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팬미팅에서 팬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닥터후 시즌8>의 주인공 제나 콜먼(왼쪽)과 피터 카팔디.
영국 드라마 ‘닥터후’ 장수 비결
영국 에스에프(SF) 드라마 <닥터후>는 쉽게 빠져들기 힘든 점이 많다. 타임로드라는 외계종족의 유일한 생존자인 ‘닥터’가 전화박스 모양의 타임머신 ‘타디스’를 타고 시공을 넘나들며 우주를 구한다는 모험담을 뼈대로 한다. 가족애 등 미국식 에스에프 드라마의 ‘공식’을 따르지 않았고, 온갖 우주 행성을 오가는 탓에 지구 종말의 날을 지켜보는 등 시즌이 거듭될수록 이야기가 확장돼 시즌1부터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1963년 시작해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영국의 국민드라마가 됐다. 1963~1996년 이른바 ‘올드 시즌’으로 불리는 26시즌이 방영된 뒤 중단됐다가 2005년 ‘뉴 시즌’으로 부활했다. 기간으로만 따지면 51년째. 장수드라마로 2006년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처음엔 닥터가 원소기호 등을 설명하는 어린이 공상 드라마였다는데, 어떻게 전세계인을 사로잡았을까. 한국에도 충성도 높은 시청자층이 있다. <닥터후 시즌8> 홍보차 9일 방한한 주인공 피터 카팔디와 제나 콜먼은 “마치 비틀스가 된 것 같았다. 공항에서 팬들이 너무 환대해줘 놀랐다”며 기뻐했다.
1963년부터 ‘외계인 닥터’ 12번 교체
2006년 장수드라마 기네스북 올라 닥터 다시 태어나며 배우 바뀌어
시청자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
시즌8 앞두고 주인공 방한
카팔디 “팬들 환대에 비틀스 된듯” ■ 배우가 아닌 ‘닥터’를 사랑해 카팔디가 출연하는 시즌8은 영국 <비비시>(BBC)에서 23일 첫 방송하고, 한국에서는 위성채널 <비비시 엔터테인먼트>에서 24일 저녁 8시30분에 시작한다. <닥터후>의 이전 시즌을 방영해왔던 <한국방송> 쪽은 “9월 이후 편성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카팔디의 인기는 뜨겁다. 9일 밤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팬미팅에는 카팔디의 얼굴 사진으로 만든 부채가 등장했고, “아이 러브 피터”라는 외침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카팔디조차도 방영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는 것에 “감동했다”고 한다. <닥터후>가 51년간 이어올 수 있었던 데는 배우가 아닌 ‘닥터’라는 캐릭터 자체를 사랑받게 만든 힘이 크다. 보통 시즌제 드라마는 주인공이 바뀌면 폐지하거나, 드라마 속 인물을 모두 바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끌어간다. 그러나 <닥터후>는 이른바 ‘재생성’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자연스럽게 주인공을 교체하며 지금껏 12명의 닥터를 배출했다. ‘닥터’가 죽을 때가 되면 지식과 기억을 제외한 모든 외형적인 특성이 바뀌고 새로운 인물이 태어나는 식이다. 카팔디는 <닥터후>가 반세기를 이어온 힘으로 “드라마 시리즈가 <닥터후>처럼 계속 주연배우를 바꿀 수 있다면 오래 방송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1대 닥터가 촬영 도중 건강 이상으로 하차하면서 제작진이 낸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닥터의 교체는 진통을 겪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오히려 팬덤 현상을 낳았다. 닥터가 바뀔 때마다 누가 새 닥터가 되느냐는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 팬들의 큰 관심사가 됐다. 비비시는 지난해 일요일 저녁 프라임 타임에 시즌8의 새로운 닥터를 발표하는 쇼를 편성했다. 발표 이후 한국의 포털에서도 ‘피터 카팔디’가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카팔디는 “닥터는 영국 드라마에서 최고의 인물이자 하나의 아이콘이다. 배우로서 닥터가 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다음 사람에게 넘겨질 때까지 최대한 강하고 좋게 유지되도록 관리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했다.
■ 무궁무진한 이야기의 확장 배우에 따라 드라마의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새로워진다. 가장 어린 열번째 닥터였던 데이비드 테넌트가 나올 때는 남자친구 같은 닥터였다면, 뉴 시즌에서 가장 나이 많은 카팔디는 중후한 매력이 기대를 모은다. 실제로 이날 팬미팅 뒤 공개된 시즌8의 1회에서는 11대 닥터인 맷 스미스보다는 냉소적이고 중후한 매력이 돋보였다. 그런 그가 좌충우돌하거나 유쾌한 대사들을 날리면 의외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터졌다. 카팔디는 시즌8의 닥터에 대해 “좀 더 외계인에 가까울 것이다. 열정적이고 유머감각도 있지만 인내심이 부족하고 공격적인 면이 있는 복잡한 인물”이라고 했다.
