지했고 연말에 <에스비에스>(SBS) 인기가요 1위를 차지했다. 초기의 기세는 이 칼럼에서 소개했던 다른 걸그룹들 못지않았다.
그런데 어쩐지 이후 활동은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유행처럼 번졌던 일본 활동에도 뛰어들었는데 성과가 그리 좋지 않았고 후속 앨범 <뱅!>의 마칭 밴드 콘셉트는 표절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소속사 플레디스는 미국에서 사온 안무를 자체적으로 수정했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이미 이미지에 상처를 입은 뒤였다. 그 후 탭댄스 안무를 과감하게 시도한 ‘레츠 스텝 업’과 ‘샴푸’, ‘플래시백’까지, 반응이 초기만 못했다. 멤버들은 계속 ‘입학’했으나 유이와 가희를 뛰어넘는 존재감을 지닌 멤버는 없었다.
개인적으로 애프터스쿨은 항상 아쉬운 팀이었다. 데뷔 초기에는 카라나 티아라 정도의 성공을 기대했다. 유이, 가희 그리고 이름을 다 부르지 못해 미안한 ‘귀염둥이’들을 데리고 이 정도 성적을 내는 건 류현진과 추신수가 한 팀에 있는데 한국 프로야구에서 5등쯤 하는 느낌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콘셉트 과잉을 지적하고 싶다. 요즘 들어 아이돌 음악의 트렌드는 단순 반복이다. 쉬워야 한다.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 따라 추기 쉬운 춤이 필요하다. 애프터스쿨의 마칭 밴드 콘셉트는 따라 하기 난감하다. 노래방에 북을 들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탭댄스도, 최근의 봉춤 안무도 마찬가지. 시도는 신선했으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애프터스쿨(사진 위)과 유닛 그룹 오렌지캬라멜.
그런데 애프터스쿨에는 재미있는 지점이 있다. 유닛 활동인 오렌지캬라멜이 오히려 애프터스쿨보다 인기가 많다. 나나, 레이나, 리지 세 멤버로 결성한 오렌지캬라멜은 ‘깜찍 발랄’이라는 명확한 이미지를 내세웠다. 애프터스쿨의 대담한 의상을 벗고 형형색색의 아동 취향 치마를 입고 나온 오렌지캬라멜은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춤과 노래로 초등학생들까지 사로잡았다. 노래 제목부터가 애교 넘친다. ‘아잉♡’, ‘마법소녀’, ‘방콕시티’, ‘샹하이 로맨스’.
애프터스쿨을 최고의 걸그룹으로 기억하는 이는 없겠지만 오렌지캬라멜을 최고의 유닛으로 기억하는 이들은 많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게다가 오렌지캬라멜은 모체인 애프터스쿨과 정반대의 접근법으로 성공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태티서, 지디 앤 탑, 씨스타 나인틴 등등 나름대로 성공했다는 유닛들과 비교해도 그렇다. 다들 원래 팀의 색깔에 일정 부분 기대고 있는 데 반해 오렌지캬라멜은 아예 다른 팀 같다.
제일 좋아한 멤버 가희는 ‘졸업’했지만 나는 계속 애프터스쿨을 응원하겠다. 나머지 멤버들로도 충분히 좋다. 다음에는 좀더 쉬운 노래와 안무로 대중에게 다가와주기를…. 그리고 오렌지캬라멜 신곡은 언제 나오나요? 뽕짝 분위기 가득한 노래와 비현실적 애교가 그리워요. 매니저님, 새 싱글 나오면 꼭 사인 받아주세요. 아잉~.
이재익의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