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룡이 나르샤>(에스비에스)는 조선 건국을 그린 사극이다. 김영현·김상연 작가의 전작 <뿌리 깊은 나무>(에스비에스)의 전세대를 그린 속편이다. <용비어천가>의 2장이 “뿌리 깊은 나무”로 시작하고, 1장이 “해동 육룡이 나르샤”로 시작하는 걸 생각하면 절묘한 작명이다. 그런데 뜻을 음미하면 더 절묘한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본래 <용비어천가>의 육룡은 이성계와 이방원 외에, 이성계의 4대조를 합쳐 부르는 말이다. 즉 이성계의 고조부 이안사부터 아버지 이자춘까지 4명에게 왕의 시호를 붙이고 ‘건국의 아버지’로 추존하는 것이다.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높이려는 작업일 테지만, 여기에는 흥미로운 점이 존재한다. 이안사부터 이자춘까지 족보를 살펴볼수록 왕조의 정통성이 높아지기는커녕, 배신과 변절, 변방성과 모호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안사는 전주에서 원산지역으로 이주해 고려의 병마사가 되었으나, 1252년 몽골군에 투항하여 원나라의 벼슬을 얻는다. 한편 1258년 영흥에서 조휘가 몽골군에 투항하자, 원나라는 쌍성총관부를 설치하고, 조휘를 총관에 임명한다. 이들 두 집안의 벼슬은 4대동안 세습되었는데, 이성계의 조부 이춘의 정략결혼으로 두 집안이 맺어지고, 함흥지역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였다. 그러나 공민왕 때 원의 세력이 약화되자 고려는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였다. 이때 이자춘과 이성계가 조씨 집안을 배신하고 고려군에 투항해 고려의 벼슬을 얻는다.
요컨대 이안사가 고려를 배신하고, 이자춘이 다시 원나라를 배신한 셈이다. 배신의 역사를 접어두더라도, 이성계는 4대 동안 원나라 벼슬을 한 군벌 가문 출신으로 고려에 귀화한 자이니, 고려인으로서 정통성이 약하다. 더욱이 이성계의 출신지는 단순한 변방이 아니라, 백년간 원나라의 통치 지역이었고, 오랫동안 여진족이 살던 곳이다. 이성계에게 원나라, 여진족, 고려의 문화가 뒤섞여 있었을 테니, 고려인의 지지를 얻으려면 그가 원래 고려인임을 강조하는 작업이 필요했을 것이다. <용비어천가>는 이안사가 전주에서 이주한 사연을 세세히 기록한다. 그러나 기생을 둘러싼 지방 관리와의 갈등으로 170호의 주민들을 이끌고 원거리 이주를 했다는 기록을 문자 그대로 믿기는 힘들다. 차라리 이성계의 조상이 본래 함경도 지역 여진족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육룡이 나르샤>는 왕의 조상을 찬양하고 미화하는 <용비어천가>에서 딴 제목을 내세우지만, 드라마 속 육룡은 그들이 아니다. 드라마는 이성계, 정도전, 이방원과 함께 이방지, 분이, 무휼이라는 가상 인물을 담는다. 이들은 이름 없는 백성으로서 고려 말에 가해졌던 온갖 수난을 겪으며 조선 건국에 기여한 인물들을 대표한다. 드라마는 육룡의 사연을 차례로 비추며, 당시 시대상을 그린다. 신분과 욕망이 제각각이지만, 이들이 공유하는 건 한가지이다. 바로 ‘고려에 대한 환멸’이다.
조선 개국은 단지 지배층 몇 명이 바뀌는 사건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혁명의 성격을 지닌다. 또한 조선은 뚜렷한 이념과 설계도에 의해 건국된 나라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드라마는 첫 회에서 이성계 조상을 추존하는 게 아니라 배신의 역사를 그대로 드러낸다. 그리고 조선 건국이 이성계 부자나 몇몇 엘리트에 의한 권력찬탈이 아니라,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꿈꾸었던 탈출구였음을 조명해낸다. 드라마는 탐욕적인 권문세족, 이들보다 더 악랄한 변절한 사대부, 수탈과 학살을 겪으며 “이게 나라냐?”를 외치는 백성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육룡들의 행보와 욕망은 조금씩 어긋나지만, 체제의 종말을 바라는 이들의 염원이 틈새를 메우며 혁명의 합이 맞추어진다. 이 사람들을 보라. “이 썩어빠진 고려를 끝장내야 한다”는 절절한 외침이 들리는가. 극한에 내몰린 국민들의 삶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의 과거를 미화하는 용비어천가를 부르기 위해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는 ‘헬조선’의 국민으로서, ‘헬고려’의 광경을 통해 얻을 교훈은 한가지이다. 그렇다. 혁명밖에 답이 없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