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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미래소녀 에프엑스,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등록 2013-11-07 19:41

에프엑스(f(x)
에프엑스(f(x)
지난 회에서 다룬 오렌지캬라멜이 노골적으로 복고풍과 ‘뽕끼’를 앞세운 팀이라면 오늘의 주인공 에프엑스(f(x)·사진)는 현존 걸그룹 중 가장 최신 스타일을 구가하는 그룹이다. 빅토리아·엠버·루나·설리·크리스탈 5명의 아름다운 소녀들로 이뤄진 팀임에도 에프엑스는 성적인 색채가 거세된 느낌이다. 뜨겁다기보다 차갑고 귀엽다기보다 경이롭다.

멤버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적어도 무대나 뮤직비디오에서의 모습은 아주 예쁜 사이보그들 같다. 함수식을 그룹명으로 해서일까? 남자 아이돌그룹까지 다 합친 아이돌그룹 중에서 일렉트로 팝 장르에 제일 충실하기 때문일까? 본격적으로 일렉트로 팝 그룹을 표방하고 나선 그들에게 사이보그라는 표현은 칭찬일 수도 있겠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엔 예쁘기 그지없는 ‘인간’ 소녀들임이 틀림없다.

2009년 9월 디지털 싱글 ‘라차타’로 데뷔한 에프엑스는 그해 쏟아져 나온 수많은 걸그룹 중에서 처음부터 튀어 보였다. 일렉트로 팝 댄스를 표방한다면서 실상 기존의 가요 장르를 적당히 편곡한 음악으로 쉽게 승부를 보려고 하던 여타 걸그룹과 달랐다. 특히 세번째 싱글 ‘NU 예삐오’는 정말 외계나 미래의 음악이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이질적이었다. 그룹 이름부터 노래 제목, 가사와 곡의 구성 모든 면에서 일관된 이미지가 있었달까? 데뷔 1년도 안 된 그룹치고는 놀랄 만큼 빨리 분명한 색깔을 구축한 셈이었다.

이들에게 2집 증후군은 없었다. 2011년 4월 발매한 첫 정규 음반 <피노키오>는 한층 더 견고해진 일렉트로 팝을 가득 담았다. 퍼포먼스 그룹이라는 이미지를 고집한 애프터스쿨과 비교한다면 에프엑스의 고집은 평론가와 대중 모두에게 인정받은 셈이다. 타이틀 ‘피노키오’는 지상파 음악 방송 1위를 휩쓸었다.

여타 걸그룹들이 어떻게든 팬들에게 다가가려고 애쓰는 것과 반대로 에프엑스는 생경한 느낌을 애써 지우려 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오히려 이질감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동물 탈을 뒤집어쓰고 재킷 사진을 찍기도 하니까. 예쁜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노출하려는 걸그룹의 생리를 거부해버린 것이다. 하긴 5명의 멤버 중 3명이나 외국인이라는 태생적 특징부터가 그렇긴 했다. 아득한 곳으로 미끄럽게 빠져나가는 함수 그래프처럼 에프엑스는 품에 안을 수 없는 존재들처럼 보인다. 그래서 더 원하게 되는.

피노키오에 이어 발표한 미니 앨범 <일렉트릭 쇼크>는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에프엑스 앨범이다. 앰버의 서늘한 랩으로 시작하는 ‘뷰티풀 스트레인저’를 들을 때마다 몸이 간질간질해진다. 타이틀곡 ‘일렉트릭 쇼크’의 강렬함은 또 어떻고. 올해 발표한 두번째 정규 음반 <핑크 테이프>도 꽤 들을 만한 일렉트로 팝으로 가득하다. 타이틀곡 ‘첫 사랑니’의 도도한 매력은 앞으로도 에프엑스의 행보가 거침없을 것임을 예고한다.

샤이니와 엑소의 이미지를 섞이지 않게 관리하는 것처럼 소녀시대와 에프엑스의 노선도 절대로 겹치지 않는다. 소속사인 에스엠의 영리함이며 저력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 더. 에프엑스는 데뷔 이래 멤버가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흔치 않은 일이다. 에프엑스가 우리 가요계에 있다는 사실이 다행인 것만큼 그들의 소속사가 에스엠이라는 것도 다행이다.

10년쯤 뒤의 미래에서 온 것 같은 다섯 소녀에게 주문하고 싶다. “지금껏 ‘걸그룹 열전’에서 다룬 다른 걸그룹들에게는 변할 것을 주문했지만 당신들은 달라. 변하지 않았으면 해. 생경하게, 도도하게 남아주었으면 해.”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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