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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찌질한 B급, 우리가 A급이다

등록 2015-04-12 20:14수정 2015-04-13 18:32

예능대세로 뜨는 독특한 캐릭터들
독특한 캐릭터로 인기를 끄는 연예인들.
독특한 캐릭터로 인기를 끄는 연예인들.
“캐릭터가 만들어져야 한다.” 2012년 <무한도전> ‘못생긴 친구를 소개합니다’ 편에 나와 단숨에 스타가 된 가수 조정치는 이듬해 한 방송에서 ‘예능 대세가 되는 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예능 프로그램의 초대 손님이 한달만 해도 100명이 넘는 출연자 홍수 시대에 캐릭터를 만든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끼’ 넘치는 ‘꾼’들 사이에서 눈도장을 ‘콱’ 찍으려면 자신만의 차별성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다. 틈새 시장을 ‘나노 분자’처럼 쪼개어 공략해야 한다. 걸스데이 혜리는 <일밤-진짜 사나이>에서 ‘애교’로 떴고, 강남은 이상한 한국어 표기와 기막힌 친화력으로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에서 무명을 벗었다.

최근의 대세는 ‘비(B)급 캐릭터’다. 발연기, 돌아이, 소심남 등 찌질하고 엽기적인 캐릭터가 예능의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괜찮아요, 많이 놀랬죠’ 장수원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강균성
갑질에 울던 주눅맨 유병재까지
과거엔 비호감 특성이 이젠 인기

관찰예능 유행하며 시청자 동질감
소속사들도 캐릭터 만들기 고심

■ 찌질해도 괜찮아요!

최근의 비급 캐릭터 붐은 ‘로봇 연기의 창시자’ 장수원부터 시작됐다. 그는 2013년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 출연해 딱딱한 말투와 경직된 표정으로 이른바 ‘발연기’를 선보였는데, 이것이 ‘당당하게’ 로봇 연기라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았다. 그가 <사랑과 전쟁>에서 높낮이 없이 한 톤으로 내뱉은 “괜찮아요? 많이 놀랬죠?”는 유행어가 됐다. 로봇 연기를 앞세워 드라마 <미생>을 패러디한 <미생물>의 주인공을 맡았고, 광고까지 찍었다.

‘다중인격’ 강균성
‘다중인격’ 강균성

2002년 발라드 그룹 노을로 데뷔한 강균성은 ‘다중인격’ 캐릭터로 데뷔 13년 만에 인기몰이 중이다. <안녕하세요>에서 단발머리를 하고 나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흉내내 주목을 끌더니 <라디오 스타> <무한 도전> 등에 연이어 출연하고 있다. 미소년처럼 수줍게 얘기하다가 뜬금없이 “아하하하하하” 웃는가 하면, 교회오빠처럼 설교도 한다. 그도 방송에서 “내 속엔 다양한 내가 있다”거나 “저는 미쳤어요”, “나는 상 돌아이예요”라고 서슴없이 내뱉는다.

 ‘찌질남’ 유병재
‘찌질남’ 유병재

<에스엔엘 코리아>의 한 코너였던 ‘극한 체험’에서 연예인 갑질에 눈물을 삼키던 ‘주눅맨’ 유병재는 찌질한 캐릭터의 대표주자다. 억울해 보이는 표정이 기가 막히고, 소심함 때문에 주저하면서도 자신의 얘기를 다 하는, 그 뒤에는 쪼그리고 앉아 후회하는 동작 하나하나가 웹툰을 보는 듯 배꼽 잡게 한다. 전현무는 깐죽거리는 캐릭터로 인기를 끌고 있고, 서장훈은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라며 일단 부인하는 투덜이 캐릭터로 사랑받는다. 박상혁 <에스비에스> 예능 피디는 “요즘은 예능에 출연해 인기를 얻으려면 대중에게 각인될 수 있는 나만의 캐릭터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 패러디에 짤방 봇물…친근하니 좋잖아!

발연기에, 감정 기복이 심한 모습은 연예인들의 감추고 싶은 비밀이었다. 박상혁 피디는 “예능에서는 밝고 즐거운 모습만 보여주려고 해서 예전 같으면 투덜거리는 모습 등은 대부분 편집됐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부족한 부분, 독특한 행동을 오히려 강조하는 ‘정면승부사’들이 사랑받는 것이다.

독특한 캐릭터로 인기를 끄는 연예인들. ‘찌질남’ 유병재
독특한 캐릭터로 인기를 끄는 연예인들. ‘찌질남’ 유병재

이런 비급 캐릭터의 인기는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유행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병혁 <문화방송> 예능 피디는 “관찰 예능 등 사람을 보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요즘은 특이한 인물을 보는 것에서 재미를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도 “리얼버라이어티가 인기를 끈 이후 시청자들이 멋있고 잘난 연예인보다는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허당의 연예인을 보면서 나와 다르지 않구나, 친근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예능을 놀이의 도구로 삼는 소비 패턴의 변화와도 연관된다. 박상혁 피디는 “이제는 예능을 한번 보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재미있는 장면과 연예인의 표정 등을 이모티콘이나 패러디물로 만들어 퍼나르면서 연예인의 캐릭터를 놀이의 도구로 삼는다”고 했다. 장수원도 <사랑과 전쟁> 방영 당시에는 연기를 못해서 비난을 받았는데, 그가 연기한 영상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면서 수개월이 지난 뒤에 누리꾼들 사이에서 ‘로봇 연기’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탄생했다.

