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공방 붙은 두 작품 비교
400년간 같은 모습으로 살고
‘전생 인연찾기’ 내용 똑같아
서사와 에피소드는 사뭇 달라
400년간 같은 모습으로 살고
‘전생 인연찾기’ 내용 똑같아
서사와 에피소드는 사뭇 달라
‘강원도 등지에서 거의 비슷한 시간에 알 수 없는 비행물체들이 출몰했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1년(1609년) 9월25일치에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별그대>·에스비에스)와 만화 <설희>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 기록돼있다. <별그대>는 비행물체를 타고 지구에 온 외계인, <설희>는 비행물체를 타고 온 외계인에게 치료받은 불로불사의 인간이 극을 이끌어간다. 1609년 사건을 극화한 사례는 더러 있었지만 400여년간 똑같은 모습으로 사는 존재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은 <설희>와 <별그대> 둘뿐이다. 이런 이유로 지난 6년간 <설희>를 써온 강경옥 작가는 저작권이 침해당했다며 법적 대응을 공언했고, <별그대> 제작사도 5일 <별그대>를 <설희> 홍보에 활용하는 것이 아닌지 법적 검토를 하겠다고 밝혔다. 두 작품을 비교·분석해봤다.
■ 강경옥과 박지은 1985년 <여학생> 잡지에 <현재진행형 ing>로 데뷔한 강 작가는 <별빛속에>와 <노말시티> 등으로 판타지 순정만화의 새 장을 연 베테랑이다. <별빛속에>(1987)는 한국 최초 공상과학 순정만화로 평가받는다. 그의 만화는 인간 심리를 담담하면서도 예리하게 꼬집고, 스릴러적 요소도 가미한다.
<내조의 여왕>과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집필한 박지은 작가는 주중 미니시리즈와 주말극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몇 안되는 작가들 중 하나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은 최고 시청률 45.3%로 ‘국민 드라마’가 됐다. 유머와 위트가 있는 대사와 에피소드가 흡인력이 있다. 이 둘 모두 타고난 ‘손맛’이 있는 작가들이다.
■ <설희>와 <별그대> 강 작가는 2003년 <설희>를 한 잡지에 실으려고 70페이지가량 그렸다가 이 잡지 창간이 취소돼 2007년 한 만화 잡지로 공개했다고 밝혔다. 그는 블로그에서 “<설희> (창작에) 관한 이야기는 후기로 2008년도에 나온 <설희> 2권 뒤에 실려 있다. 거기에 보면 스토리를 끝까지 다 짜놓은 상태라고 써있다”고 밝혔다. <설희>는 2011년부터 웹툰으로 바뀌어 한 포털 사이트에서 현재 94화(만화로는 9권)까지 공개됐다.
박 작가는 표절 시비가 일자 지난해 말 제작사 누리집을 통해 “2002년 <깜짝 스토리랜드>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하면서 광해군 때 사건을 접했고, ‘당시 목격된 것이 우주선이었고, 그 우주선에서 온 외계인이 현재까지 살아오게 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해 대략의 시놉시스 노트도 만들어뒀다”고 밝혔다. 5일 14부가 방영된 <별그대>는 30% 가까운 높은 시청률을 보인다.
■ 설희와 도민준 ‘세월이 흘러도 늙지 않는 인간’이라는 소재는 <렛미인>(2010)과 <트와일라잇> 시리즈 등 뱀파이어 영화에서 자주 쓰인다. 2007년 개봉한 <맨 프롬 어스>에는 1만4000년동안 살면서 10년마다 신분 세탁을 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설희>의 여주인공 설희와 <별그대>의 남주인공 도민준은 400여년이 흘렀으나 과거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설희는 죽었다가도 되살아나며, 도민준은 인간보다 청각과 시각이 7배 뛰어나고 다치더라도 몸이 곧 회복된다. 다른 사람이 설희의 피를 수혈받으면 죽거나 역시 불로불사의 몸이 된다. 도민준은 다른 사람과 타액이 섞이면 열이 섭씨 40도 이상 끓지만, 피가 섞이면 어떻게 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 전생의 인연 찾기. 연예인 과거의 연인이 늙어 죽자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은 설희는 조선시대 때 자신을 구해준 사람을 찾아다닌다. 설희가 찾는 남자(세이)는 현세에서는 연예인 지망생이고, 공교롭게도 13년 전 자신이 도움을 준 여자(세라)의 친구다. 설희 주변에는 어릴 적 첫인상으로 그를 좋아하게 된 세계적 스타 마커스와 세라의 친구이지만 세이를 좋아하는 어릴 적 친구 아영 등이 있다. 도민준도 조선시대에 자신을 살리려다가 죽은 여자아이와 똑같은 모습을 한 이를 12년 전 구해주고, 커서 한류스타가 된 여자(천송이)를 다시 만난다. 천송이 곁에는 오랫동안 그를 짝사랑해온 휘경과 그런 휘경만 바라보는 오랜 친구 세미가 있다. 설희와 도민준의 차이는 ‘초능력’이다. 도민준은 순식간에 공간 이동을 하고 시간을 멈출 수 있다. 인간인 설희는 타인들보다 힘이 조금 셀 뿐이다.
■ 두 작가 입장 강 작가는 <별그대>에 대해 “400년간 살아왔다는 설정과 전생의 관계와 인연, 연예인, 혈액이나 침, 12년 전 만남과 성장한 뒤의 만남, 소꿉친구와의 삼각관계, 양아버지 같은 조력자 등등 스토리 구성이 (내 작품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말한다. 또 “광해군 유에프오 사건과 관련돼 오래 살아온 존재의 스토리 버전은 내가 처음”이라고 밝혔다.
반면 <별그대> 제작사 에이치비(HB) 엔터테인먼트는 “도민준은 수명과 노화 속도가 인간과는 다를 뿐 영원히 늙지 않는 존재는 아니다. 인물 설정부터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 작가도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 있다면 오히려 <슈퍼맨>일 것이다. 슈퍼맨은 외계 행성에서 지구에 와 살면서 지구인들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긴 세월 인간에게 실망하고 배신당하면서 마음을 닫아버린 ‘꽃미남 슈퍼맨’이 드라마의 시작”이라고 했다.
■ 닮은 듯 다른 이야기 두 작품은 분위기, 에피소드, 서사에 다른 면도 상당하다. <설희>는 사람과 사랑에 회의적 태도를 갖게 된 설희의 비극에 초점을 맞춘다. 설희의 소망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늙어 죽고 싶은 것”이지만 다른 사람과의 미래는 항상 비극적이었다. 설희가 전생의 연인을 각성시키는 것과, 세라의 사랑 찾기도 <설희>에서 비중있게 펼쳐진다.
<별그대>는 도민준이 천송이를 여러 번 위기에서 구해주면서 애정을 싹틔우는 게 이야기의 뼈대다. 박 작가는 “조선에 온 슈퍼맨이 지구를 떠날 날을 3개월 앞두고 운명의 여인과 우연히 만나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가 큰 줄기”라고 말한다. 여기에 살인마까지 등장해 긴장감을 높인다.
표절 논란이 불거진 <선덕여왕>과 뮤지컬 <무궁화의 여왕, 선덕>을 비교·분석한 논문을 발표한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표절 여부는 전체 극을 구성하는 캐릭터와 플롯의 유사성 여부를 봐야 한다. 주요 모티브가 전체 서사의 구성에 어느 정도 역할을 하느냐가 주요 잣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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