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은의 TV와 연애하기
“우리 보이콧할까.” 수년 전 한 남자 배우의 인터뷰가 끝난 뒤, 참석했던 종합일간지 기자들이 모여 심각하게 의견을 나눴다. 일명 ‘라운드’ 인터뷰를 진행한 것이다. 카페를 빌려 대여섯 매체가 함께 그 배우와 인터뷰를 한다. 영화에서는 흔한 일이었지만, 드라마에서는 ‘아마도’ 처음이었다. ‘어떻게 인터뷰를 이렇게 진행할 수 있을까.’ 라운드가 생소했던 당시 기자들은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인터뷰는 준비에만 며칠이 걸린다. 출연 중인 드라마 외에도 이전 작품도 챙겨 보고, 지금껏 나온 인터뷰를 찾아보며 그 배우의 특징을 잡아낸다. 질문이 예리해야 알토란 같은 답변을 끄집어낼 수 있다. 다른 기자들에게는 하지 않았던 새로운 이야기를 뽑아내는 화술도 기자의 능력이다.
그런데 라운드에선 이런 노력과 능력이 빛을 발하기 어렵다. 여러 매체와 함께 인터뷰를 하면 질문과 답변이 공유된다. 같은 이야기를 갖고 ‘글빨’에 따라 포장만 달리할 뿐, 결국 내용은 새로울 게 없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와서 다른 기자가 한 질문의 답변만 열심히 받아적다 가는 기자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라운드조차 감지덕지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요즘은 술집 혹은 식당에 기자 수십명을 모아놓고 10~20분 정도 단체 인터뷰를 한다. 밥을 먹는 사이 테이블을 돌면서 몇마디 더 나누는 ‘의미없는’ 방식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배우들은 하소연한다. 매체가 너무 많아 어쩔 수 없다고. 맞는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출입처 중에서 기자가 가장 많은 곳이 연예 쪽일 것이다. 지상파 홍보팀에 등록된 출입기자만 70명 정도라고 한다. 인터뷰를 신청하는 취재기자는 보통 50여명. 하루종일 라운드를 진행해도 3~4일은 걸린다. 지난해 연말 한 배우는 각 매체를 상대로 일대일 인터뷰를 하다 지쳐 결국 남은 매체들을 대상으로 라운드를 잡기도 했다.
그런데 왜 모든 매체를 다 해야 하나. 선호하는 매체와 진행한다고 누가 뭐라고 하나. 뭐라고 한단다. 요즘은 몇군데만 하면 안 해준 다른 곳에서 안 좋은 기사를 내기도 한다는 게 매니저들의 하소연이다. 이런 우려를 뚫고 마음에 드는 곳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소신’과 ‘배짱’을 가진 배우는 별로 없다니, 나를 물먹이고 다른 곳과 인터뷰를 한 그들도 그저 고마울 뿐이다.
인터뷰는 교감이다. 배우가 작품에 바친 열정을 말로 표출해내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 배우를 시청자를 대신해 만나 관찰하며 새로운 모습을 끄집어내는 것 또한 기자에겐 쾌감을 준다. 그러나 이런 교감을, 쾌감을 느낄 기회가 점점 사라져간다.
매달 첫째주 월요일, 이 지면에 나가는 ‘사심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연예인에게 장문의 기획서를 보여주고, 찾아가는 발품을 판다. 거절 이유가 “다른 곳에서 욕한다”가 아니라, 충분히 검토 뒤 “이 인터뷰는 이런 부분이 나에게 맞지 않아”, “도무지 시간이 나질 않아”라는 이들이 반가울 정도다. 그들이 고심 끝에 어떤 결정을 하든 그 과정에서 교감은 충분했으니, 그걸로 됐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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