‘로봇 연기’ 장수원.
‘로봇 연기’ 장수원.

■ 연예인들 때아닌 캐릭터 고심

독특한 캐릭터로 한방에 뜬 연예인들이 늘면서 소속사들도 때아닌 캐릭터 잡기에 고심중이다. 박상혁 피디는 “예전에는 연예인들이 개인기를 준비해오거나 춤을 연습해와 댄스 신고식을 많이 했는데 요즘은 캐릭터를 잡아 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비급 캐릭터까지 등장하면서 그 이상의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를 싸매지만, 피디들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게 성공 비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강균성은 방송에서 “(자신의 캐릭터가) 평소 내 모습”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서장훈이나 유병재도 평소 성격 그대로 꾸미지 않은 모습을 내세웠기 때문에, 비호감을 비켜갈 수 있었다는 게 피디들의 이야기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한 배우의 매니저는 “춤이나 성대모사 연습을 시키다가 이제는 캐릭터를 만들려고 고심하고 있는데 사실 할 만한 건 다 나와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할 게 없을 때는 ‘먹방’을 선보이거나, 방송에 독특한 옷을 입고 나오면 ‘기본’은 간다”고 귀띔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 사진 각 방송사 제공

프로그램도 ‘병맛’이 ‘감칠맛’

‘나홀로 연애중’ 연예인과 모니터연애
‘초인시대’ 25살 동정남의 초능력
웃음 뒤엔 삼포세대 청춘의 현실

왼쪽부터 <나홀로 연애 중>, <초인시대>.
왼쪽부터 <나홀로 연애 중>, <초인시대>.
25살이 된 남자가 성 경험이 없으면 초능력이 생긴다. 삼류 영화에도 나올 법하지 않은 이 내용은, <티브이엔>의 코믹드라마 <초인시대>(금 밤 11시30분·오른쪽 사진)의 설정이다. <초인시대>는 우연한 기회로 초능력을 갖게 된 20대 취업준비생들의 모험 성장기를 표방하는데, ‘찌질함의 대명사’, 유병재가 극본을 쓰고 주연도 맡았다.

비(B)급 캐릭터를 앞세운 연예인들이 ‘예능 대세’로 떠올라서인지 비급 내음이 물씬 풍기는 프로그램도 연이어 선보이고 있다. ‘비급 코드’는 일명 ‘병맛 코드’라고 불리는데, 이해할 수 없는 설정과 대사 등으로 허를 찔러 웃음을 유발하는 특징을 보인다.

영화에서는 이미 비급이 주류로 올라섰다. 스무살들의 찌질한 무용담을 그린 <스물>이 관객 200만명을 넘었고, 엽기적 영웅의 이야기인 <킹스맨>은 600만을 돌파했다. 공연계에서도 다음달 26일까지 선보이는 <난쟁이들>과 오는 29일까지 무대에 오르는 <소뿔 자르고 주인 오기 전에 도망가 선생> 등 비급 바람이 불고 있다. 티브이에서는 19금을 활용한 여러 가지 코너를 선보이는 <에스엔엘 코리아 시즌 1>(티브이엔·2011년)로 시작된 병맛 코드가 점점 활발해지고 있는 모양새다.

가장 화제를 모으고 있는 프로그램은 역시 <초인시대>다. 기주봉이 진지한 표정으로 유병재에게 묻는다. “너 동정이지?” 유병재가 아니라고 하자 옆에 있던 개가 짖는다. 결국 시간을 되돌리는 초능력을 얻게 되고, 부끄러움을 느껴야 능력이 발휘된다는 말에 벌거벗고 거리를 질주한다. 초능력이 생기자 자신을 무시한 사람들을 찾아가 욕설을 퍼붓는 등 젊은 세대가 즐기는 비급 유머 코드가 그대로 담겨 있다. <나홀로 연애 중>(제이티비시, 토 밤 11시·왼쪽)은 일본의 오타쿠 문화를 연상시킨다. 성시경, 전현무 등 남자 연예인들이 스튜디오에서 모니터에 나오는 여자 연예인 한명과 가상의 데이트를 한다. 이들은 화면 속 여자 연예인의 행동을 보며 설레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녀와 연애하는 일본의 시뮬레이션 게임의 실사판 같다. 성시경은 프로그램 방영 전 제작발표회에서 “<나홀로 연애 중>은 병맛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니터를 보고 어떻게 감정을 느끼나 했는데, 녹화하면서 연애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두 프로그램 모두, 웃음 뒤에는 지금 이 땅의 청춘들의 현실이 깔려 있다. <초인시대>의 주인공은 취업준비생으로 88만원 세대 혹은 삼포 세대로 불리는 이 시대 청춘들의 고민을 풀어낸다. <나홀로 연애 중>도 팍팍한 삶 때문에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 세대를 투영했다. 유병재는 최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세상이 청춘들에게 너희는 무능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청춘을 ‘쓸모없다’고 말하는 세상에게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는 걸 말하고 싶다”고 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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