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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최민수 “호두 깨먹느라 트로피도 다 깨뜨려 없애”

등록 2015-05-03 19:34수정 2015-05-06 09:36

전 국민의 동네 형이 되고 싶다”는 최민수가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작업실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전 국민의 동네 형이 되고 싶다”는 최민수가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작업실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조금 새로운 인터뷰 - 사심(4心) 인터뷰] 최민수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최민수의 작업실에 ‘사심’이 출동했다. 그와 우정을 나누는 사이이자 뮤지션으로서 최민수를 높이 평가하는 공연장 롤링홀의 김천성 대표와 배우 최민수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최민수가 직접 부른 ‘동네 동생들’(음악바 사장 남형우, 회사원 장영돈씨)과 남지은 기자가 모였다. 작업실 입구부터 세간의 고정관념(무섭다, 거칠다)과는 사뭇 다른 섬세함이 느껴진다. 최민수가 ‘아지트’라고 부르는 작업실은 페인트칠부터 아기자기한 소품 하나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원래 베이스 기타를 팔던 가게를 4개월 동안 지인들과 하나하나 고쳤다고 한다. “이곳에서 매일 오후 1시30분부터 4시30분까지 시도 쓰고 노래도 만들어요.” 전문가 뺨치는 목공예 솜씨도 그렇지만, 8년 전부터 ‘36.5도’라는 4인조 밴드를 결성해 지금껏 두장의 음반을 내고 꾸준히 공연을 해왔다는 사실도 놀랍다.

최민수는 지난달 8일 두번째 음반 <말하는 개>를 발표하고 쇼케이스를 열었다. 1년 전부터는 합정동의 작은 술집인 ‘트라이브바’에서 매월 마지막 토요일마다 공연을 하고 있다. 오는 16일엔 <딴지일보>가 운영하는 카페 ‘벙커1’에서 공연한다. 앨범 전 수록곡을 작사·작곡했고 보컬까지 맡는다. 1집이 록발라드 위주라면 이번은 영국 모던록 색채가 가미된 하드록이다. 최민수는 자신의 노래를 ‘샤먼록’이라고 부른다. 자연에서 위로를 받듯, 세태를 풍자하며 위로하는 가사가 많다.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만 연주(2집)한 그의 음악은 컴퓨터로 짜맞춘 현란한 전자음도, 기교도 없지만 그의 삶처럼 꾸밈없이 솔직하다.

8년 전 ‘36.5도’ 밴드 결성해
음반 내고 매월 한차례 공연
인터뷰 중 갑자기 한곡 뽑더니
“2절도 부를까?” 장난기 넘쳐

김천성 난 최민수가 음악을 하는 걸 보고 놀랐다. 악보를 그릴 줄 모른다. 그런데 작사·작곡, 편곡을 한다.

최민수 꼭 오선지에 콩나물을 그려야 음악인가. 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보다 음악을 통해 내 마음을 전하는 게 더 편하다. 그냥 행복하고 싶어서 하는 거다. 세상에서 더는 놀라고 당황할 일이 없는데, 음악은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너무 힘들다. 그러면서도 나를 너무나 행복하게 한다. 음악에서 무한한 코드 라인이나 음계 라인을 발견했을 때 행복을 느낀다. 세상에 없던 것을 표현하는 것 같다.

남지은 세태 풍자 가사가 인상적이다. 2집 ‘말하는 개’는 진심과 자유가 억압된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민수 사람들의 걷는 속도, 말하는 톤 등 사람에 관한 모든 것이 음악의 소재다. ‘말하는 개’는 개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노래인데, 나만의 해학적인 표현으로 삶을 얘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음악은 메시지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는가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자유다. 음악을 통해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그냥 단순하게, 순수하게 살자는 것이다. 어린애같이 거짓 없이.

김천성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는 뭔가?

최민수 1집의 ‘스모키 마운틴 테이크 2’. 산에 있을 때 유서로 쓴 거다. 죽으려고. (그는 갑자기 기타를 잡고 노래를 1절까지 불렀다.) 2절도 할까?

김천성 아니.(좌중 웃음) 최민수가 1990년대 <토토즐>에서 딥 퍼플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영향받은 뮤지션이 있나?

최민수 딥 퍼플과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좋아했다. 20대 때 심장이 안 좋은 친구가 있었는데 둘이서 “내일의 죽음을 기다리자”며 헤드폰 끼고 말없이 산 세월이 많았다. 그때 주로 들었던 게 딥 퍼플과 핑크 플로이드다. 그러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구속이 돼버린다. 나는 배우라는 것도 의식을 안 한다. 우리집에는 내가 배우라는 증거가 하나도 없다. 트로피도 호두 까먹다가 깨뜨려서 없애고,(좌중 웃음) 이사가면서 버리고, 그래서 하나도 없다. 포스터 사진도 없고 대본도 없다.

