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진이 지난 7일 서울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팬들이 당신의 연애를 응원하고 있다”고 하니, 그는 “그래놓고 진짜 연애하면 비웃을 것 아니냐”고 되받아쳤다. 그래도 기분은 좋은지 해맑게 웃었다. “소개는 받기 싫고, 오며 가며 자연스럽게 만나고 싶”단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속살이 궁금한 남자! 요즘 김국진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스스로 방송에서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인데다, 1991년 데뷔해 두차례의 공백기를 이겨내고 <라디오 스타>(문화방송)로 돌아와 다시 종횡무진하는 저력이 궁금하다. 조금만 티브이에 나오지 않아도 금세 잊히는 게 예능인의 숙명인데, 이례적이다. 그렇다고 시대의 흐름에 맞춰 발빠르게 ‘변신’한 것도 아니다. 상대방에게 독설을 날리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솔직하게 까발리지도 않는다. 그저 열심히 들어주는, 옛날 점잖은 방식 그대로인데 그런 이질감이 오히려 프로그램의 균형을 맞춘다. 철없는 동생을 지켜보는 큰언니 같은 진행 방식은 독해지는 요즘 티브이에서 더 돋보인다.
그런 그가 최근에는 <불타는 청춘>(에스비에스)에서 조금씩 자신의 민낯도 드러내기 시작했다. <라디오 스타>에서는 자신의 연애 얘기만 나오면 진저리를 치더니, 여기에서는 강수지와의 ‘썸’ 연출도 자연스레 소화한다. 소심한 줄 알았는데 여자들 앞에서 힘자랑하며 장작을 패는 ‘상남자’의 모습도 은근 내비친다. ‘사생활은 웃음 소재로 삼지 않는다’는 오랜 원칙에 변화를 준 이유는 뭘까? 인터뷰 안 하기로 유명한 김국진을 설득 끝에 지난 7일 서울 상암동의 한 카페로 불러냈다. 김국진의 평소 모습을 잘 아는 ‘우정’ 박상혁 <불타는 청춘> 피디와 예능인으로서 김국진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이승한 대중문화평론가, 김국진 하면 ‘국진이빵’밖에 생각나지 않는다는 ‘무관심’ 김효실 <한겨레21> 기자와 그냥 그가 궁금한 ‘호기심’ 남지은 기자가 출동했다.
강수지와의 ‘썸’ 얘기에도 싱긋
자기 얘기 꺼리던 그가 변했다
“50대가 되면서 내려놔야겠다 생각
조금 마음 열었을 뿐인데 놀라더라”
이승한 요즘 굉장히 놀라는 게, 사생활을 얘기하는 걸 주저했잖아요. <남자의 자격>에서는 개인의 내밀한 걸 보여줘야 하는 미션이 주어졌을 때 노골적으로 불편해했고. 그때에 비해 <불타는 청춘>에서는 모든 게 부드러워지고 자연스러워진 느낌이에요.
김국진 오십대가 되면서 어떤 부분은 내려놓고 어떤 부분은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누군가가 내게 뭘 주고 싶어도, 이미 손에 쥐고 있으니 주기 어렵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새로운 부분과 새로운 친구들과 이런 걸 한번 받아들여봐야겠다, 싶었어요. 사실, 전 조금 밖에 안 열었는데 워낙 닫혀 있었다 보니.(웃음) ‘썸’ 얘기만 나와도 정색했는데, 지금은 그냥 웃고만 있어도 놀라더라고요. 요즘은 시청자들이 연예인이 사생활을 드러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이기도 하고.
남지은 ‘김국진이 달라지려 한다’는 것은 복귀와 동시에 어느 정도 감지됐다고 봐요. 5년의 공백 이후 2007년 오락성이 강한 <라디오 스타>로 돌아온 건 의외였어요. 그 전에는 <칭찬합시다>등 오락성과 공익성을 버무린 코너를 주로 했잖아요.
김국진 5년간 쉬면서 영영 방송을 안 하려고 했어요. 소속사에는 제 일은 안 잡아도 된다고 얘기했죠. 그런데 대표가 계속 연락을 하면서 간곡하게 복귀를 권하셨어요. 중국에 나가있는데 연락이 와서 예능 하나 하자기에, ‘자기 일도 아닌데, 내 인생을 이렇게까지 생각해주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한국 들어가면 바로 하겠다고 대답했어요. 들어와서 <무릎팍도사>(2007년)에 출연하고, 며칠 뒤 <라디오 스타>에 고정 출연했어요.
박상혁 오랜 공백에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김국진 5년 동안 예능을 보지도 않아 처음엔 당황했어요. 카메라 대수가 많아지기도 했지만 진행자들끼리 서로 말을 끊고 치고 들어가는 거예요. 우리 때는 상대방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줘야 했거든요. 녹화하면서도, 이러면 편집이 힘든데 어떻게 하지, 혼자 막 고민했죠.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 할까, 혼자 상대방 얘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을 하고 그랬어요. 20분 기다려서 말했더니 바로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 몇 마디 못하고.(웃음) 그냥 끼어들어도 된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남지은 그래서인지, 복귀 초반에는 ‘존재감이 없다’는 반응도 있었어요.
