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의 한 장면. 사진 문화방송 제공
남지은의 TV와 연애하기
아악. 악몽이 다시 시작됐다. <나는 가수다>(문화방송)가 세 번째 시즌을 시작한다는 소식과 동시에 전화기가 불이 났다.
“친구야 취재 갈 때 나 좀 데려가줘”, “엄마 공연 좀 보자!” 사돈의 팔촌까지 애교에 부탁에 으름장을 놓아댔다. 2011년 <나는 가수다 시즌1>이 시작했을 당시 방송연예 담당 기자들은 쏟아지는 표 부탁에 몸살을 앓았다. 이소라, 임재범 등 관록의 가수들이 혼신의 열창을 다하는 ‘돈 주고도 못 볼’ 무대를 갈구하는 이들이 넘쳐났다. 매주 청중평가단 500명을 초대했지만 누적 대기자만 1만명을 넘어섰다. 경연이라 스포일러 방지 차원에서 기자들한테도 취재를 허락하지 않은 유일한 프로그램이었다. 상황을 모르는 이들은 성토했다. “뭐 그거 하나 못 해주냐!”
방송연예 기자들은 인사 발령과 동시에 민원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연예인 사인 요청에 인터뷰 장소를 발설하라는 요구는 애교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현장에서 보고 느끼고 싶어하는 표 부탁은 거절하느라 진땀을 뺀다. <불후의 명곡>(한국방송2)과 <콘서트 7080>(한국방송1) 같은 공연프로그램의 부탁이 가장 많다. 연말 가요시상식 때는 아주 오래전 기억도 나지 않는 스쳐 지나간 인연까지 연락이 올 정도다. 다음이 <개그콘서트>(한국방송2)다.
신청자가 거의 없어 단체를 초청해야 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오히려 민원이 고맙다. 우리 프로그램을 보고 싶어하다니, 제작진도 힘이 난다. 그러나 시청자의 지원이 넘쳐나는 프로그램의 민원은 어떤 의미에선 ‘반칙’이다. 시청자들은 입장권을 받으려고 상상 이상의 공을 들인다. 누리집 게시판 등에 신청 이유와 사연을 적어 내면 당첨과 추첨 등으로 선정한다. <개그콘서트> 한 회에만 수천건이 올라온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심금을 울리는 사연들이 넘쳐난다. 업무용으로 몇 장의 표를 쟁여둔다는 걸 아는 눈치 빠른 시청자들은, 방송사 홍보팀이나 제작진 개인 메일로 사연을 보내기도 한다. <한국방송> 홍보담당자는 “군대에 간다거나, 친구가 아프다는 사연이 가장 많다”고 했다.
당첨이 된다고 끝이 아니다. 지정좌석제가 아닌 경우 <개그콘서트>처럼 현장에서 표를 다시 입장순번표로 바꿔야 한다. 들어가는 순서대로 앞자리에 앉는다. 입장순번표를 바꾸려고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일찍 올 수 없는 이들은 퀵서비스업체나 심부름센터 직원을 동원하는 등 앞자리에 앉으려는 싸움도 상상 이상으로 치열하다. 이런 와중에 스태프가 맡아둔 자리로 누군가 성큼성큼 걸어와 앉는 상황이 벌어지면 시청자민원실에 항의 전화가 빗발친다.
시청자들의 투혼을 생각하면 제작진에게 표 부탁은 미안해서 못 한다. 시청자에게 나눠줄 표가 아니라, 업무용으로 따로 쟁여둔 표를 대상으로 한다지만, 그래도 그게 그렇다. 그러니 지인들이여! 표 부탁을 야멸차게 거절하더라도 너무 미워하지 말아달라. 표가 넝쿨째 굴러들어오는 날에는 먼저 제안할 테니.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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