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스타들이 총출동해 복고 트렌드를 예고한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문화방송 제공
복고풍 주점·카페 '북적'…직장인들 '번개'도 활발
지난 4일 자정 가까운 시각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의 한 유흥주점.
1990년대 복고음악을 내세운 이곳에는 일요일 늦은 시각임에도 150여명의 손님들이 입장하려고 긴 줄을 섰다. 주로 30대 이상 직장인들인 이들은 추위도 잊은 채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나누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직장인 김모(34)씨는 "모처럼 옛날 기분을 느끼고 싶어 왔다"며 "평소에는 이 시간쯤이면 줄을 안 서고도 바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오늘은 1시간 30분이나 기다렸다"고 말했다.
지난 3일 MBC TV '무한도전'이 1990년대 가요를 주제로 선보인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 메인 공연 방송이 20%를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큰 화제를 모으면서 '1990년대 열풍'이 음원·노래방 차트를 휩쓴 데 이어 시민들의 술자리나 회식 문화로까지 번지고 있다.
모든 테이블이 만석이 된 이 주점에서 손님들은 H.O.T의 '위 아 더 퓨처' 같은 한 시대를 풍미한 댄스곡이 나올 때에는 그때 그시절의 안무를 따라 했고 조성모의 '투 헤븐' 같은 발라드곡이 나오면 한층 느려진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이곳을 찾은 직장인 권민희(30·여)씨는 "18년 전 노래의 가사와 음정, 안무까지 내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는 게 놀랍다"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다 같이 춤을 추니 동창생과 함께 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노래가 나오는 것으로 유명해진 서울 강남의 한 주점 주인은 "'토토가' 방송 이후 주말 손님이 배 이상 늘었다"며 "특히 방송에 나온 노래를 틀어달라는 요청이 폭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도 마찬가지였다.
조성모의 히트곡 '아시나요'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매장은 평일 오후임에도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꽉 차있었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강조하는 여느 카페와는 달리 복고를 앞세운 이곳에서는 매장 한 켠을 '우주소년 아톰' 인형이 장식했고, 최신곡 대신 S.E.S의 '아임 유어 걸', 핑클의 '영원한 사랑' 등 1세대 아이돌그룹의 노래가 잇따라 흘러나왔다.
카페 매니저 조모(21·여)씨는 "예전에 손님들이 쪽지에 적어 내는 신청곡은 최신곡이나 영화 OST 위주였지만 최근에는 H.O.T, S.E.S, 터보, 김건모 등 1990년대 노래로 옮겨 갔다"며 "연말연시를 맞아 30·40대가 송년회나 동창회를 하려고 모여 1990년대 문화를 즐기면서 추억에 잠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비단 술자리에서 뿐만이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서도 감지된다.
'토토가'가 전파를 탄 지난 주말 직장인들의 SNS는 1990년대 스타들에 대한 추억을 실어 나르느라 뜨겁게 달아올랐고 이를 매개로 급히 이뤄지는 '번개 모임'도 줄을 이었다.
트위터 통계 사이트인 '톱시'에 따르면 실제로 '토토가'는 공연 메인 방송이 나간 3일에 무려 3만5천600여건이 언급되는 등 큰 관심을 받았다. '90년대', '핑클', '김건모' 등 관련 단어 등도 마찬가지였다.
직장인 김유진(30·여)씨도 고교 동창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1990년대 방식의 클럽서 이뤄지는 '번개'를 제안해 함께 향수에 젖어 있던 동창생 5명과 함께 클럽을 찾았다.
김씨는 "새해 들어 30대가 됐다는 생각에 우울하던 차에 10대 때 즐겨 듣던 노래를 들으니 흥겨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며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20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경희대 영미문화학과 이택광 교수는 "1990년대에 대학 생활을 한 소위 'X세대'가 소비문화의 새로운 주축이 됐다"며 "영화 '건축학개론'이나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촉발된 1990년대에 대한 향수가 최근 '토토가'를 통해 본격화됐다"고 분석했다.
(서울=연합뉴스)
지난 주말 에서 방영된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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