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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누가 악당을 보았다 하는가

등록 2014-05-27 10:36

[씨네21] 영화〈끝까지 간다〉 이선균 조진웅
처음부터 끝까지 쫄깃쫄깃하다. <끝까지 간다>는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에게 쫓기는 이야기다. 아니, 선악의 구별은 의미가 없다. 이것은 단지 큰 놈과 작은 놈, 둘 사이의 거리에 관한 이야기다. 바짝 긴장시켰다가 낄낄거리게 만들고 한참 웃다가도 나도 모르게 의자를 당겨 앉게 되는 흥미진진한 술래잡기, 그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서스펜스의 기본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끝까지 간다>만의 호흡은 이선균과 조진웅의 이인 삼각 연기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한순간도 숨이 달리는 법 없이 관객의 가슴속 깊이 자맥질하는 두 배우의 호흡에는 진심과 배려, 배우로서의 욕심이 동시에 묻어난다. “형, 우리 끝까지 한번 가보자.” “그래, 근데 끝이 어디지?” 상관없다. 만족할 때까지 간다.

이선균
이선균

[이선균] 경계에서 끝까지 한숨에 달리다

분명 화면에 계속해서 등장하는데 작품이 끝날 때 즈음이면 어딘지 희미해진다. 인상이 흐릿한 것과는 조금 다르다. 캐릭터가 약해서도 아니다. 굳이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편안함’이 적당할까. 이선균을 바라보면 눈이 편하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괴팍한 말투로 독설을 내뱉을 때도 밉지 않다. 제아무리 울퉁불퉁한 캐릭터도 이선균이라는 필터를 거치고 나면 우리 집 욕실에 걸린 수건마냥 부드럽고 친근해진다. 로맨틱 코미디를 통해 쌓아온 이미지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선균이라는 배우가 두르고 있는 일상의 분위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그는 작품을 발판으로 스스로 빛나기보다 스스로를 숙여 작품을 받쳐주는 쪽에 가까운 배우다. 두드러지는 한 장면을 만들기보다는 장면마다 스며들어 전체적인 정서를 쌓아나가는 진귀하고 ‘희미한’ 배우. 늘 상대배우를 돋보이게 해주는 ‘케미스트리의 배우’라는 수식어는 이선균의 강력한 친화력을 칭찬해주는 동시에 일말의 아쉬움도 대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끝까지 간다>는 진정한 이선균 주연의 영화라 할 만하다. 비단 “55회차 촬영에 한번 빼고 전부 나갔을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장면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상대배우와의 화학작용을 이끌어내기보다 온전히 자신의 역량으로 영화를 이끌고 가려 시도한다. 물론 그렇다고 본래의 절묘한 호흡, 상대배우와의 친화력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어느 때보다 배우 이선균의 날것 같은 얼굴이 강렬하게 남는다는 점에서 이선균의 영화라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 시나리오가 왜 나에게 왔는지 의아했다”라는 그의 말처럼 <끝까지 간다>의 형사 고건수는 이전에 이선균을 알렸던 낭만적 역할과도, 소심하고 예민한 남자와도 거리가 멀다. 입도 거칠고 실력보다 자존심이 더 센 고건수는 ‘다혈질’이라는 점을 빼면 이선균과 좀처럼 접점이 없다. 하지만 그는 정해진 캐릭터에 자신을 맞추는 대신 자신의 자리로 캐릭터를 당겨온다. 물론 이선균 스스로도 한 발짝 정도 캐릭터에 맞춰 다가간다. 그렇게 중간 지점에서 만난 전형적인 형사 캐릭터와 전형적인 배우 이선균의 이미지는 완전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난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어딘지 색다르고 과장된 듯하면서도 리얼하다. 생각하기에 따라 상투적인 이 캐릭터가 장르적이고 과장된 캐릭터로 소비되는 대신 사실적인 옷을 입고 다가오는 건 이선균이 지닌 특유의 자연스러움에 힘입은 바 크다. “이 친구가 어디서 범죄를 저지르는데, 나쁜 짓을 하지만 그 행동이 마냥 나빠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에 출연을 결정했다. 코믹과 액션, 선과 악, 그 경계에서 줄타기를 잘하는 배우, 그게 이선균이었다는 감독님의 말이 믿음을 줬다.” 장르와 리얼리티, 양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캐릭터는 그렇게 탄생했다.

“워낙 출연분량이 많다보니 영화에 대한 책임감이 절로 생겼다. 부담감 때문인지 장면마다 집중력이 높았던 것 같다.” <끝까지 간다>에 대한 이선균의 애착은 남달라 보이지만 그것이 그저 출연분량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촬영 마지막에 갈비뼈에 금이 가면서도, 바로 다음날 드라마 촬영을 앞두고 있음에도, 다시 한번 찍자고 제안하는 주연배우를 두고 누가 손 놓고 있을 수 있겠는가. “모든 작품이 다 중요하겠지만 나에게 또 다른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스탭들도 고생이 많았고 유달리 정이 들어서 그런지 끝날 때 눈물이 날 것 같더라. 열심히, 진하게 뭔가를 같이 했구나 싶어 뿌듯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번 작품이 자신의 전환점이 될 것 같다고 자평하는 그의 눈빛에서 결과에 상관없는 자부심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흥행 결과나 주연으로서의 존재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차라리 이선균 고유의 케미스트리가 이번에는 촬영현장에서까지 빛을 발하는 진득한 경험을 했기 때문 아닐까. 모든 장면에 얼굴을 비춰서 주연이 아니다. 영화의 안과 밖에서 모두 영화를 지탱하고 있기에 ‘주연’이다. 영화에 대한 책임감, 현장에서의 열정, 그리고 이선균이라는 배우가 주는 편안함이 어우러져 함께 만들어가는 영화를 가능케 했다. 진짜 주연을 만났다.

