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에 데뷔한 걸그룹은 대체 몇 팀일까? 티아라 편을 실을 때가 여름이었는데 한겨울인 지금도 그해에 데뷔한 걸그룹을 다 소개하지 못했다. 오늘 소개할 걸그룹 시크릿(사진) 역시 2009년산이다.
멤버는 조촐하게 네 명. 전효성·정하나·송지은·한선화. 데뷔 초부터 가장 주목받은 멤버는 한선화였으나 남자 팬들의 지지를 이끌어낸 멤버는 글래머러스한 전효성임이 분명하다. 데뷔곡 ‘아이 원트 유 백’을 시작으로 다음 싱글 ‘매직’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시크릿은 수많은 걸그룹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인형 같은 얼굴에 늘씬한 각선미를 자랑하는 다른 걸그룹들과 비교하자면 시크릿의 ‘비주얼’은 부담 없고 친근한 느낌이다. 무대 의상이 아닌 옷을 입은 몇몇 사진들은 동네 아는 여동생들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팀이 내세우는 색깔이 도도하고 날 선 이미지가 아니라 밝고 건강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리라. 반면에 음악은 무난하지 않은 대담한 노선을 탔다. 너도나도 일렉트로 댄스를 내세우는 다른 걸그룹들과 확연히 다르다.
시크릿이 발표한 노래들을 보자. ‘매직’ 이후 싱글들도 줄줄이 성공이었다. ‘마돈나’ ‘샤이보이’ ‘별빛달빛’ ‘포이즌’ ‘유후’ 등등 알짜 히트곡이 참 많은 걸그룹이다. 시크릿 노래는 모두 강지원-김기범 콤비가 작사·작곡한다. 스윙이나 재즈, 심지어 트위스트 리듬(‘사랑은 무브’)도 대담하게 차용하고 빅밴드풍 브라스 파트의 적극적인 참여도 인상적이다. ‘매직’ ‘마돈나’ ‘포이즌’ 세 곡은 아르앤비-힙합 음악의 냄새가 물씬 난다. 비욘세의 ‘크레이지 인 러브’와 비교해서 들어보라. 느낌 아니까.
동시에 ‘별빛달빛’이나 ‘유후’ 같은 노래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선사한다. 신인 걸그룹 같은 풋풋함과 귀여움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니, 시크릿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고 해야 할까? 시크릿의 소화력을 칭찬함과 동시에 다양한 곡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강지원-김기범 콤비의 능력도 칭찬해야겠다.
무엇보다 칭찬해야 할 덕목은 성실함이다. 위에 열거한 히트곡 리스트를 봐도 짐작할 수 있겠다. 자기 관리도 철저하다. 시크릿은 멤버들 간의 불화설이나 소속사와의 갈등이 불거진 적이 한번도 없다. 멤버 교체도 전혀 없었다. 슬럼프나 스캔들, 루머도 그들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이쯤 되면 우주에서 가장 성실한 걸그룹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전효성의 ‘민주화’ 관련 발언이 나오기 전까지는.
내가 몸담고 있는 <에스비에스>(SBS) 라디오의 한 프로그램에 시크릿이 출연했을 때 일이다. 전효성이 ‘일베’ 사이트에서 유래한 ‘민주화’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본인은 물론 소속사에서도 그 뜻을 알고 한 말이 아니라고 해명했으나 한참 동안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나도 전효성이 ‘일베’ 회원이라거나 그 표현의 유래를 알고 썼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걸그룹 멤버의 입에서 툭 튀어나올 정도로 ‘일베’ 용어가 우리 사회에 파고들었다는 점은 분명히 심각한 문제다. 후에 크레용팝도 비슷한 일로 곤욕을 치렀으니.
시크릿이 마지막으로 발표한 노래는 ‘아이 두 아이 두’다. 흠~. 바로 지난 회에 소개한 포미닛이 그동안 주춤하다가 올해 들어 만개했다면 시크릿은 그동안 꾸준하다가 올해 들어 주춤하는 느낌이다. ‘일베 사건’ 후유증이 있는 것일까? 힘내자 시크릿!
재밌는 사실 하나. 마돈나는 ‘시크릿’이라는 노래를 불렀고 시크릿은 ‘마돈나’라는 노래를 불렀다. 우연일까? 아니면 기획사의 재치일까?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