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것이>) 녹화를 앞둔 지난 21일 오후 1시. <에스비에스> 목동 사옥에서 만난 김상중은 몸에 붙는 세련된 회색 슈트를 입고 있었다. <그것이>에 입고 나오는 옷은 직접 고른다고 한다. “그날 프로그램 내용과 분위기에 맞게 신중하게 선택합니다.” <그것이>에 진행자로 투입된 2008년 3월2일(숭례문 화재 사건 방영) 이후부터 김상중의 나날은 <그것이>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여행은 오래 가봤자 4일이고, 맘에 드는 배역이라도 진행자 이미지에 맡지 않으면 거절한다”고 했다.
에스비에스의 간판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것이>는 1992년 3월 시작해 오는 9월5일 1000회를 맞는다. 김상중은 문성근, 박원홍, 오세훈, 문성근, 정진영, 박상원에 이은 7대 진행자다. 최장수 진행자이기도 하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는 이례적으로 ‘꽃중년 탐정’이라는 별명까지 생기며 팬덤을 형성하고 있고, ‘약자의 편’이라는 이미지까지 생겼다.
티브이에서 보여주는 정의감은 모두 진짜일까. <그것이> 1000회를 맞아 시청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꽃중년 탐정’ 김상중을 만났다. 배우로서 김상중을 분석하는 대중문화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와, <한겨레21> ‘덕후열전’ 코너에서 ‘김상중 덕후’를 자처했던 팬심 이혜지 출판관계자, 자연인 김상중이 궁금한 남지은 기자가 모였다. ‘불편한’ 목소리는 누리꾼들의 댓글을 모은 ‘넷심’으로 담았다.
남지은 <그것이 알고 싶다>가 1000회를 맞는데, 감회가 남다르겠어요.
김상중 어느새 이만큼 왔나 싶어요. 2003년 문성근 선배가 그만뒀을 당시 진행 섭외가 왔었는데 한번 거절했어요. 당시 생방송 시사프로인 <추적 사건과 사람들>을 15개월 남짓 하고 있었는데, 연륜과 삶이 조금 더 축적된 뒤에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2008년에 다시 제안받았어요.
남지은 7년 동안 매주 녹화를 하는 게 힘들지는 않았나요?
김상중 미국에서 공부하는 아들한테도 최근 5년 동안 딱 한번 가봤어요. 하지만 이 프로를 통해 받은 게 너무 많아요. 시청자들이 ‘저 사람은 진실된 것 같아’, ‘지적이야’라고 생각해주는 등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됐잖아요. 유행어(“그런데 말입니다”)도 나오게 되고.(웃음)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알아보니 감사할 뿐이죠.
‘그것이 알고 싶다’ 위주 삶 벌써 7년
의상도 직접 챙기며 1000회 이끌어
배역 제약 있고 여행 잘 못 가지만
신뢰 이미지 얻은 게 더 많아 감사
세월호편 엔딩선 참았는데도 울컥
이혜지 묵직한 목소리가 몰입도를 높이는 것 같아요. 특히 지난해 4월 세월호 사건을 방송할 때 끝맺음에서 울컥한 건 지금도 회자되고 있어요.
김상중 진행하면서 때론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가 있는데 배우라서 그 부분에서는 장점이 되는 것 같아요. 스튜디오에서 하는 대사는 입에 맞게 내가 알아서 고치기도 하고, 카메라 워킹 등도 녹화 전에 제작진과 상의해요. 제 의견을 많이 수용해주는 편이에요. 세월호 편은 대기실에서 혼자 읽어볼 때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부분에서 자꾸 눈물이 터졌어요. 객관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진행자가 감정이 북받쳐서 큰일이다 싶었는데, 실제 녹화 때도 그 부분에서 감정이 무너졌어요.
윤석진 <그것이>를 진행하면서 본인의 가치관이 바뀐 게 있나요?
김상중 전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스토리텔러잖아요. 제작진이 잘 만들어놓은 것을 시청자가 몰입할 수 있도록 잘 전달해주는 게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오랫동안 진행하다 보면 안타까운 일들이 있어요. 심증은 확실한데 물증이 없어서 무죄가 되거나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는 사건 등은 특히 그래요. 이 프로를 하면서 아주 죄질이 나쁜 가해자의 인권을 꼭 보호해줘야 하느냐는 의문이 생겨요. 예전에 필리핀 납치 사건을 다룰 때는 제가 강력하게 주장해서 가해자들의 모자이크를 연하게 처리했어요. 사형제 폐지도 반대하게 됐고요.
윤석진 어떤 사건이 생기면 “<그것이>에 제보하자”는 이야기가 먼저 나와요. 이 프로의 신뢰도가 높아질수록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의 방증 같기도 해서 씁쓸하기도 해요. <그것이>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그것이>가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 아닌가요?