조진웅
조진웅

[조진웅] 액션과 웃음의 리듬을 탄다

“나름 열심히 사는 아이인데 정말 나쁘게 나오더라.” 평범한 직장인도 조진웅이 연기를 하면 괜히 악당처럼 보인다. 조진웅에겐 인물이 본래 가진 성향을 증폭시키는 큰 울림통이 있는데 이 울림통은 방향을 가리지 않는다. 그 거리낌 없는 태도와 뻔뻔함이 그를 대하는 사람들을 어딘지 위축시킨다. 형사를 맡을 때나 조폭 역할을 할 때도 그는 한결같이 크고 거대한 존재감으로 돌진한다. 이것은 선과 악의 문제라기보다 욕망의 크기에 관한 이야기다. 정의로운 역할이든 지독한 악당이든 관계없이 조진웅이 그간 맡았던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욕망에 솔직했다. 자신의 욕망에 대한 확고한 믿음 아래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인물. 배우 조진웅은 그걸 두고 “열심히 산다”라고 표현한다. 확실히 조진웅의 페르소나들은 내적 갈등보다는 외적인 장애를 부수는 데 열심이었다. 그래서, 무시무시하다.

<끝까지 간다>의 박창민은 그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건 둘째치고 그가 그간 어떤 캐릭터를 소화할 때도 양념처럼 선보여왔던 웃음기를 쏙 뺐다. “이전 역할들에 비해 훨씬 더 깔끔하고 호흡에 여유가 있었다. 가령 <분노의 윤리학>에서 깡패 명록이 코미디를 위해 의도된 호흡으로 둘러싸인 인물이었다면 <끝까지 간다>의 창민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존재감과 차분함이 있다.” 그렇다고 마냥 심각한 것만은 아니다. 상황 자체가 웃기고 극의 호흡이 이완과 긴장을 반복하며 의외의 웃음을 안기기 때문에 일부러 캐릭터를 과장할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동료들은 화면 구석에서도 깨알같이 개그를 시도하는데 나는 억눌러야 하는 역할이라 코미디를 하고 싶은 욕구를 참는 게 더 어려웠다”라는 그의 말이 괜한 너스레로 들리는 건 조진웅이라는 배우의 능글맞음이 <끝까지 간다>의 박창민에게도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 무섭지만 한편으론 그가 등장하는 타이밍 자체가 웃음을 유발한다. 그가 늘 맡아왔던 캐릭터들과 비슷하지만 또 다르다.

“결혼하고 나서 더 바빠졌다”라는 동료들의 고자질처럼 그는 ‘정말 쉬지 않고 찍는, 충무로에서 제일 바쁜 배우’ 중 한명이다. <끝까지 간다> 이후로도 <명량-회오리바다> <군도: 민란의 시대> <우리는 형제입니다> 등 올해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작품만도 4편에 달한다. 그러나 데뷔 이후 주로 강한 캐릭터를 도맡아왔음에도 캐릭터가 소모된다는 인상은 좀체 받을 수 없는 건 욕심 부려야 할 것과 포기해야 할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영리함 때문이다. 그는 <끝까지 간다> 촬영현장에서 장면마다, 심지어 자신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에서까지 아이디어를 내며 감독과 스탭들을 괴롭혔다. “찍고 나서 보니 재미없는 장면들이 있었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뭔가 뚜렷한 해결책이 없어 난관에 부딪쳤는데 여러 버전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다시 찍으면서 만족스런 장면들이 나왔다. 조명, 촬영, 음악 등 연기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까지 현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만들어나갔다. 현장 스탭과 배우들이 ‘동료’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반면 완성본에서 그렇게 고생해서 찍은 장면들이 빠진 데 대해서는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영화를 볼 때는 워낙 재밌게 봐서 몰랐는데 나중에 혼자 밥을 먹으면서 정리해보니 잘린 장면들이 생각나더라. 그만큼 영화가 매끄럽게 잘 나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지만 속도감이 중요한 영화이고 전체적으로 조화로웠으니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만족한다.” 그의 대답에서 맡은 역할에 갇히지 않고 영화 전체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엔 “다음에는 연기를 더 잘해서 잘리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라는 농담 섞인 다짐을 더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욕심 부릴 때는 부릴 줄 아는 남자. 현장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받아들일 줄 아는 현명한 욕심이 조진웅이라는 배우를, 그가 맡은 역할을 점점 거대하게 만들어나간다. 연기도, 흥행도, 끝까지 간다.

글 : 송경원 | 사진 : 오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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