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노동자 시위와 이에 대한 유혈 진압을 두고 우리나라 지상파 방송들이 시위가 일어난 배경은 제쳐두고 ‘과격 시위’와 ‘한국 업체 피해’ 등을 앞세워 보도하고 있다.
3일 캄보디아 정부는 한 달째 지속된 의류 공장 노동자들의 시위에 대해 무장 경찰과 공수여단을 동원해 대대적인 진압 작전을 폈고, 이 과정에서 최소한 노동자 5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지상파 3사는 4일 이 같은 소식을 전하며, 일제히 과격 시위가 한국 업체에 주는 피해가 심각할 것이라는 우려를 앞세웠다.
<한국방송>(KBS)은 4일 <뉴스9>에서 “캄보디아 당국은 이번 시위가 임금 인상 요구를 넘어 정치적 성격으로 번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전한 뒤, “이번 시위 사태로 공장이 멈춰서는 등 피해가 생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이번 시위의 도화선은 근로자들의 최저 임금인데, 우리 기업들이 캄보디아에 공장을 연 이유는 무엇보다 낮은 임금”이라며 “최저 임금이 대폭 오르면 상당수 외국 기업들이 다른 나라로 옮기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문화방송>(MBC) 역시 같은 날 뉴스에서 “시위가 가장 격렬한 곳에 우리 기업들이 위치해 있어 피해가 우려된다. 기존의 반정부 시위와 노동자 시위가 합세한다는 내일이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문화방송은 “확성기로 소리를 지르고 대문을 부수고 돌을 던져서 유리창을 깬다든지, 조업을 계속할 수 없”다고 전한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 쪽의 인터뷰를 통해 시위의 폭력성과 이에 따른 한국 업체들의 피해를 강조했다. 이 사건을 톱뉴스로 배치한 <에스비에스>(SBS) 역시 같은 내용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또 별도 꼭지의 뉴스에서 “유혈 시위가 우리 업체들을 겨냥한 건 아니지만 피해가 막심하다”며 “시위 기간에도 급여를 지불해야 한다”, “납품 기일을 맞추지 못하면 수출 거래선이 끊길 수 있다” 등 한국 기업의 피해 상황을 강조하는 보도를 했다.
지상파 방송사들의 이 같은 보도만 보면 한국 기업들이 노동자 시위와 별 관계가 없는데도 피해를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현지 업체들이 이번 노동자 시위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 캄보디아 노동자들은 지난달 24일부터 80달러인 최저임금을 160달러로 올려달라는 요구를 앞세워 파업을 벌여왔다. 반면 사용자단체인 캄보디아의류생산자연합회(GMAC)는 이를 반대하며 임금 협상 참여를 거부했는데, 여기에는 60여개의 한국 기업이 포함되어 있다. 일차적으론 캄보디아 노동자와 정부가 갈등하고 있지만, 실제 내용을 뜯어보면 한국 기업들 역시 갈등의 당사자인 셈이다. 특히 2일부터 시작된 유혈 시위가 촉발된 곳은 프놈펜 시내 푸르센체이에 위치한 한국계 의류업체 앞이었다.
국제인권단체인 국제민주연대는 6일 낸 보도자료에서 “60여개 한국 기업을 포함해 다국적 의류산업 사용자들로 구성된 단체인 캄보디아의류생산자연합회는 정부에 파업 시위를 진압하지 않으면 캄보디아에서 철수하겠다고 협박함으로써 사태를 악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 업체들이 캄보디아 노동조합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는 언론 보도가 있는데, 즉각 중단하고 노동조합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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