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문화방송 제공
볼만한 광복절 특집 다큐
새로 발견된 엽서로 안 의사 추적
청산리전투 6개월 걸려 3D 복원
위안부 할머니 일상 다룬 작품도
새로 발견된 엽서로 안 의사 추적
청산리전투 6개월 걸려 3D 복원
위안부 할머니 일상 다룬 작품도
여기 한 장의 엽서가 있다. 안중근 의사와 그가 쓴 유묵(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이 실린 사진 엽서(사진)다. 순국 전후 발매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안중근 사진 엽서는 2장. 남루한 용모를 강조하거나 쇠사슬로 묶인 모습에 ‘암살자’라는 설명이 달린 것으로, 누가 봐도 비하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엽서는 다르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영정 사진으로 삼고 있는 단정한 용모에, 의사의 인품을 엿보게 하는 유묵 사진도 함께 실려있다. 유묵은 ‘대군을 거느리는 용장을 사로잡을 수는 있어도, 한 평범한 사나이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는 뜻으로, 엽서를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의 엽서는 누가 어떤 이들에게 판매하려고 만든 것일까.
15일 광복절 특집으로 방영하는 다큐멘터리 <안중근 105년, 끝나지 않은 전쟁>(문화방송 오전 8시30분)은 이 엽서의 태생을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일본 제국주의와의 전쟁, 그와 관련한 진실 등을 꼼꼼히 짚었다. 지난 100여년 동안 안 의사는 순국 후에도 자신을 ‘암살범’,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하려는 일본과 끝없는 전쟁을 벌여왔다. 이전 두장의 엽서는 그 전쟁의 흔적이다. 제작진은 “새롭게 발견된 엽서는 안중근 의사에 대한 존경과 숭모의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점이 학계의 연구가 필요해보인다”고 숙제를 던진다.
엽서의 발행처는 ‘도쿄인쇄주식회사 다롄출장소’였다. 안 의사가 순국한 1910년 당시 뤼순·다롄 지역에서 발행된 <만주일일신문>을 인쇄하던 곳이다. 이 신문은 당시 안 의사의 신문 과정과 공판 내용, 옥중 생활 등을 취재해 보도했다. 프로그램은 엽서에 실린 사진이 <만주일일신문> 1910년 3월26일치에 게재된 사실을 밝혀내며, 이 엽서를 펴낸 주체는 당시 투옥중이던 안 의사의 사정을 구체적으로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 다큐는 또 안 의사의 아들 안준생을 둘러싼 ‘변절자 논란’에도 카메라를 들이댄다. 안중생이 이토 히로부미의 위패 앞에 머리를 숙였고, 이토의 아들에게 사죄했다는 1939년 <경성일보>의 보도는 안중근 연구자들도 언급하기를 꺼리는 사안이었다. 제작진은 기록과 증언 등을 토대로 “안 의사의 독립 정신을 해치려는 일제가 만들어낸 연출”이라고 결론 내린다.
<교육방송>은 1920년 청산리 전투 5박6일간의 기록을 3차원(3D) 영상으로 복원한 <청산리전투>를 15일 밤 10시45분에 방송한다. 3디 영상 작업에만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전투가 벌어진 곳곳의 지형과 1920년 당시 청산리 일대의 꽃과 나무, 가옥 등을 고증으로 복원했다. 청산리전투에 참전했던 일반 병사의 친필 수기를 통해 러시아에서 청산리에 이르는 무기 운반의 비밀, 베일에 가려있던 독립군 사관학교의 실체, 훈련 내용 등 독립군의 숨은 이야기도 공개한다.
위안부 문제를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정치적 논쟁으로 풀지 않고, 할머니들의 소소한 삶을 통해 여성 인권 차원에서 접근하는 <나비의 꿈, 49일간의 이야기>(문화방송 16일 오전 8시50분)도 눈에 띈다. 정부 공식 기록상 위안부 할머니 생존자 수는 54명이다. 평균 연령 88살. 프로그램은 존중받아야 할 그들의 인권을 국가와 사회가 지켜주지 못한 것은 아닐까 반문하며, 평생 모은 재산을 장학금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등 사랑을 베푸는 할머니의 모습을 찬찬히 보여준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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