남지은 음악프로 출연도 잘 안 하는데, 수익이 나나?

최민수 섭외가 안 온다.(좌중 웃음) 또 돈 벌려고 하는 건 아니니까. 음악을 산업적으로 생각하면 자유로운 음악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밴드 활동으로 버는 수익도 거의 없다. 그냥 공연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서 한다. 1년 전부터 트라이브바에서 공연하는데, 관객들한테 입장료 1만원을 받는다. 5명이 올 때도, 50명이 올 때도 있다. 수익금은 출연 밴드 전체(약 10명)와 똑같이 나눈다.

남형우 최민수 공연이 바 수익에는 전혀 도움 안 된다. 오히려 단골 손님들은 공연이 끝나면 온다.(좌중 웃음)

남지은 요란한 록일 줄 알았는데, 깨끗한 노래라 놀랐다. 어느덧 배우 데뷔 30년차. 23살이던 1985년 연극 <방황하는 별들>로 데뷔했고, 1986년 영화 <신의 아들>로 스타덤에 오른 이후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청춘스타로 시대를 풍미했다. 1990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와 1995년 <모래시계>는 최민수를 빼놓을 수 없는 대표작이다. ‘대체 불가능한 배우’(김선영 티브이 평론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너무 일찍 정점을 찍은 탓일까, 1990년대 대표작을 뛰어넘는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그 순간 최선을 다했다면 된 것”이라며 30년을 맞는 소감도 “정말 많이 했네”라며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김선영 많은 사람들이 최민수 하면 아직도 <모래시계>를 얘기하는데. 최민수한테 <모래시계>는 어떤 의미로 남아 있나?

최민수 특별히 생각하지 않는다. 내 세포 속 어디에는 남아 있겠지만 이제는 끄집어내어지지는 않는다. 내가 지금까지 뭘 해왔던가는 부질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합정동선 그냥 동네형이라 불려
수상거부가 왜 화제인지 모르겠어
허세있음 어때? 그것도 낭만인데
그냥 애처럼 순수하게 살고 싶어

김선영 30년간 지켜온 작품 선택 기준은 뭔가?

최민수 이렇게 하면 팔릴 것이고 이렇게 하면 관객이 들겠다는 그런 장치들이 너무 드러나면 안 하게 된다. 어떤 예술 영역이든 사람 중심이어야 하는데, 어떤 작품들은 언어에 양념을 너무 세게 친다. 배우, 작가, 연출이 공동으로 모여 진영을 짜듯 작품을 준비해야 막장도 안 나오고 쪽대본도 안 나오는데, 요즘은 일단 유명 작가와 스타 배우를 붙여놓고 시작한다. 그래서 1회만 폼나게 찍는다. 지난해 한 방송사에 갔다가 엘리베이터 모니터에 프로그램별 시청률이 나오는 걸 보고 충격받은 적이 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마저도 시청률과 싸워야 한다. 그걸 강요해 쥐어짜는 거다. 이런 것들을 자꾸 따져서 그런가? 요즘은 작품이 안 들어온다.(웃음)

남지은 작품이 안 들어온다면, 상업적이라도 눈 딱 감고 도장 한번 찍을 수 있지 않나?

최민수 그러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 혼자 있을 때는 ‘다음에는 찍자, 진짜 찍자’ 다짐하는데, 막상 닥치면 안 된다. 배우 생활 30년 하면서 인기와 돈을 좇아 뭘 하지는 않았다. 돈이 필요하니 꼭 해야지 생각해도 막상 만나면 안 하게 된다.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남지은 현장에서 자기 주장이 강해 피디들은 함께 작업하기 힘든 배우라고도 하더라.

최민수 내가 고분고분한 배우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그거 갖고 심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좀 수그려야 하는 거 아닐까. 수완이잖아. 진짜를 감추고 해도 되잖아’ 하고. 근데 계속 머리 뒤편에서 당기는 소리가 있다. ‘적어도 너는 알잖아.’ 그게 답이다. 그거를 느끼는 순간에 ‘수완이 뭐 필요 있어.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눈 딱 감고’가 평생 나를 옥죌 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못 하게 된다. 근데 집에 가서 후회한다.(좌중 웃음)

남지은 과자 광고가 들어왔는데 맛없다고 안 했다는 말을 들었다.

최민수 그것 말고도 많다. 한 광고에서는 머리를 좀 자르라고 하기에 ‘내 머리 내가 마음대로 하는 거지’라는 생각에 계약을 안 했고, 한 광고에서는 회장한테 제품에 대한 아쉬운 점들을 얘기했더니 그것 때문인지 재계약을 안 하더라.