김국진 언젠간 적응된다는 그런 자신감이 있었어요. 보통 복귀하면 예전에 했던 그 컨디션을 끌어올리려고 조급해하잖아요. 그러면 오버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냥 요즘 예능을 지켜보면서 분위기를 익혔어요. 새 환경에 적응하려고 예전에 내가 가장 잘 웃겼던 방법을 버리자고 생각했어요. “나 먹어요~” 같은 특유의 호흡을 맞추는 말투가 있어요. 이 타이밍에 이걸 하면 웃긴다는 걸 알아도 안 했어요. (이런 노력으로 <불타는 청춘>에서는 적당히 자신을 노출하면서도 과하지 않게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는 진행으로 호평받는다.)
남지은 <라디오 스타>가 인기는 있지만, 비판적으로 봐야 하는 부분도 있잖아요. 출연자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공격적인 측면도 있고. 그런 부분에 대해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김국진 처음에는 그런 부분도 있었지만, <라디오 스타>라는 프로그램의 특징이잖아요. 7~8년째 이어오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대신 너무 과하게 가는 건 좀 막고 재미있게 움직이는 선에서 하려고 노력해요. 이렇게 방송 나가면 이 사람에게 좋겠다는 느낌이 드는 선에서. 게스트가 그렇게 피해 보는 프로그램은 아니에요. 어쨌든, 잘 들어주는 게 엠시의 기본인 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5년만에 복귀했을 때 처음엔 당황
내가 잘 웃겼던 방법 버리고 버텨”
지금 세대들에게 김국진은 후배들에게 놀림받아도 늘 웃는, 착하고 귀여운 형의 이미지겠지만, 그는 1990년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스타였다. 1991년 <한국방송>대학개그제로 데뷔한 이후 무명시절 없이 승승장구했다. 대학교 3학년 때 후배의 권유로 함께 나갔는데 덜컥 붙었다. 귀여운 외모와 중독성 있는 억양으로 대한민국 개그계의 새판을 짰다. “여보세요” “어라” 등 그가 말만 하면 유행어가 됐다. 콩트와 슬랩스틱 코미디가 주를 이루던 때에 신인인 그가 스탠드업코미디를 시도하고, 토크코미디의 인기를 이끌었다. 공익과 예능을 접목한 공익예능의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즐긴다”고 했다.
남지은 데뷔하자마자 스타가 됐어요.
김국진 운이 좋았어요.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개그맨은 포졸 1, 2 같은 단역으로 시작해서, 수년 정도 활동해야 본인이 직접 코너를 짜는 게 가능했는데, 나는 데뷔한 지 얼마 안 돼 바로 (김)용만과 콤비로 코너를 맡았어요. 케이비에스와 엠비시 두 방송사뿐이었는데, 엠비시에서 서경석-이윤석 같은 콤비 개그 등 버라이어티가 인기를 끌면서 케이비에스에서 우리한테 기회를 많이 줬어요.
남지은 웃기는 거에 소질이 있었던 건가요?
김국진 학창시절에 오락부장을 했고 소풍 가면 사회를 보고 그랬어요. “아 제가요”라는 말만 해도 사람들이 그냥 웃었어요. 사람들이 보기에는 제가 그냥 좀 특이했나봐요.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과는 또다른 문제 같아요.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잘 안 가는데, 또 가게 되면 어느 순간 내가 사람들 앞에서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요.(웃음)
박상혁 그러다 갑자기 다 버리고 미국에 갔어요.
김국진 미국에 공연하러 갔다가, 어떤 곳인지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신인 때 방송을 중단한다는 게 무모한데, 새로운 게 있으면 두드려보는 성향이라. 공부해서 프로그램을 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요. 떠나기로 결정하고 모든 케이비에스 프로그램에서 하차했어요. 이후 엠비시 어떤 프로그램에 ‘우리 미국에 간다’는 인사 차원의 출연을 하기로 했는데, ‘김국진 엠비시 이적’ 기사가 뜨면서 케이비에스 쪽에 오해를 받기도 했어요.(그는 이 사태로 한국방송에서 영구 제명됐고, 귀국한 뒤에야 징계가 풀렸다.)
남지은 도전 정신이 인생을 굴곡지게 했어요.(웃음) 미국 출국 이후에도 사업, 프로골퍼 도전, 이혼 등 여러가지 이유로 공백기가 꽤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위기를 이겨낸 힘은 뭔가요.
김국진 사람이에요. 어느날 문득 방송국에 왔는데 ‘아는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여기서 일했고, 있을 곳이구나, 그런 걸 사람을 통해 느꼈어요. 돈, 인기에 연연하며 방송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더 성공을 목표로 한다기보다, 힘을 빼고 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남지은 인생에서 가장 ‘불타는 청춘’은 언제였나요?
김국진 내 베스트는 언제나 넥스트예요. 다음.