김상중 암울한 이야기 말고 꼭 알고 싶은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시대가 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시대가 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는 “<그것이>때문에 본업인 배우로서의 역할 선택에 제약이 있지만, 많은 사랑을 받기에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했다. 극장을 하는 아버지 친구 덕분에 5살 때부터 영화를 봤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연극반에 들어가 <청소년연극제>연기상을 받았고 1990년 연극배우로 데뷔했다. 1992년 단막극 <님이여>에서 윤봉길 의사 역을 맡아 드라마에 첫발을 내디뎠고 이후 <목욕탕집 남자들>(1995년·한국방송2)에서 능청스러운 사위 역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불륜남(<내 남자의 여자>·2007년·에스비에스) 등 다양한 역할을 했지만, <그것이>를 진행한 뒤부터는 <추적자>(2013·에스비에스)의 ‘강동윤’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배역을 많이 했다.
남지은 <그것이>이후 작품 선택에 신중해진 것 같아요.
김상중 시사 프로 진행자 이미지와 다르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너무 악역이거나 망가지는 역할은 되도록 피하려고 해요. 종편에 출연하지 않는 이유도 그래서예요. 돈을 많이 준다고 출연한다면, 그런 사람이 진행하는 시사 프로를 시청자들이 신뢰하고 믿고 볼 수 없을 것 같아요.(그는 몇년 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시사 프로 진행자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 정치적 편향성이 분명한 종편에는 출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난 살리에르, 노력으로 연기력 커버
몸관리도 철저…7년간 하루 한끼만
오토바이 타며 스트레스 해소
헬멧 쓴 채 육두문자 날리기도 해
중년 애환 얘기하며 이미지 변신 계획
넷심 <그것이>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어떤 드라마를 봐도 오버랩되는 부분은 있어요.
김상중 가장 신경쓰는 부분이 ‘<그것이>의 잔상이 연기하면서 나오면 안 된다’예요. <징비록>하면서도 목소리 톤이 비슷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나름대로 연구해 류성룡이라는 인물을 만들어가다 보니 청렴하고 진실된 이미지에 어울리는 목소리 톤을 찾은 건데 비슷하다는 반응이 많았죠. 그 역시도 고쳐나가고 풀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나쁜 녀석들>(2014·오시엔)에 출연할 때는 <그것이>에서 못다한 것을 드라마에서라도 대리만족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것이>를 하면서 사실 전달을 해줄 뿐이지 범인이다 아니다 사건을 해결해주지는 못하잖아요. 그런 아쉬움을 드라마에서 해소시켜주고 싶었어요. 법으로 심판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법이 아닌 걸로라도 해결해줬으면 하고 느낄 때가 있잖아요.
윤석진 연극으로 데뷔했는데, 초창기 때를 빼고는 하지 않았어요.
김상중 이제는 배가 불러서 연극을 못하겠더라고요.(일동 웃음) 그때만 해도 연극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조금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티브이라는 매체에서 작업하다 보니 배에 기름이 끼고, 내가 이런 마음을 갖고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자신이 없더라고요.
남지은 드라마에서도 늦게 이름을 알렸어요. <목욕탕집 남자들>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그때 이미 30대였어요.
김상중 전 모차르트가 아니고 살리에르예요. 노력파예요. 공부하고 연기를 알아가다 보니, 운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목소리나 발성도 선천적으로 좋았다기보다 후천적인 훈련을 통해 다듬어졌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엘피판 틀어놓고 디제이 흉내내면서 녹음하고 듣기를 반복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하면서 오랜 기간 발성과 발음 훈련을 한 것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92년 드라마 데뷔 이후 휴지기를 가지지 않고 계속 일한 것도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예요. 내가 지금까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성실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 녀석이라면 이런 걸 줘도 만들어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캐스팅된 것 같아요.
<그것이>를 진행한 이후 김상중은 대표적인 꽃중년 배우로 꼽힌다. 50대이지만 20~30대 여성 팬을 보유한 몇 안되는 배우다. 누구의 아버지로도 불리지 않는다. 독자적인 캐릭터다. 그 이면에는 꾸준한 자기 관리가 있었다.
다음달 10일부터 오티브이엔에서 방송 예정인 예능프로그램 <어쩌다 어른> 홍보사진. 오티브이엔 제공
남지은 잘 늙지 않는 것 같아요.
김상중 저는 30대 중반부터 중년 배우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웃음) 그때 내가 맡은 배역이 나이에 비해 중후하고 무거운 역할이 많았어요. 그때도 중년이고 지금도 중년이니까 별로 안 늙어 보이는 거예요.(웃음) 평소 관리도 해요.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옷을 잘 입으려고 하고, 건강과 몸매를 위해서 7년 동안 하루에 한끼만 먹고 있어요.
남지은 이미지 때문에 자연인 김상중이 지켜야 할 게 많을 것 같아요.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없나요?