김선영 지난해 연기대상 수상거부 이유(“아직도 차가운 바다 깊숙이 갇혀 있는 양심과 희망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나 할까요? 법과 상식이 무너지고 진실과 양심이 박제된 이 시대에 말입니다”)가 화제를 모았다. (최민수는 지난 1월 종영한 드라마 <오만과 편견>에서 냉철한 부장검사 역을 맡아 <엠비시 연기대상>‘황금연기상’을 수상했으나 거부했다.)

최민수 이 얘기는 하고 싶지 않은 게, 그게 왜 화제가 돼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픈 걸 아프다고 한 것뿐이다. 그런 말 했다고 ‘개념연예인’이니 하는데, 그런 말도 싫다. 그냥 그게 정상이다. 그게 특별해 보이는 것이 싫다. ‘거짓말하지 말자’, 어릴 때 다 배운 거 아닌가. 배운 대로 살면 되는 거다. 아이처럼. 순수하게.

장영돈 작년에 카페에서 친구들과 커피내기 가위바위보를 하는데 민수 형이 갑자기 훅 끼어들었다. 오며 가며 카페에 앉아 있는 걸 보며 멋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다가가기 힘들었는데 너무 놀랐다. 잘 챙겨주고 멋진 ‘동네 형’이다. 가위바위보는 졌지만.

최민수 ‘남자는 주먹’인데 다들 빠를 내더라고. (좌중 웃음)

남지은 바이크 타고 음악 하고 이런 것들을 다 허세라고도 보지 않나.

최민수 허세는 다른 이름으로 ‘낭만’ 아닌가? 바이크를 타면 하늘이 나를 향해 열린다. 기분이 정말 좋다. 이 말이 인색한 눈으로 보면 ‘병신 꼴깝’이 되지만, 그런 낭만 없이 어떻게 사나. 나이 먹었다고 낭만을 버리면 안 된다. 70살, 80살이 되더라도 눈은 10대, 20대 때의 열망을 갖고, 세상을 처음 바라보듯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는 신경쓰지 않는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대로 얘기하니까.

남지은 자유로운 영혼이라 막 돌아다닐 것 같은데, 알고 보니 애처가더라. 아내에게 매월 30만원씩 용돈을 받아 쓴다는 것도 놀랐다.

최민수 산에서 내려온 뒤(그는 2008년 노인 폭행 사건-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이후 2년간 산에서 살았다) 아내에게 ‘돈 없어도 살겠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30만원만 주더라. 근데 정말 돈 쓸 일이 없다. 명품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노래만 만들고 하니까. 술도 10년 전에 끊었다. 너무 좋아해서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아서.

남지은 자상한 아빠인 것도 의외다.

최민수 특별한 일 없으면 매일 오후 4시30분 집으로 간다. 약속이나 일이 있어도 저녁 8시까지는 들어간다. 아내가 바깥일을 하니까 내가 둘째 아이(고등학생. 첫째는 대학생) 오는 거 기다렸다가 같이 밥 먹고 시간을 보낸다. 산에서 살면서 가족들과 떨어져 있던 시간이 있었으니까 그 시간만큼 더 잘해주고 싶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심의 발견

호기심의 발견은 진짜 사람

그의 화법은 독특하다. 좀 장황하기도 하고 때론 농담과 진담의 경계도 모호한데 놀라운 건 모순이 한 군데도 없다. 어떤 각도의 질문이 들어와도 답변이 상충하지 않는다는 건 말과 행동과 가치관이 일치하는 이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다. 그는 진짜 ‘진짜’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우정의 발견은 힐링의 존재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욕심을 내려놓는 게 쉽지 않은데. 조급해지고 뭔가 빨리 이루고 싶어질 때, 최민수를 만나면 마음이 편해진다. 성공에 대한 집착과 욕심을 내려놓게 되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김천성 롤링홀 대표

선입견의 발견은 순수함

포털에 최민수를 치면 연관검색어로 ‘화생방’이 뜬다. 2006년 예능프로그램 <품행제로>에서 방독면을 쓰지 않고 화생방 훈련에 참가한 장면은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괜찮았느냐”고 물으니 “죽는 줄 알았다”며 “으하하하” 하고 웃었다. “참을 만했어” 센 척하며 ‘허세’ 부릴 줄 알았는데, “다신 못해”라며 웃는 얼굴 속에 그가 갈망하는 아이의 순수한 솔직함이 보인다.

남지은 기자

동경의 발견은 의리남

몇년 전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발벗고 도와줬다. 믿었던 친한 사람들보다 더. 그렇게 친하지 않았는데도 내 일처럼 옆에 있어줬다. 그때 알았다. 진짜 형이구나.

남형우 음악바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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