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앵그리맘>의 장면들.
남지은의 TV와 연애하기
연예인을 인터뷰할 때 물어보면 안 되는 몇 가지가 있다. “그 소문 진짜예요?” 등 주로 사생활에 관한 것들이다. “출연료 얼마야?” “발연기 하더라” 등 자존심을 긁는 질문도 안 된다. 그냥 암묵적으로 그렇게 한다. 물어도 대답도 안 한다. 매니저도 끼어든다.
지난해부터는 한가지가 더 늘었다. ‘세월호’다. 300명이 넘는 생명이 안타깝게 희생된 참사인데, 연예인들은 이 단어에 유독 민감해한다. 참사 두달 뒤에 치러진 6·4 지방선거 당시 ‘선거합시다’라는 <한겨레>의 캠페인에 참여하겠다는 연예인이 거의 없었다. 이 캠페인은 정치적 입장을 떠나 유권자들이 모두 투표권을 행사하자는 내용으로, 이전에는 매년 수많은 연예인들이 흔쾌히 참여해 관련 멘트를 해주었다. “세월호 때문에 올해는 안 하고 싶다”는 게 거절 이유였다. “세월호가 진영논리에 휘둘리고 이념적인 문제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올해 초 방영한 한 드라마는 촛불 추모제를 하는 극중 사진을 보도자료로 뿌린 뒤, 뒤늦게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며 기사에 활용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해 연말 방송 3사의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연예인 중 세월호 관련 얘기를 한 사람은 박영규와 최민수 둘뿐이었다. 모두가 발언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시상식 등에서 사회적인 이슈나 큰 사고 등에 대해 당당하게 발언하는 외국 배우들에 견주면, 한국 배우들은 너무 몸을 사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7일 종영한 <문화방송> 수목드라마 <앵그리 맘>의 ‘용감한 도전’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앵그리 맘>은 지난달 30일 14회부터 세월호를 연상케 하는 내용으로, 세월호의 아픔에 무뎌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 일침을 가했다. 극중 김희선의 딸인 김유정이 다니는 명성고등학교 별관이 부실공사로 붕괴하면서 학생 6명이 죽었다. 재단이 공사 대금을 빼돌려 특정 정치인의 선거자금으로 사용한 것이다. 무너진 건물 앞에서 아이들을 찾아 헤매는 부모는 진도 팽목항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던 유가족을 연상케 했고, 노란 국화로 장식된 영정이 있는 강당은 세월호 참사 당시 안산의 합동 분향소였다. 학교가 진상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이미 죽은 건설회사 관계자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장면, “안내 방송만 했어도 아이들이 살 수 있었다”는 한 엄마의 외침까지, <앵그리 맘> 속 세상은 오늘의 대한민국이었다.
<앵그리 맘>은 현실을 담는 데 그치지 않고 희망도 투영했다. 진실은 밝혀졌고, 붕괴 책임자들은 벌은 받았다. 또 하나, 유가족 대표인 김희선을 반사회적인 인격 장애자로 몰아 본질을 흐리려는 학교 쪽의 물타기에 누리꾼들과 국민들은 휘둘리지 않았다. “물타기 하지 마라”, “본질은 명성 붕괴다”라며 유가족을 끝까지 믿고 응원했다. 아파서 아프다고 말하는 가족들한테 지겨우니 그만하라는 이들도 드라마에는 없었다. 그 믿음이 진실을 밝혀낸 힘이 됐다. 때론 상대가 불편해하더라도, 매니저가 막더라도 물어야 할 때가 있다. 현실을 담는다는 티브이도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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