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민의 팟캐는 남자
팟캐스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다양함에는 주제의 다양함만 포함되지 않는다. 형식의 다양함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한 명의 진행자만 나와서 오롯이 시간을 꾸려가는 방송도 있고, 성우들이 만드는 드라마 형식의 방송도 있다. 그리고 오프라인 강의를 팟캐스트로 가져와 전하는 방송도 있다. 이번에 소개할 <신영복의 담론> 팟캐스트처럼 말이다.
<신영복의 담론>은 지난 3월 호외편으로 시작해 지난 11일 10강으로 마무리됐다. 제목은 <신영복의 담론>이지만 신영복 선생이 직접 방송의 진행자나 패널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신영복 선생의 강의 녹취가 주를 이룬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방송인 김미화씨가 방송의 문을 열고 있다는 점이다. 김미화씨는 모든 방송의 앞에서 해당 강의의 주제를 가볍게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강의 속으로 빠져들 수 있게 해주는 가이드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렇게 김미화씨의 안내를 받아 강의실로 들어가면, 천천히 강의가 시작된다.
인문학 강의라고 부담 가질 필요는 없다. 오프라인 강의 중 핵심이 되는 내용만 담았기에 강의 시간이 30~40분 사이로 짧은 편이고, 주제와 내용 역시 틀에 박힌 인문학 강의와는 다르다. 신영복 선생은 실천, 관계, 추억 등의 주제를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낸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서예가로도 유명한 신영복 선생이 자신이 어떻게 서예를 만나게 되었는지, 서예에서 한 획이 한 획을 어떻게 감싸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다. 한 편의 이야기를 듣고 자연스레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강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팟캐스트는 김미화씨가 방송의 문을 열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방송을 위해 만든 콘텐츠가 아니기 때문에 듣기에 거친 느낌이 있다. 방송의 음질 역시 오프라인 녹취본이어서 기존의 공중파 라디오 방송은 물론이고 다른 팟캐스트 방송에 비해서도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끄러운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나, 야외에서 이 방송을 듣는다면 귀에 모든 신경을 집중해도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
외부적으로 드러난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팟캐스트 유저들이 열광적으로 이 팟캐스트를 환영하고 있다. 가장 먼저 손에 꼽을 수 있는 인기 요인은 역시 콘텐츠다. <신영복의 담론>의 강의는 한국에서 들을 수 있는 인문학 강의 중 손에 꼽을 만큼 뛰어난 강의라는 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기존에는 오프라인으로만 강의를 접할 수 있었고, 강의를 접하지 못한 이들은 책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아쉬움을 팟캐스트를 통해 해소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강의를 듣고 싶었던 청취자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 방송을 처음 접하는 분들은 두 번 놀라게 될 것이라 생각된다. 하나는 팟캐스트가 방송이 아닌 이런 형식으로도 제작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양질의 강의 콘텐츠를 강의실에 직접 가지 않고 이어폰을 통해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점에 놀랄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어떤 이들은 방송의 형식을 너무 벗어난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지나치게 날것 그대로의 방송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평생에 한 번은 듣고 싶었던 강의라면 그 모든 단점을 감안하더라도 이어폰을 귀에 담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최동민 팟캐스트 <빨간책방> 피디
팟캐스트 <신영복의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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