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비밀>(한국방송2)은 2013년 최대 이변의 드라마다. ‘시청률의 여왕’ 김은숙 작가의 <상속자들>(에스비에스)을 비롯해 권상우와 정려원이 출연한 의학 드라마 <메디컬 탑팀>(문화방송)을 눌렀다. 톱 스타나 화려한 볼거리,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극단적 소재가 없는데도 시청자들은 <비밀>에 중독됐다. 더 놀라운 것은 초보 작가들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비밀>은 최호철 작가의 공모전 당선작 뼈대에 유보라 작가가 살을 덧댄 드라마다. 골리앗을 이긴 다윗, 유보라(35·사진) 작가를 13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집필을 끝낸 소감은.
“마지막 대본이 지난주 화요일에 나왔어요. 드라마가 내일(14일) 끝나서 그런지 아직까지는 얼떨떨해요. 실제 방송에서 대본과 달라지는 점도 있어서 저도 마지막 회를 기대하고 있어요. 결말이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매듭지었어요.”
-<상속자들> 등과 대결해 예상외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이어갔는데.
“김은숙 작가는 저도 굉장히 좋아해요. 제가 못 쓰는 것(로맨틱 코미디)을 쓰거든요. 드라마 시작 전에는 ‘부끄럽지 않은 3등이 되자’, ‘조금만 뒤처지는 3등이 되보자’고만 생각했어요. 전작(<칼과 꽃>) 시청률이 낮아 부담이 덜했던 것도 있고요. 시청률이 안 나와도 핑계 댈 게 있잖아요. 그런데 반응이 좋으니 감사할 따름이죠.”
-6부에서 유정(황정음)이 죽은 아빠(강남길)의 패딩 점퍼를 부여잡고 “빨지 말 것을 그랬다. 아빠 냄새 더 나게” 하면서 우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다.
“<비밀>을 쓰면서 딱 두 번 울었어요. 그 장면과 15부 유정과 민혁(지성)의 여행 장면에서였죠. 유정의 오열 장면에서는 배경음악을 깔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어요. 우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슬플 텐데, 음악으로 더 몰고 가는 게 필요 없을 것 같았거든요. 여행 장면은 담담하게 썼는데도 슬프더라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는다면.
“아버지 장례식 이후 유정과 도훈(배수빈)이 이별하는 장면이요. 어찌 보면 유정이 답답하고 지고지순한 뻔한 여성상인데도, 결국 모든 선택은 자기가 하거든요. 답답한 아이지만 상대에게 끌려다니는 느낌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별도 유정이 선택하는 것으로 그렸어요.”
-장편 드라마 데뷔작인데, 대본이 안 써져 힘든 적은 없었는지.
“8부를 쓸 때 한 번 있었어요. 전환점이 필요했는데 딱 막혔죠. 멜로물이기는 하지만 복수도 빼놓을 수 없었거든요. 그런데 유정이 가진 것도 힘도 없는 거예요. 남자를 이용해 복수하는 것은 도저히 못하겠고, 고심 끝에 처음에 그랬듯이 ‘유정의 선택으로 가자’ 했지요. 복수가 너무 약한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지만, 그게 유정이 처한 상황에서는 최선의 복수라고 생각해요.”
-연기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종방연 때 연기자들에게 큰절 올리려고요. 감정 표현이 힘든 장면이 많았는데 연기자들이 대본보다 더 잘해줬거든요. 배수빈씨는 눈빛 연기도 좋았고.”
-이응복 피디의 연출력도 꽤 섬세했던 것 같다. 대본보다 더 잘 나온 장면을 꼽는다면.
“드라마에 뒤늦게 합류하면서 대화는 조금 부족했지만 굉장히 잘 찍어주셨어요. 도훈이 강에 유정의 아빠 팔찌를 던지는 장면이 특히 인상 깊었죠. ‘팔찌를 던진다’고만 대본에 썼는데도 수중촬영까지 해 팔찌가 밑으로 침잠하는 장면까지 넣어주셨거든요. 그러면서 도훈의 감정이 잘 살아난 것 같아요.”
-<연우의 여름>, <상권이>, <태권, 도를 아십니까> 등 여러 단막극을 쓴 뒤 장편에 데뷔했는데.
“신인 작가가 장편으로 ‘입봉’을 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요. 단막극을 통해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게 좋은 기회죠. 저도 학교(문예창작 전공)에서 ‘드라마는 뭐다’라고 글로만 배웠던 것을 단막을 쓰면서 제대로 배울 수 있었어요. 주변에는 놀라운 이야기를 가진 작가들이 많은데, 이런 분들을 위해 반드시 단막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저 같은 경우도 <비밀>의 황의경 시피님이 단막 쓸 때부터 아낌없는 지원을 해줘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어요.”
-데뷔작의 성공으로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모든 인물을 놓치지 않고 아우르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드라마도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인데 그들 한 명 한 명을 놓치면 안 되니까요.”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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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국방송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