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한 문화방송 사장 선임 파장
김재철 시절 부사장 맡은 최측근
방문진서 여권표 쏠려…이진숙 ‘0표’
공영방송 위상 회복 불투명하고
7명 해직자 문제 해결도 회의적
김재철 시절 부사장 맡은 최측근
방문진서 여권표 쏠려…이진숙 ‘0표’
공영방송 위상 회복 불투명하고
7명 해직자 문제 해결도 회의적
<문화방송>(MBC) 내부에서는 안광한 엠비시플러스미디어 사장의 본사 사장 선임을 ‘김재철 체제’의 본격적 귀환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김재철 전 사장이 지난해 3월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해임 결정 뒤 사퇴한 이후에도 해고자나 공정성 문제에 관해 진전이 없었지만, 이번에 ‘김재철 체제’의 2인자였던 안 사장이 경영권을 쥐면서 개선 가능성이 더 희박해진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 ‘방송 장악’ 지속 의도? 김종국 전 사장이 지난해 5월 김재철 전 사장의 잔여 임기를 채우기 위해 취임할 때에도 ‘김재철 체제의 연장’이라는 지적이 나왔고, 실제로 두 사장의 노선에 별 차이가 없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김재철 전 사장의 핵심 측근이던 안 사장이 선임되자, “김종국 사장으로는 부족하다”는 청와대나 여당의 인식 때문이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김재철 체제’는 이명박 정권 때 문화방송을 정부·여당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끌고 가며 170일이나 되는 파업을 촉발시키는 등 공영방송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는 최근 법원 판결에서도 지적됐다. 서울남부지법은 파업을 이유로 노조원들을 해고하고 징계한 것은 무효라고 판결하면서 “당시 경영진은 방송의 공정성 보장을 위한 단체협약의 여러 절차상의 규정들을 위배하고 인사권을 남용하는 방법으로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억압하는 한편 경영자의 가치와 이익에 부합하는 방송만을 제작, 편성하려 시도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장 인선은 ‘공정 방송’ 회복을 바라는 안팎의 목소리에 귀를 막은 것일 뿐 아니라 법원의 판결 취지도 무시한 셈이다. 검찰은 20억원대의 배임·횡령 혐의를 대부분 인정하지는 않았으나 김재철 전 사장을 1100만원 규모의 배임을 저지른 혐의로 약식기소하기도 했다.
당시 부사장이던 안 사장은 이런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는 ‘김재철 체제’ 때 편성본부장을 맡아 <더블유> <피디수첩> <후플러스> 등 비판적 목소리를 내던 프로그램들을 폐지·축소하는 데 간여했다. 2010년에는 4대강 사업을 심층 취재한 <피디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에 대해 ‘경영진에 사전에 시사해야 한다’고 고집해 불방이 빚어지기도 했다. 또 인사위원장으로 파업에 가담한 노조원들의 징계를 주도했다.
그런데도 그가 선임된 것은 여권의 의도와 관련이 있다는 추정을 낳는다. 방문진은 여권 추천 이사 6명과 야당 추천 이사 3명으로 이뤄져 여권 이사들 뜻대로 문화방송 사장을 선임할 수 있는 구조다. 지난해 12월, 박근혜 대통령이 2005년까지 이사장으로 있던 정수장학회 장학생 출신이면서 ‘친박 인사’로 분류되는 김원배 목원대 총장이 이사진에 합류한 것도 영향을 줬다는 관측도 있다. 이사들이 한 표씩 던진 21일에는 안 신임 사장이 5표, 최명길 인천총국 부국장이 4표를 얻고, 이진숙 워싱턴지사장은 표를 얻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원자들을 3명으로 추린 17일 표결(1인 2표)에서는 안 사장과 이 지사장이 5표씩 얻고, 최 부국장은 4표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표결에서는 여권 이사들이 이 지사장을 버리고 안 사장에게 표를 몰아줬다는 얘기가 된다.
■ ‘문화방송 문제’ 해법은 어디에… 문화방송 노조는 21일 성명에서 “‘김재철 시대’의 인사권·경영권 남용, 칼춤이 재연된다면 안광한은 김재철과 똑같은 운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24일 안 사장의 출근에 맞춰 침묵시위 등을 할 계획이다.
사쪽이 풀어야 할 것에는 먼저 정영하 전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7명의 해직자 문제가 있다. 이들은 1월에 사쪽의 징계가 무효라는 1심 법원 판결을 받았지만, 사쪽은 곧바로 항소했다. 징계에 간여한 안 신임 사장이 이 문제를 풀려고 나설지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나온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영방송으로서 과거 위상을 회복하느냐다. 문화방송은 이번 정권 들어서도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과 서울시 공무원 간첩 혐의 사건 등 정권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소재는 적극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 뉴스 신뢰도나 공정성에 대한 평가는 크게 추락했다. 지난해 전문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시사저널> 여론조사에서 문화방송의 영향력과 신뢰도는 4위에 그쳤다. 현직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기자협회 조사에서도 문화방송의 영향력과 신뢰도는 0%대로 추락했다.
문화방송의 한 기자는 “사법부가 파업이 정당했다고 인정했는데도 아직까지도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에게 인사고과 등으로 불이익을 주는 것이 현실이다. 안 사장 선임은 이게 추락의 끝이 아니라는 절망감마저 준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