말라서 약골인 줄 알았는데 근육남
사회성 없다면서도 분위기 메이커
“나의 베스트는 언제나 넥스트”라는
예상을 빗나가는 그가 더 궁금하다
김국진의 이미지는 약한 몸, 수줍은 성격 같은 것들이다. 실제 만나보면 별로 맞는 것이 없다. 등장부터 예상을 빗나갔다. 머리를 긁적이며 수더분하게 들어올 줄 알았는데, 짙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마치 홍콩 배우처럼 성큼성큼 걸어왔다. 프로그램 식구들과 밥 한번 안 먹었을 정도로, 사람도 잘 안 만나고 집에서 혼자 있는 걸 즐긴다는데, 끊임없는 수다로 대화 분위기를 주도했다.
이승한 김국진에 대한 편견 중 하나가 말라서 힘이 없을 거라는 건데 은근 근육질이잖아요. 근육을 만들어서 잡지 표지를 찍으신 적도 있고, 매번 ‘입증’을 하시잖아요.(웃음)
김국진 입증은 하는데, 조금 지나면 사람들이 바로 잊어요.(웃음) 쟤는 툭 치면 넘어가겠구나.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때는 학교 축구 선수였어요. 골프도 좋아하고.
이승한 사회성도 떨어지는 게 아니라 남들하고 기준이 좀 다른 거 같아요. 이런 게 사회생활에 필요하고 응당 거쳐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에 딱히 동의는 안 하시는 거 같아요.
김국진 방송이 끝나면 제일 먼저 나와요. 보통은 “수고했어” 이러면서 밥도 먹고 그러는데, 전 단순하게 일 끝났으니까 가는 거예요. 정말 자연스럽게 만나서 밥도 먹고 이런 걸 좋아하지, 우리가 딱 친해져야 해 이렇게 생각하고 만나는 건 좀 그래요. 언제 뭘 하자 약속을 정하는 것도 부담돼요. 여행 갈 때도 미리 일정을 정하지 않고 갑자기 가고 싶으면 가방 싸서 공항에 가요. 표 있는지 물어보고 있으면 가고 없으면 돌아오고.
남지은 <남자의 자격> 때 덕구를 입양한 것 보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생각했어요. 덕구는 잘 있나요.
김국진 그럼요. 오늘 아침에도 덕구가 달려들어서 깨물고 핥고. 그런 충견이 없어요. 내가 잠에서 일어나 문을 열면 앞에서 이렇게 엎드려 있어요. 샤워하려고 욕실에 가도 문 앞에서 지켜요. 어머니가 그러세요. ‘덕구가 문 앞에 있으면 곧 국진이 나오는구나 알겠다고.’ 하루 네다섯번씩 산책하고 그래요.
김효실 만나보니 사람을 좋아하고 대화하는 걸 즐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김국진 <불타는 청춘>을 하면서 바뀐 부분도 있어요. 이제는 조금씩 사람도 만나면서 밥도 먹고 해야겠구나. 내가 많이 무심했구나 그런 생각도 해요.
김효실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고 있다는 느낌인데, 연애도 그런 거죠?
김국진 문이 다 열린 건 아니지만, 잠가놓지는 않았어요. 당기면 열릴 수 있어요.(좌중 웃음)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심의 발견
인정의 발견은 뿌리 깊은 나무
흔히 그를 두고 “사회성이 없다”고 하지만, 내가 본 그는 그저 자기 박자에 맞춰 타인과 가까워지는 사람이었다. 보통 세상의 기준에 스스로를 맞추지 않고 자기 기준대로 사는 사람을 우리는 ‘심지가 굳다’고 표현한다. 그럴 거라고 예상 못한 바 아니었지만, 여린 잔가지 밑에 숨은 뿌리가 생각보다 더 깊고 굳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무관심의 발견은 매너남
인터뷰 뒤에 사진 촬영을 부탁했더니 자신의 얼굴을 앞으로 뺀다. 얼굴 작은 자의 배려! <불타는 청춘>이 그런 것처럼, ‘기빨림’ 없이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남을 놀리고 눌러서 웃기는 쉬운 길(?) 대신 자신만의 코미디를 보여주려고 노력해왔다는 게 어렴풋이 다가왔다. 앞으로는 응원해야지, 마음먹는다.
김효실 기자
호기심의 발견은 까도남
한창 잘나가던 90년대 중반 1주일에 1억원을 벌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당시 살던 집은 봉천동의 한 오래된 아파트였다. 인기를 얻으면 집부터 옮기기 마련인데, 그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곳을 지켰다. “어머니와 둘이 살기에 딱 좋았어요.” 상남자, 낭만파, 시크남, 모험가…. 여러 매력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남지은 기자
우정의 발견은 겸손함
1999년 한국갤럽 조사를 보니 건국 이래 가장 인기 있는 연예인 1위란다. 이 자료를 보여줬더니 반응이 더 멋지다. “그래서 1위를 했다고 트로피를 준다기에 갤럽에 얘기를 했어. 이 조사는 공정치 못하다.(웃음) 건국 이래라는 게 언제 조사하느냐에 따라 기준이 다를 수 있잖아.” 김국진은 최고였고 2015년에도 여전히 최고의 예능인이다.
박상혁 에스비에스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