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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정통성 없는 왕의 패착 ‘왕의 얼굴’

등록 2014-12-04 19:29수정 2015-10-23 14:40

관상을 소재로 선조(이성재·왼쪽 사진)와 광해군(서인국·오른쪽)의 갈등을 그린 팩션 사극 <왕의 얼굴>
관상을 소재로 선조(이성재·왼쪽 사진)와 광해군(서인국·오른쪽)의 갈등을 그린 팩션 사극 <왕의 얼굴>
황진미의 TV 톡톡
<왕의 얼굴>은 관상을 소재로 선조(이성재·왼쪽 사진)와 광해군(서인국·오른쪽)의 갈등을 그린 팩션 사극이다. <한국방송2>(KBS2)는 <왕의 얼굴> 2회를 방송하기에 앞서 제작 화면과 토크쇼를 곁들인 <왕의 얼굴 스페셜>을 편성할 정도로 드라마에 기대를 쏟고 있지만, 총 24회 중 5회가 방송된 현재 시청률은 6~7%대로 낮은 편이다. 드라마의 만듦새가 나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저조한 까닭은 높은 기시감 때문이다.

일단 관상을 주요 소재로 삼는다는 점에서 영화 <관상>을 떠올리게 하고, 선조의 성은을 입은 상궁이면서 광해군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던 김개시를 중심으로 멜로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드라마 <왕의 여자>(2003)를 연상시킨다. 또한 왕자를 견제하는 왕이 나온다는 점에서 영조와 사도세자를 다룬 방영 중인 드라마 <비밀의 문>(에스비에스)과도 겹친다. 남장여자의 출연 역시 <성균관 스캔들>(2010) 이후 최근 팩션 사극의 유행이라 할 만큼 흔한 설정이라 식상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왕의 얼굴>은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진다. 드라마에서 선조는 관상에 집착한다. 그 이유는 “왕이 되어서는 안 되는 상을 지녔다”는 자신에게 내려진 예언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관상은 단순히 생김새를 일컫는 말이 아니라, 사람의 운명이자 성품이요, 소양이나 자질은 물론 이력이나 관계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쓰인다. 따라서 선조가 왕이 될 상이 아니라는 말은 왕이 될 만한 운명이나 자질, 관계 등을 갖추지 못했다는 총체적인 판단이다. 한마디로 ‘왕이 되어서는 안 되는 자’, 곧 ‘정통성이 없는 왕’이란 뜻이다.

실제로 선조는 정통성이 매우 약한 왕이었다. 명종이 후사 없이 죽자, 명종의 이복동생인 덕흥군의 막내아들인 선조가 왕으로 추대되었다. 직계승계를 원칙으로 삼던 당시 조선사회에서 왕의 이복조카에 불과한 그가 세자 책봉이나 후계자 수업도 없이 왕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파격이었다. 최초의 방계승계로 왕이 된 그에게 정통성 시비가 없을 수 없다. 드라마에서 선조가 관상에 집착하는 모습은 정통성 없는 왕권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읽힌다. 선조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아들인 광해군에게 투사하였다. 적자가 없는 상태에서 서자이자 차남이었던 광해군이 왕재로 주목받자, 끊임없이 정통성을 문제 삼으며 광해군을 괴롭혔다.

선조의 콤플렉스는 신하와 백성들에게도 화를 미쳤다. 선조는 언관들의 비판에 대결적인 자세를 취했고, 최초의 붕당인 동인과 서인이 출현했을 때 신하들의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분열을 부추겼으며, 이로 인해 붕당정치를 고착시켰다. 서인에서 동인으로 옮겨간 정여립을 배신자로 몰아 낙향시킨 뒤, 그의 새로운 사상적 자치조직인 대동계를 왕위 찬탈을 위한 내란음모사건으로 몰아 동인세력은 물론 수백명의 민간인을 학살하는 기축옥사를 일으켰다. 이후 수사에 앞장섰던 정철을 귀양 보내는 토사구팽의 방식으로 서인세력을 견제함으로써 왕권강화를 꾀하였다. 선조가 이간계를 통해 고착시킨 붕당정치는 결국 임진왜란을 막지 못한 국가적인 환란을 초래하였다.

영화 <관상>은 미래를 예측하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무도한 자들이 집권하는 것을 막지 못했던 자가 지니는 절망과 회한을 그리며,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맞은 관객들의 허탈감과 공명하였다. <왕의 얼굴>은 정통성 없는 왕이 불러일으키는 패착을 보여주며, 국정원 등이 개입한 부정선거로 당선된 박근혜 정부가 간첩조작사건, 내란음모사건 등을 터뜨리는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선조의 패착이 결국 임진왜란을 낳았듯,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살’보다 더 큰 국가적인 환란을 초래하지는 않을지 조바심이 드는 오늘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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