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드라마 <달려라 장미>(SBS)는 제작지원사 ‘빚은’의 로고나 제품을 매회 노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시작한 일일드라마 <달려라 장미>(에스비에스)에서 주인공 백장미(이영아)는 애초 떡 매장 점원은 아니었다. 드라마의 제작지원사가 떡을 만드는 ‘빚은’으로 결정되면서 백장미의 직업도 빚은 매장의 점원으로, 주요 배경도 빚은 매장으로 바뀌었다. 극중 백장미는 에스엘(SL)식품회사 계약직 사원이 된 뒤 신규 매장에서 점원으로 일한다. 이곳에서 이 식품회사 회장의 손자인 황태자(고주원)를 만나 앙숙처럼 으르렁대다 사랑에 빠졌다.
요즘은 제작지원사에 따라 주인공의 직업이나 극중 상황을 결정하는 게 보통이다. <전설의 마녀>(문화방송)는 ‘파리바게뜨’가 제작지원을 하면서 주인공들이 빵집을 차리는 고군분투가 펼쳐졌고, <불굴의 차여사>(문화방송)는 헬스케어 전문기업인 ‘바디프랜드’가 제작 지원해 남자 주인공의 회사도 바디프랜드로 설정했다. 체인 치킨집에 맞서는 동네 치킨집의 이야기인 <내 마음 반짝반짝>(에스비에스)은 ‘쌀통닭’이 제작지원하고, 골프웨어 전문업체가 나오는 <황홀한 이웃>(에스비에스)은 골프웨어 ‘올포유’가 제작지원을 한다.
노출 회당 일정 금액을 내고 홍보하는 일반 협찬과 달리 제작지원사는 ‘메인 스폰서’로서 제작비의 상당액을 댄다. 그러면서 드라마 속 직업, 장소, 상품 등에 개입한다. 한 외주제작사 관계자는 “방송사로부터 받는 금액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제작비 지원은 무시할 수 없다.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협의해 조율한다”고 했다. 이는 2010년 간접광고가 합법화되고 상표의 직접노출이 가능해지면서 벌어진 일이지만,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최근에는 상표가 나오는 단순 노출을 넘어, 주인공의 입을 통해 맛이나 성능을 강조하고, 매장이 주요 촬영 장소가 되면서 마치 기업에서 만든 자체 홍보 프로그램처럼 느껴진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달려라 장미>가 특히 그렇다. 이 드라마는 메인 제작지원사 이름인 ‘빚은’을 그대로 사용하는데다 남녀 주인공이 일하는 장소가 이 회사 매장이다 보니, 매회 직간접적인 홍보가 이어진다. ‘3시간이면 맛보는 떡케이크’, ‘빚은과 함께하는 돌·백일 상차림’ 등 매장 안팎과 조리실 곳곳에 메뉴 포스터가 붙어 있어 드라마만 봐도 빚은의 메뉴를 상당수 외울 정도다. 매장 직원들은 가슴에 ‘빚은’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나오고, 조리실에서 대화하는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포스터의 로고나 설명 문구가 어깨 한켠으로 잡히기도 한다. <전설의 마녀>는 극중 상호는 ‘마녀의 빵집’이지만 영문명의 앞부분은 ‘파리’로 되어 있고, <불굴의 차여사>에선 오동팔(김용건)의 방에 바디프랜드의 안마의자가 놓여 있다.
<전설의 마녀>(MBC)는 제작지원사 ‘파리바게뜨’와 비슷한 로고를 사용하고 있다.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메뉴나 성능 홍보도 빠지지 않는다. <전설의 마녀>는 등장인물들이 심복녀(고두심)가 만든 ‘마법의 콩빵’을 먹으며 “쫄깃하고 고소하고 인절미 맛도 나는 게 일품이네”라며 빵맛의 특징을 자세하게 언급했다가 지난달 22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주의 조처를 받았다.
<달려라 장미>는 8회에서 떡이 시큼하다는 손님의 말에 백장미가 이렇게 답한다. 홍보영상 같다. “생과일 떡이라서 그래요. 시큼함이 느껴지는 건 생과일의 상큼함 때문이에요. 이 회사 면접 준비하면서 제품 조사를 다 해봤는데, 모든 매장에서 신선한 재료를 써요. 매일 떡 만들고 남은 재료는 사용하지 않거든요. 신맛 좋아하지 않으면 다음부터 다른 메뉴를 드셔보세요. 맛있는 거 많으니까.” 빚은의 누리집을 보면 ‘과일맛 설기케이크’와 ‘과일맛 경단’ 등 과일이 들어간 메뉴가 있다. <달려라 장미> 제작사 쪽은 “빚은에서 원하는 제품을 소개한다”고 했다. 로고나 상품 설명 등 잦은 노출에 대해서는 “규정에 벗어나지 않게 하고 있다”고 했다. <내 마음 반짝반짝>에서는 갓 태어난 아기가 “평생 이(치킨) 냄새를 맡고 살고 싶다”고 내레이션으로 얘기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겟잇뷰티>(온스타일)의 진행자 이하늬는 자신이 광고하는 회사의 제품을 실제 애용하는 상품으로 소개해 논란이 일었다.
제작지원사로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뷰티나 음식 정보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쏟아지면서는 예능에서도 노골적인 제품 홍보가 이어진다. <온스타일>의 <겟잇뷰티>는 4일 방송에서 진행자인 이하늬가 평소 애용하는 화장품이라며 특정 ‘마유크림’의 장점을 세세하게 소개했는데, 방송 이후 이하늬가 이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의 광고 모델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겟잇뷰티> 홍보담당자는 “이하늬씨가 광고 모델인 것은 맞는데, 그것과 상관없이 실제 애용하는 제품”이라고 밝혔지만,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판매사 쪽은 이하늬가 방송에서 마유크림을 소개한 이후 “판매량이 9~10배 늘었다”고 했다.
제작지원사의 제품은 매회 꾸준히 직간접적으로 노출될 수 있어 몇 번 나오는 피피엘(PPL)보다 홍보 효과는 훨씬 크다. <전설의 마녀>에서 개발 과정이 여러 회에 걸쳐 등장했던 ‘마법의 콩빵’은 실제로 지난해 12월 초 파리바게뜨에서 ‘옛날 콩고물 빵’이란 이름으로 출시됐고 10여일 만에 100만개 이상 팔렸다고 한다. 블로그 등을 보면 방송에 나와 맛있어 보여 샀다는 이들이 많다.
전문가들은 제작지원사가 주인공의 직업이자, 드라마의 주요 배경이 되더라도 노골적인 홍보는 제작진 스스로 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노골적인 홍보는 드라마 자체를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작품의 이야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홍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했다. 기획 의도에 맞춰 제작지원사를 선택해야 작품성을 해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2006년 만든 <연애시대>는 지원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직업군으로 변경하자는 유혹을 거절하고 북마스터인 감우성의 직업을 고수했고, 잔잔한 내용과 잘 어우러지며 ‘잘 만든 드라마’로 지금껏 회자되고 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프로그램과 누리집 갈무리, 방송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