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방송·연예

언니, 나 맘에 안 들죠?

등록 2015-04-09 19:41수정 2015-04-09 20:01

이재익의 명대사 열전
“언니, 나 맘에 안 들죠?”
- 한 예능프로그램 촬영장의 대화 중에서

방송국 피디로 일한 지 15년이다. 트렌드는 돌고 돈다지만 지칠 줄 모르는 분야도 있다. 리얼리티 예능이 그렇다. 적어도 내가 피디로 일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끝없이 확장되고만 있다. 출연자들이 함께 여행을 가는 걸로 모자라 가상 결혼을 하고, 가상 동거를 하고, 가상 입대를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최근 만우절에 ‘2차 동영상’ 유출 소동까지 일었던 예원과 이태임의 다툼 논란 유튜브 동영상. 유튜브 갈무리
최근 만우절에 ‘2차 동영상’ 유출 소동까지 일었던 예원과 이태임의 다툼 논란 유튜브 동영상. 유튜브 갈무리
그런데 가끔 프로그램 밖의 상황이 프로그램보다 더 많이 회자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그 끝을 보여준 예가 최근 배우 이태임과 가수 예원의 ‘반말-막말’ 파문이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다시 설명하기도 머쓱하지만 연예계와는 아예 담쌓고 사는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연기자 이태임이 차가운 바다에 들어갔다가 나오자마자 후배 연예인 예원과 마주쳤다. 추운 날씨에 힘든 촬영을 막 마치고 나온 상황이었던 이태임은 후배인 예원이 반말로 대거리하자 화가 폭발해 ‘쌍욕’을 내뱉었다. 그러자 예원도 혼잣말로 ‘쌍욕’을 중얼거리는 것으로 상황은 끝.

상황만 놓고 보면 누구나 살면서 겪을 법한 (특히 학교나 군대에서) 일상다반사의 사건이다. 그런데 몇 가지 변곡점을 거치면서 이 사건은 연예계 최고의 이슈로 떠올랐다. 처음에는 쌍욕을 한 이태임이 몰매를 맞고 출연중이던 프로그램들에서 하차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으나 막상 원본 동영상이 공개되자 예원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영상 공개 전에는 자신은 버릇없게 대한 적도, 욕을 한 적도 없다고 잡아뗀 것이 화근이었다.

인터넷은 우리 사회의 위계질서에 대한 대토론장으로 변했고 국민들은 1분 반 남짓의 짧은 대화 속에서 두 여자의 캐릭터와 속뜻을 읽어내는 독심술에 푹 빠졌다. 언론 매체의 태도에 따라 진실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 교훈도 얻었다.

이쯤 되니 도대체 이 사건과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이 다를 게 무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나보고 리얼리티 예능이 지녀야 할 덕목 중에서 알파와 오메가를 꼽아보라면, ‘돌발 상황이 주는 긴장감’과 ‘출연자들의 민낯을 엿보는 쾌감’, 두가지를 꼽겠다. 이 사건만큼 두가지 목표를 충실히 달성한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 또 있었던가?

더욱 자극적이었던 점은 주인공들이 여자, 그것도 아름다움이라는 상품성으로 잘 포장된 젊은 여자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화면에서는 예쁘고 귀엽고 착한 이미지만 보여주던 미녀들 입에서 막말과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는 영상은 그 자체로 반전지수 100%였다.

시청률과 함께 프로그램의 성공을 반영하는 바로미터는 유행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분야에서도 이번 사건은 이병헌의 ‘내일, 너, 로맨틱, 성공적’의 뒤를 잇기에 모자람이 없는 패러디 봇물을 이끌어냈다. 최근에는 한 치킨업체의 광고 카피 중 이런 문구도 봤다. ‘너 어디서 반마리니?’

예원과 이태임이 출연한 <띠동갑내기 과외하기>의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예원과 이태임이 출연한 <띠동갑내기 과외하기>의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너 어디서 반말이니?”라는 이태임의 대사와, 치킨은 반 마리로 먹어서는 안 되고 한 마리로 먹어야 제맛이라는 메시지를 결합한 카피다. 이 치킨업체는 패러디 광고 이후 200%의 매출 신장을 이뤘다고 하니, 이번 사건의 유일한 수혜자일까?

반면 해당 프로그램은 폐지되고 제작진에 대한 대중들의 비난도 쏟아졌다. 같은 피디로서 안타까우나, 이 사건이 벌어진 시발점이 자꾸만 무리해서 상황을 만드는 (예를 들면 추운 날씨에 바닷물 입수)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욕심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나저나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피디들은 참 고민이 많을 듯. 명색이 예능 피디인데 이태임과 예원보다는 쫄깃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