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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착않녀’ 버선발 하이킥 능가하는 하드코어 ‘레이디 액션’

등록 2015-05-18 15:47

‘레이디 액션’ 한 장면
‘레이디 액션’ 한 장면
[한겨레21] 진짜 하드코어 액션이 시작됐다
여배우 액션 도전기 담은 파일럿 프로그램 ‘레이디 액션’,
여성의 삶 그 자체가 하드코어인 시대에 웃기지만은 않은 예능
아직 5월이지만 개인적으로 꼽는 올해의 액션신 1위는 이미 2월에 나왔다. KBS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 등장한 강순옥 여사(김혜자)의 버선발 하이킥 장면이다. 사실 역대 가장 대담한 여성 액션신 중 하나라 봐도 좋다. 노년 여성, 우아한 한복, 김혜자의 조합이 빚어내는 정적인 분위기를 단숨에 깬 신선함도 한몫했고, 가족을 버린 남편에 대한 분노와 수십 년 싱글맘의 한을 응축한 액션이라는 점도 통쾌했다. 한국 여성들의 한이 담긴 분노의 다듬이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장면이랄까. 생각해보면 김혜자의 영화 <마더>가 침 대신 칼을 휘둘렀더라면 그야말로 역대급 여성 원톱 액션물이 나왔을지 모를 일이다.

지난 5월8일과 9일 방영된 KBS 파일럿 예능 <레이디 액션>을 볼 때의 느낌도 비슷했다. “6인의 여배우들이 액션에 도전, 여자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과정을 리얼하게 그려낸” 이 프로그램은 여성의 삶 자체가 이미 하드코어 액션이라는 생각을 확인시켜준다. 출연 배우들의 인터뷰에서도 그러한 자의식이 잘 드러난다. 김현주는 출연 동기에 대해 “액션뿐만 아니라 여자배우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좁은” 현실을 토로하고, 손태영은 “‘여배우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한평생 못할 수도 있는 장면이다’라는 말을 듣고 도전을 결심했다”고 말한다.

인터뷰보다 더 명백한 증거는 리얼한 생활기에서 나타난다. 액션 촬영을 마친 뒤에도 여배우들의 삶은 여전히 시험의 연속이다. 가령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어본 김현주가 “먹고 싶다!” 소리쳤다가 그냥 문을 닫는 장면이나, “비도 오는데 삼겹살이나 구워 먹고 소주나 마시고 싶다”더니 막상 회식 때는 고추만 씹어 먹는 모습에서 느껴지던 고충. SBS <별에서 온 그대>에서 “하루 사과 한쪽, 양배추 반쪽”만을 먹는 혹독한 다이어트가 일상이던 여배우 천송이(전지현)가 저도 모르게 “눈 오는 날엔… 치맥”을 외치던 장면이 결코 픽션이 아니었던 게다.

‘레이디 액션’ 한 장면
‘레이디 액션’ 한 장면
이른바 하드코어의 절정은 다른 배우들이 합숙소로 향하는 늦은 밤, 아기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집으로 퇴근하는 손태영의 모습이었다. 그녀에게는 더 고된 액션 과제가 남은 셈인데 카메라는 거기까지 따라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촬영이 멈춰진 뒤에도 밤새 지속될 손태영의 육아는 여전히 많은 고충이 비가시적 영역으로 남아 있는 여성의 현실을 역으로 두드러지게 만든다. 출산 3개월 만의 방송 복귀작인 이 프로그램에서 유독 ‘자신과의 싸움’을 강조한 손태영은 그동안 ‘권상우의 아내’로 더 자주 불렸던 사실까지 환기시키며 여배우의 하드코어 생존기를 제일 인상적으로 보여준 배우가 됐다.

이러한 여배우들의 제한적 환경은 그대로 <레이디 액션>의 극복 과제로도 연결된다. 현재 여성 예능은 남성이 장악한 예능계에서 번외편으로나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상황이다.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MBC), <인간의 조건: 여성편>(KBS), <정글의 법칙 W>(SBS) 등이 그러했다. 이들은 때론 본편보다 큰 화제를 모았음에도 일시적인 볼거리에 머물렀을 뿐 정규 프로그램으로는 안착하지 못했다. <레이디 액션> 역시 MBC <무한도전: ‘나는 액션배우다’편>의 아류라는 오명을 벗어나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레이디 액션> 편성을 지지하는 이유는 단지 여성 예능이라서뿐만이 아니다. 출연자들의 여성성이 강조된 다른 예능과 달리, 여성이자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균형 있게 조명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배우들 액션은 2박3일이라는 시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완성도가 높았다. 각자의 개성과 감정 연기와 자매애가 어우러진 단편영화 역시 남성 액션과 다른 전복의 쾌감이 있었다. 단 2부작에 불과한 파일럿 예능이 이렇게 풍부하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담는 것도 흔치 않다. 부디 정규 편성에 성공해 여배우들이 하드코어 생존기 이상의 이야기를 더 보여주길 응원한다.

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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