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허진(65)
‘세결여’ 임실댁으로 복귀한 허진
10년간 드라마에 불러주지 않아
수입끊겨 700원으로 5일도 버텨…
늘 주연만 해 고마운 줄 몰랐죠
이젠 저 내려놓고 연기만 생각해
10년간 드라마에 불러주지 않아
수입끊겨 700원으로 5일도 버텨…
늘 주연만 해 고마운 줄 몰랐죠
이젠 저 내려놓고 연기만 생각해
한 방송사 피디가 그랬다. 연기자가 5년을 쉬면 잊힌다고. 하물며 10년이다. 그래서 최근 <에스비에스>(SBS) 일산 탄현제작센터에서 만난 허진(65)은 “지금의 모든 것이 감사하다”고 했다. “땅바닥까지 저 자신을 내려놓고 일만 생각하고 있어요. 쉬는 동안 마음으로는 여러 번 죽었다 살았다 했는데 다시 숨 쉬는 마음으로 카메라 앞에 서고 있지요.”
허진은 김수현 작가의 에스비에스 주말극 <세 번 결혼하는 여자>(<세결여>)에 가사도우미 ‘임실댁’으로 출연 중이다. 악독한 시모 김용림과 철없는 둘째 며느리 손여은의 긴장 관계 속에서 촌철살인의 구시렁거림으로 극을 이완시키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를테면, 새 며느리가 수백억대 자산가의 외동딸인 줄 알았다가 상속을 한 푼도 못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 김용림이 체기를 느끼자 냉장고에서 김칫국물을 꺼내면서 “밥이 체한 게 아니라 욕심이 체했지. 그런데 김칫국물이 욕심도 삭이려나 모르겠네”라며 중얼거리는 식이다. “계모로 들어왔으면 계모 표시 안 내고 성의껏 살아야지 그렇게 내놓고 표를 내느냐”며 손여은을 타박하기도 하고, “상감도 먹는 게 뒷구멍 욕”이라며 김용림과의 기싸움에서도 지지 않는다. 사투리 섞인 생활형 연기가 마치 제 옷을 입은 듯해 여느 캐릭터들보다 더 시청자의 눈길을 끈다.
허진의 드라마 출연은 2003년 <무인시대> 이후 처음이다. 1990년대에는 프로그램 4개에 겹치기 출연할 때도 있었지만, 출연 기회는 점점 멀어져갔다. ‘나는 끝났다’면서도 ‘언젠가 다시 불러주겠지’라는 희망만 갖고 마냥 기다렸다.
2000년 함께 살던 어머니를 여읜 뒤에는 심한 상실감에 연기든 뭐든 의욕이 없기도 했다. 1970년대 일일극에서 맏며느리 역을 도맡고, 한 방송사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한진희와 함께 최우수연기상을 받은 그다.
“데뷔 때부터 가만히 있어도 주연 역할이 오고, 노력하지 않아도 섭외 전화가 왔어요. 제작진과 드라마 안 한다고 싸우기까지 했을 정도니까요. 그때는 정말 고마운 것을 몰랐고, 연기를 한다는 기쁨도 모른 채 교만이 하늘을 찔렀던 것 같아요. 촬영장에 늦게 가는 일도 잦았고, 내 뜻대로 안 되면 불만을 터뜨리니까 현장에서 신뢰도 깨지고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밖에 없었지요.”
연기 수입이 없으니 생활고가 찾아왔다. “잘나가던 시절 돈을 모았다면 지금 강남에 빌딩이 있을 것”이지만, 씀씀이가 컸던 터라 통장 잔고는 바닥을 드러냈다. 700원으로 5일을 버틴 적도 있고, 간혹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했다. 누구보다 자신만만하게 살다 바닥까지 추락했으니 자존감마저 바닥났다.
사실 <세결여>에서 애초 배역은 ‘사모님’이었다. 하지만 대본 리딩 때 김수현 작가한테 거절을 당했다. 10년 이상 연기를 쉰 게 컸다. 다행히 함께 출연하는 강부자가 부탁해 임실댁 배역을 맡았다. 처음에는 대사도 없이 화면에 뒷모습만 나왔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비중이 점점 커지고 대사도 많아졌다. “김 작가님이 대본에 ‘오버하지 말고 구시렁대는 스타일로 하라’고 포인트를 잡아주세요. 대본을 보면 작가님이 제 역할에 애정을 많이 가져주시는 게 느껴지지요. 작가님과 <세결여>가 죽어가던 사람을 살린 거예요.”
동료들도 재기를 기뻐해준다. “오미희는 ‘언니는 우리의 로망’이라고 말해주고, 평소 허튼 데 돈 안 쓰시는 이순재 선생님은 파이팅하라고 금일봉을 주셨어요. 한진희도 친절하게 방송국 식권을 사서 주고. 받을 만큼 정말 한 게 없는데 신경 써주시는 게 너무 고마워요.”
10년 만에 시청자들을 만나는 허진은 “인생 자체가 드라이클리닝 됐다”고 했다. 그만큼 다시 찾은 연기자 생활에 애착이 강하다. <세결여> 출연 반응이 좋아 다른 드라마에 할머니 역으로도 캐스팅됐다. “처음에는 ‘뻔히 아는 것이지만 실수를 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조바심이 들었는데 지금은 연기가 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20대부터 쭉 해온 것이고, 인정도 받던 부분이라서 태산이 무너져도 땅바닥까지 나를 내려놓고 내 할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만 갖고 있죠. 마음의 격동이 참 길었는데 이젠 고개 숙이고 하자 없는 연기를 위해서만 살아갈 겁니다.”
글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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