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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나는 5학년 2반, 좀 놀 줄 아는 청춘

등록 2015-05-17 19:38수정 2015-05-18 10:16

비바람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지난 11일 전남 무안의 갯벌체험장에서 40~50대인 <불타는 청춘> 출연자들이 신나게 논 뒤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왼쪽부터 김완선, 김국진, 김동규, 진미령, 강수지, 김혜선, 김도균, 김일우. 에스비에스 제공
비바람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지난 11일 전남 무안의 갯벌체험장에서 40~50대인 <불타는 청춘> 출연자들이 신나게 논 뒤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왼쪽부터 김완선, 김국진, 김동규, 진미령, 강수지, 김혜선, 김도균, 김일우. 에스비에스 제공
중년 들썩이게 하는 ‘불타는 청춘’
싱글 중년 연예인들 1박2일 여행
대학 MT 온듯 까르르·시끌시끌
“얼굴만 늙었지 소년·소녀 같아”
치매 걸린 엄마·조연이 된 설움…
비슷한 경험 겪는 40~50대 공감 사
숨길 것 가릴 것 없이 19금 토크도
가수 오승근은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했고, <중년 예찬>의 저자 이철환은 “이제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을 뿐”이라고 했다. 50대 남짓을 일컫는 이 시대 중년의 이야기다. 그러나 현실은 노래처럼 달콤하지 않다. 먹고사는 일에 치여 살다 보니 청춘이 지나갔다.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쓸쓸하다. 마음은 ‘이팔청춘’이라고 부르짖는데 정작 몸은 움츠러든다. 그런 중년들한테 가슴속 청춘을 끄집어내어 우리처럼 놀아보라고 옆구리를 찌르는 프로그램이 눈길을 끌고 있다. 갔다 왔든 한번도 안 갔든, 어쨌든 지금은 ‘싱글’인 중년 연예인들이 1박 2일 동안 함께 여행하는 <에스비에스>의 예능프로그램 <불타는 청춘>(금 밤 11시25분)이다.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한국방송2)에서 도지원과 손창민이 결혼하고, 예능프로그램 <님과 함께>(제이티비시)에서는 중년의 연예인들이 가상 부부로 등장하는 등 중년의 사랑은 드라마와 예능의 주요 콘텐츠가 됐다. 그러나 <불타는 청춘>은 단지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중년의 인생, 그 자체를 즐겨라’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출연자들 사이 오가는 대화에서 또래의 공감을 끌어내 나를 돌아보게 한다. 이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박상혁 피디는 “<불타는 청춘>은 중년이 ‘썸’ 타는 얘기가 아니라, 친구가 되고 어울리는 과정을 통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국진도 “연애하는 프로가 아니라, 친구를 만드는 프로그램이라 흔쾌히 출연했다”고 말했다.

■ 친구야 놀자!

지난 11일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부르짖는 평균 나이 52살의 ‘불타는 청춘’들이 전라남도 무안의 갯벌체험장에 모였다. 가수 강수지와 김완선, 그룹 백두산의 김도균, 성악가 김동규, 탤런트 김혜선과 개그맨 김국진 등이 갯벌을 얼음판 삼아 썰매처럼 타고 놀았다. “오빠 달려~”라는 강수지의 외침부터 각자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통에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끌벅적하다. 그냥 보면 영락없는 대학생 무리다. 비도 오고 날아갈 듯 세찬 바람에 옆구리가 쑤실 것도 같은데, 강수지는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즐겁다”며 열심히 놀았다. “언제 이렇게 해보겠어요. 갯벌에서 노는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불타는 청춘>은 한달에 두번 격주로 여행을 간다. 전남 광양과 담양 등 소박하지만, 자연이 어우러진 정겨운 곳을 우선으로 한다. 22일 방영분인 무안에서는 갯벌과 양파 마을에 갔다. 좋은 데 다 가봤을 것 같은 사람들인데 의외로 이들은 “학창시절 소풍 가는 것처럼 이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했다. 매일 라디오 생방송을 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공연까지 하느라 쉴 틈이 없다는 김동규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바쁜 일상에 쉼표가 되어주는 힐링의 시간이 된다. 진짜 엠티 가는 기분으로 간다”고 했다. 강수지는 “아이를 둔 엄마들은 특히 어딜 간다는 생각을 못하는데, 시청자들한테 미안할 정도”라고 말했다.