김상중 있죠. 특히 운전하다 보면 감정적으로 기분 상할 일이 생기잖아요. 한마디 해주고 싶어서 창문 열었다가 괜히 에스엔에스에 올리고 그럴까 싶어서 정중하게 “운전 조심하십시오”라고 말하고 닫아요.(일동 웃음) 하지만 이렇게 사랑을 받는데 그 정도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대신 오토바이 탈 때는 육두문자를 날려요.(웃음) 헬멧 쓰면 눈만 보이니까 어차피 누군지 잘 몰라요.
윤석진 오토바이를 타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거네요.
김상중 체질상 술을 전혀 못 마시니까 촬영 없는 날은 오토바이 타고 나갔다 오고 해요. 술을 못 마시는 건 시사 프로 진행자로선 최적화된 조건이죠.(일동 웃음) 제가 하고 있는 것 중에 나쁜 거는 담배뿐이에요. <목욕탕집 남자들> 때 워낙 대사량이 많아서 담배를 피우면서 대본을 봐야 대사가 잘 외워지는 습관이 생겼어요. 최근 작품을 연거푸 했더니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아서 5주간 금연했는데, 대인관계가 나빠지는 것 같아서 다시 피웠어요.(웃음) 후배들과 관계를 더 편하게 유지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기도 해요. 그래도 한때 줄담배였는데 요즘은 하루에 7개비만 피워요.
이혜지 중년이지만 중년처럼 느껴지지 않는, 로맨스가 가능한 몇 안되는 배우인데 <어쩌다 어른>에 출연하는 건 의외였어요. ‘나 중년이다’, 인증하는 거잖아요. (<어쩌다 어른>은 다음달 10일 개국하는 오티브이엔에서 방영 예정인 예능프로그램이다. 중년 남성들이 출연해 중년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김상중 너무 반듯하고 딱딱하다는 이미지가 강해서, 조금 느슨하고 편한 옆집 형, 아저씨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중년들의 애환, 고통 등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보일지.(웃음)
윤석진 실제 중년의 삶은 어떤 거 같아요?
김상중 배우이기 전에 인간이기 때문에 잘 살다가 잘 늙고, 잘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30대에서 40대가 되니, 40대부터 50대는 정말 금방이더라고요. 50대는 잘 죽기 위해 길을 닦는 과정이구나 생각해요. 20대, 30대는 날카롭고 불안정했다면, 나이가 들면서 많은 이들을 보고 여러 일을 경험하면서 점점 영글어간 것 같아요. 에세이 책을 많이 보는데 나를 계발하고 발견하고 반성하는 과정을 통해 ‘아 이런 삶을 살아야지’ 다짐하게 돼요.
남지은 신뢰가 가는 이미지 때문에 정치권에서 러브콜이 있을 것 같아요.
김상중 없어요. 한때 해프닝이 있었는데.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좋아요. 정치하면 잘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면 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여기서 이렇게 <그것이>를 진행하고 드라마·영화에서 연기하는 게 가장 잘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심의 발견
팬심의 발견은 유쾌한 젠틀맨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2010년·에스비에스)에서 맡았던 까칠한 양병준 캐릭터와 흡사하단 이야기를 주워들어 긴장을 많이 했다. 한데 배우 김상중은 우아한 신사의 모습과 멋지게 나이 든 이의 유쾌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한국 버전의 <킹스맨>이 만들어진다면 해리 하트는 당연히 김상중일 것이다! 이혜지
분석가의 발견은 역발상의 배우
<그것이 알고 싶다>에 대한 그의 열정은 상상을 초월했다. 배우가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진지하고 심각한 이미지가 형성되고, 그로 인해 배우로서의 연기 영역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오히려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하면서 형성된 이미지를 드라마 캐릭터로 풀어내는 그의 역발상이 놀라웠다. 윤석진
호기심의 발견은 깔끔남
사생활을 얘기하는 걸 싫어해서 자연인 김상중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게 없다. 집에서 어떤 모습일까, 쉴 때는 뭐할까 끊임없이 파헤쳤는데, 두루뭉술 넘어가는 가운데 발견한 한가지. “변기가 지저분해지지 않게 소변을 앉아서 눠요. 집에서도 무릎 나온 운동복은 입지 않아요.” 외모만큼 깔끔한 남자 인증! 남지은
넷심의 발견은 이게 다~<그것이>때문
연기나 외모나 맨날 똑같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것이>의 진중한 이미지를 지키려는 열정 때문인 듯하다. 이번에 <어쩌다 어른>으로 친근한 옆집 아저씨 모습을 보여주겠다니 한번 그의 변신을 기대해볼까. 그리고 또 한가지. 우리들 사이에 ‘김상중 머리가 가발’이라는 의혹(?)이 있어 물었더니 “내 머리 가발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네티즌 일동
글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