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호 피디
2012년 ‘응답하라 1997’에 이어 지난해 ‘응답하라 1994’까지 신드롬을 만들어낸 신원호 PD는 방송이 끝나고 나서야 “너무 힘들어 조기 종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신 PD는 4일 전화 인터뷰에서 “육체적인 고통이 정신적인 희열을 압도해버릴 정도”였다고 했다. 종방을 한 주 앞두고 터진 방송사고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던 일들이 밀리고 쌓이다 벌어진 일이었다.
예능을 할 때처럼 회의부터 촬영, 편집까지 모든 것을 챙기려 하다 보니 한 주에 영화 한 편에 가까운 분량을 감당하는 것은 애초에 힘든 일이었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는 내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마지막 방송이 나가고 나서는 바로 그리워지더라”고 아쉬워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외환위기 직전까지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전에 없이풍요로웠던 1990년대를 세밀하게 되살리면서 20대는 물론 30~40대 이상의 시청자들도 끌어들이면서 케이블 채널 드라마로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등장인물 모두가 각자의 개성과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을 발견해 냈다는 점이다.
신 PD는 “겁 없이 썼다”고 했다.
“‘남자의 자격’의 김태원 씨나 ‘1박2일’의 김C 같은 경우죠. 예능에서는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데려다가 그 사람의 예능감이 폭발하거나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잘 살려냈을 때의 쾌감을 아니까요.”기본적으로 제작진이 회의를 통해 만들어낸 캐릭터가 있었고, 캐릭터와 가장 비슷하고 어울리는 배우를 찾았다. 여기에 배우들의 작은 손동작이나 말버릇을 잘 관찰해 캐릭터에 다시 덧입히다 보니 캐릭터와 배우의 틈새가 더욱 사라졌다.
영화에서 살인마, 깡패 등 악역을 했던 김성균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고, 김성균을 놓고 삼천포 캐릭터에 대해 회의를 하다 보니 다른 배우로는 대체 불가능한 캐릭터가 되어 버렸던 경우다.
“(쓰레기 역의) 정우 씨는 워낙 기대치가 높았어요. 원래 사람이 친구랑 있을 때 다르고 엄마랑 있을 때 다르잖아요. 영화 ‘바람’에서 보여준 정우 씨의 생활 연기가 정말 좋았죠. 문제는 이 친구에게 멜로의 옷을 입혔을 때 폼 잡아서 멋있는 게아니라 인간으로서 멋있으면서 남자로서 향기가 날 수 있을까, 사람들이 두근거릴 수 있을까였죠. 그 숙제를 정말 훌륭하게 소화해줘서 고맙죠.”고아라는 본인 스스로 ‘화보나 CF 속의 예쁜 여배우’의 틀을 깨고자 하는 절실함이 워낙 강했기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요령 없이 망가지길 자처했다.
예능 PD와 작가가 만드는 극인데 시트콤이 아니라 드라마였다.
신 PD는 “지금은 시트콤이든 드라마든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상관없지만 시작할땐 ‘시트콤’이라는 표현은 굳이 정정했었다”고 했다.
“저희도 처음엔 시트콤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트콤이라는 장르는 시츄에이션 코미디에 방점이 있거든요. 웃기고 성공한 시트콤도 많지만 그것보다는 드라마가 강한 극을 하고 싶었어요. ‘시트콤’이라고 하면 일단 시청자는 웃을 준비를 하고보게 되죠. 개그콘서트에서 10을 웃기면 안 웃기다고 하지만, 주말드라마에서 1만 웃겨도 엄청 웃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시트콤’을 뺐죠.”94학번인 신 PD는 영화감독이 꿈이었지만 어쩌다 공부를 잘해 생각지도 못한 과(서울대 화학공학과)에 들어갔다.
그래서 그의 스무 살은 빙그레(바로 분)처럼, 그리고 여느 스무 살처럼 방황이었고, “군대에 다녀와서는 1,2학년 때의 방황을 메울 학점을 따고 방송사 준비를 빼면 술 말고는 별로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신 PD가 만들어낼 또 다른 사람 이야기, 재밌는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는 일단 ‘응사’ 팀과 휴가를 다녀와서 망가진 몸부터 추스를 계획이라고 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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