친분이 없던 사람들이라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했단다. 특히 관찰 예능이다 보니 숙소 곳곳에 카메라가 달려 있다. 이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90년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스템이다. 이날도 시시티브이 16대가 화장실을 제외하고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스태프들은 밖에 있는 상황실에서 모니터로 이를 지켜본다. 출연자들이 잘 때도 스태프 몇명이 밤을 새우며 지킨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 말마따나 “숨길 게 없는 중년”들은 거침없었다. 피디의 “큐” 사인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그냥 물 흐르듯 알아서 잘 놀았다. 갯벌에서 돌아오자마자 샤워를 한 김완선은 민얼굴에 머리도 말리지 않고 다녔고, 강수지는 카메라 신경 쓰지 않고 티셔츠를 갈아입었다. 알 것 다 아는 중년의 남녀가 모였으니 19금 토크도 빠지지 않았다. 박상혁 피디는 “너무 솔직해서 편집하기가 힘들다”며 웃었다. 그는 “편집감독 10명이 1주일 내내 편집한다. 그들의 인생이 가십거리로 다뤄지지 않도록 센 발언은 들어내는 등 시청자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신경 쓴다”고 말했다.

■ 친구야 웃자!

왼쪽부터 탤런트 양금석, 성악가 김동규
왼쪽부터 탤런트 양금석, 성악가 김동규
<불타는 청춘>이 중년이 나오는 다른 프로그램보다 눈에 띄는 점은 출연자들의 대화에서 또래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묻어난다는 것이다. “기타를 치려고 무작정 서울에 올라온 뒤, 나이트클럽에서 공연하며 숙식을 해결했다”는 김도균의 말은 어려웠지만 열정 가득했던 젊은 시절에 대한 회상과 함께 무기력해진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나이 들어 주연에서 조연으로 밀려났던 순간의 설움”(김혜선), “잘나갈 때 교만했던 시절”(김동규) 등에서 느껴지는 회한은 중년이 돼야 얻을 수 있는 값진 깨달음이다. 특히 이들이 아픔을 서로 보듬는 모습에서 시청자도 위로를 받는다. 강수지가 “엄마가 치매로 작년부터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말하고, 양금석이 “우리 엄마도 지금 치매 초기”라는 얘기를 하는 장면에서 가슴이 뭉클했다는 시청자들 반응이 많다. 중년은 부모님을 떠올리면 가슴이 휑해지는 그런 나이이기 때문이다.

연예인으로서 속내를 끄집어내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이들은 “20, 30대였으면 얘기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살아보니까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잖아요. 살아온 과정은 달라도 똑같은 어려움을 겪었을 거니까 시청자들도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김동규) 권은아는 “비슷한 경험을 한 중년들끼리 있으니 나도 모르게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고 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김혜선)는 멋진 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나이가 싫어. 20대로 돌아가면 정말 열심히 일하고 싶어”(권은아)라며 ‘청춘을 돌려달라’는 아쉬움도 솔직하게 드러낸다. 권은아는 “중년의 고민을 여러 사람들이 토론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게 좋다”고 했다. 연예인이라 더 감추고 살았던 그들한테도 치유의 시간이 된다. 권은아는 “2008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쓸쓸하게 지냈다. 인생이 허무했는데, 이 프로그램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위로를 받았다. 마음이 편안해졌고, 활기차졌다”고 말했다. 김국진은 “일 외에는 사람들을 안 만나고 주로 혼자 지냈는데, 내가 그동안 많이 무심했구나 생각이 든다”고 했다.

■ 90년대 추억은 덤

이 프로그램은 중년들이 어우러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추억의 페이지를 들춘다. 그들이 어린 시절 하고 놀았던 놀이들이 등장한다. 고무줄, 말뚝박기 등을 하는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도 그 옛날 내 모습을 떠올린다. 제작진은 ‘갯벌’, ‘양파 마을’ 등 가는 곳만 정해주고 설정을 만들지 않는다는데 출연자들이 알아서 놀거리를 가지고 온단다. 8일 방송에 나온 공기도 강수지가 가져왔다. 소방차의 ‘하얀 바람’, 김지애의 ‘얄미운 사람’ 등 90년대 노래로만 채워진 배경음악도 추억여행을 돕는다. 서툴게 ‘369게임’을 하는 모습, 노래에 출연자 이름을 넣어 부르는, 별것 아닌 것에도 ‘꺄르륵’ 웃음꽃이 피는 모습 등 의외로 귀여운 중년의 모습은 친근함을 준다. 여자들한테 잘 보이려고 장작을 패면서 남성성을 과시하거나, 밥 한번 떠먹여줬을 뿐인데 얼굴을 붉히는 모습에서 수줍은 ‘썸’도 기대하게 만든다. “노는 걸 보면 철이 하나도 없어. 얼굴만 맛이 갔지. 다들 소년 소녀 같아요.”(권은아) 김국진은 “시청자들도 ‘맞다, 이런 친구가 있었지’, ‘이런 일이 있었지’ 생각하면서 자신을 찾고, 활기차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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