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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거침없는 ‘기황후’…재밌다면 역사왜곡 눈감아도 될까

등록 2013-10-30 15:26수정 2013-10-30 19:48

하지원
하지원
화려한 볼거리·빠른 전개 눈길
1·2회 두자릿수 시청률 몰이
“정보 부족해 왜곡 문제 심각”
평론가들 우려의 소리 높아
방영 전부터 역사 왜곡 논란이 제기된 <기황후>(사진·문화방송)가 실체를 드러냈다. 화려한 볼거리와 빠른 전개로 몰입감을 증폭시키며 1회(28일) 11.1%, 2회(29일) 13.6%의 시청률(닐슨코리아 집계)을 기록했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스비에스), <칼과 꽃>(한국방송), <불의 여신 정이>(문화방송)의 거듭된 부진으로 침체의 늪에 빠진 사극이 모처럼 시청자들 눈길을 잡고 있다. 하지만 대중문화평론가들은 더욱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왜일까?

1·2회만 놓고 보면 <기황후>는 흥행 사극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선덕여왕>과 <바람의 화원> 등에서 나온 남장 여인이나 여주인공의 고난, 신분을 초월한 사랑까지 등장한다. ‘공녀였다가 황후가 된 여인’이라는 고려판 신데렐라 스토리(원 황제와 고려 왕의 사랑을 동시에 받기까지 한다)는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일 수 있다.

문제는 기황후가 가상 인물이 아닌 실존 인물이며 부정적인 평가를 피할 수 없다는 데 있다. 14세기에 고려에서 ‘공물’로 보내진 기황후는 원의 마지막 황제 순제의 황후 자리에까지 올라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고려 입장에서 보면 부정적인 면이 컸다. 그 오빠인 기철 등이 기황후의 위세를 등에 업고 실권을 행사하며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개혁을 추진하던 공민왕이 기씨 세력을 제거하자, 기황후는 고려에 대한 공격을 지시하기도 한다. 따라서 역사적 인물에 작가의 상상력이 덧대어져 탄생한 다른 팩션(사실에 기반한 창작) 사극인 <선덕여왕>, <뿌리깊은 나무> 등보다 태생적으로 논란이 클 수밖에 없다.

대중문화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국어국문학)는 “1·2부를 보면 기황후를 여전사로 만들고 있는데, 회가 거듭될수록 이야기가 내적인 설득력을 얻어 결국 역사적으로 나쁜 평가를 받는 기황후에 시청자가 공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어 “역사적 배경과 인물을 드라마 소재로 가져올 때는 작가 의식과 역사 의식이 필요할 텐데, 그런 부분이 전제되지 않은 게 심각해 보인다. 시청자가 드라마에 몰입하면서 역사 왜곡이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 또한 “1·2부만 보면 판타지 시대극을 보는 느낌인데, 실존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논란은 감춰지고 있어 ‘역사가 이렇게 탈색돼도 될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기황후>에 앞서 <장옥정, 사랑에 살다>도 통상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온 인물에 대한 긍정적 해석으로 논란이 있었다. ‘착한 인현왕후-악한 장희빈’이라는 기존 공식을 뒤엎고, 극 중반까지 ‘착한 장희빈-악한 인현왕후’라는 설정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황후>는 <장옥정, 사랑에 살다>와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진 교수는 “장희빈은 사극에서 악인으로 많이 다뤄진 인물이라서 판단이 곡해될 여지가 많지 않다. 하지만 기황후는 <신돈> 등에서만 조금 다뤄졌을 뿐 그 실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장희빈보다 더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왜곡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기황후> 제작 발표회에서 장영철 작가는 “2008년 즈음 다큐멘터리를 보고, 한 여인이 쇠락해가는 나라에서 공녀로 끌려가 가장 높은 위치에 오른 게 흥미로웠다. 기황후의 이름·나이 등 사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드라마의 70% 이상은 허구의 인물들로 구성했다”고 밝혔다. 문화방송 또한 드라마 방영 직전 ‘이 드라마는 고려 말, 공녀로 끌려가 원나라 황후가 된 기황후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했으며, 일부 가상의 인물과 허구의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실제 역사와 다름을 밝혀드립니다’라는 자막을 내보내고 있다. 방영 전에는 방탕한 패륜아였던 고려 충혜왕에 대한 미화로 비판이 일자, 충혜왕 캐릭터를 허구의 ‘왕유’, ‘고려왕’으로 바꾸며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을 누그러뜨리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기황후라는 실존 인물이 주인공인 이상 드라마 속 왕유는 충혜왕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실존 인물 설정 때문에 <기황후>는 50부작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전망이다. “드라마를 보고도 역사 운운하면 귀를 열고 듣겠다”던 장 작가나 제작진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스케일도 괜찮고 이야기 전개도 속도감이 있어 ‘기황후’라는 소재만 아니었다면 좋은 사극이 됐을 것도 같다. 하지만 역사 왜곡은 시청률이 잘 나오고 작품이 좋다고 해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사진 문화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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