시즌7부터 닥터의 동행자인 클라라를 연기하는 콜먼은 “<닥터후>에서는 갈 수 있는 시간대와 장수가 무한정이기 때문에 아이디어가 바닥나지 않는 점도 성공 요인”이라고 했다. 카팔디도 “시공간을 초월해 여행할 수 있다는 점이 환상적”이라고 한다. 주인공만 바뀌고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게 보통인 시즌제 드라마와 달리 <닥터후>는 시즌을 거듭할수록 점차 이야기의 시간과 공간을 확장시켜왔다. 외계인들이 사람의 몸에 들어가는 식의 소소한 설정에서 갈수록 시간여행이라는 극중 장치를 십분 활용해 온갖 행성에서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진다. 찰스 디킨스, 셰익스피어 실제 역사 속 인물들도 등장한다. 그 상상력에 입이 벌어지는데, 처음부터 보지 않으면 그 매력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탓에 새로운 팬층이 유입되기 힘든 단점도 있다. 그러나 그만큼 이른바 ‘후비안’이라고 불리는 지지층들의 충성도는 높다. 이날 팬미팅에도 1000여명이 참석했고, 극중 외계인의 모습으로 분장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 닥터 키즈들 닥터가 된다! 영국에서는 <닥터후>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닥터후>를 만든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고 한다. <닥터후>가 방영되는 저녁 7시만 되면 가족들이 티브이 앞에 모여 가족간의 유대감이 강해졌다고도 한다. 카팔디도 그랬다.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였죠. 온갖 잡지에 <닥터후> 팬레터를 보냈고, 모든 닥터들의 사인을 받았어요. 14살 때 <닥터후> 제작진한테 편지를 보냈더니 제작진이 실제로 사용한 <닥터후> 대본을 보내줬어요. 처음 손에 쥔 대본이 바로 <닥터후> 대본이었죠.” 그런 카팔디는 40년이 흘러 실제 닥터가 됐다. 카팔디는 지난해 <비비시>와의 인터뷰에서 “9살 때 놀이터에서 닥터 연기를 했다”고도 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비비시 코리아·<닥터후> 공식 누리집 제공
2006년 장수드라마 기네스북 올라 닥터 다시 태어나며 배우 바뀌어
시청자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
시즌8 앞두고 주인공 방한
카팔디 “팬들 환대에 비틀스 된듯” ■ 배우가 아닌 ‘닥터’를 사랑해 카팔디가 출연하는 시즌8은 영국 <비비시>(BBC)에서 23일 첫 방송하고, 한국에서는 위성채널 <비비시 엔터테인먼트>에서 24일 저녁 8시30분에 시작한다. <닥터후>의 이전 시즌을 방영해왔던 <한국방송> 쪽은 “9월 이후 편성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카팔디의 인기는 뜨겁다. 9일 밤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팬미팅에는 카팔디의 얼굴 사진으로 만든 부채가 등장했고, “아이 러브 피터”라는 외침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카팔디조차도 방영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는 것에 “감동했다”고 한다. <닥터후>가 51년간 이어올 수 있었던 데는 배우가 아닌 ‘닥터’라는 캐릭터 자체를 사랑받게 만든 힘이 크다. 보통 시즌제 드라마는 주인공이 바뀌면 폐지하거나, 드라마 속 인물을 모두 바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끌어간다. 그러나 <닥터후>는 이른바 ‘재생성’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자연스럽게 주인공을 교체하며 지금껏 12명의 닥터를 배출했다. ‘닥터’가 죽을 때가 되면 지식과 기억을 제외한 모든 외형적인 특성이 바뀌고 새로운 인물이 태어나는 식이다. 카팔디는 <닥터후>가 반세기를 이어온 힘으로 “드라마 시리즈가 <닥터후>처럼 계속 주연배우를 바꿀 수 있다면 오래 방송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1대 닥터가 촬영 도중 건강 이상으로 하차하면서 제작진이 낸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닥터의 교체는 진통을 겪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오히려 팬덤 현상을 낳았다. 닥터가 바뀔 때마다 누가 새 닥터가 되느냐는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 팬들의 큰 관심사가 됐다. 비비시는 지난해 일요일 저녁 프라임 타임에 시즌8의 새로운 닥터를 발표하는 쇼를 편성했다. 발표 이후 한국의 포털에서도 ‘피터 카팔디’가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카팔디는 “닥터는 영국 드라마에서 최고의 인물이자 하나의 아이콘이다. 배우로서 닥터가 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다음 사람에게 넘겨질 때까지 최대한 강하고 좋게 유지되도록 관리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했다.
전화박스 모양의 타임머신 ‘타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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