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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엄마보다 중요한 건 ‘엄마의 이름’…멋지다, 쌍문동 태티서!

등록 2016-01-08 17:26

[한겨레21]
집밥 판타지 넘어 솔직한 수다 속 꽃피는 연대
tvN 제공
tvN 제공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은 엄마들의 목소리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프롤로그에서 주요 인물 소개가 끝나고 엄마들의 “밥 먹어라!”는 외침이 쌍문동 골목길을 가득 채우면 아이들이 집으로 달려가면서 본격적인 드라마가 펼쳐진다. 말하자면 이 드라마 최초의 ‘응답’은 엄마를 향해 있는 셈이다. <응팔>이 엄마의 목소리를 과연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 첫 번째 대답은 기존 ‘응답 시리즈’를 관통해온 엄마 캐릭터의 공통점에서 찾을 수 있다. 시리즈 내내 주인공의 엄마로 등장하는 일화(이일화)의 한결같은 특징은 손이 굉장히 크다는 점이었다. <응답하라 1997>에서부터 늘 푸짐하다 못해 넘쳤던 엄마의 밥상은 <응답하라 1994>에서는 신촌 하숙의 학생들을 먹이는 밥상으로, <응팔>에 이르러서는 일화를 비롯한 미란(라미란), 선영(김선영), 엄마 3인방이 쌍문동 골목 사람들 전체를 먹이는 식탁으로 점점 더 확장된다. <응팔>이 추구하는 이상적 공동체 정신의 핵심에는 바로 이 엄마들의 ‘큰손’이 있다.

단지 밥상만의 차원이 아니다. 이 드라마는 줄곧 공동체의 정신적 구심점으로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엄마의 전통적 역할을 강조한다. 딸을 지키기 위해 발에 피가 나도록 달려가는 일화, 가족을 위해 산적한 집안일을 해치우며 안정감을 찾는 미란, 선영의 연극 뒤에서 궁핍함을 알아본 친정 엄마 등 엄마들의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다뤄진 5회와 “엄마는 여전히 나의 수호신”이라는 내레이션은 <응팔>의 보수적인 모성 회귀 판타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제적 문제를 제외하고는 아빠의 부재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 선우(고경표)네와 달리 엄마가 없는 택이(박보검)네는 모두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관리 대상으로 묘사되는 것이나, 성균(김성균)이 돌아가신 엄마 생각에 생일마다 우울해하는 에피소드에서도 뚜렷하게 느껴진다. 요컨대 <응팔>이 재현하는 모성은 최근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퇴행적 ‘집밥 판타지’ 속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에는 계속해서 귀 기울이게 만드는 엄마들의 또 다른 목소리도 있다. 이를테면 그것은 주로 엄마들이 모여 앉은 골목길 평상 위에서 들려온다. 자녀와 남편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하는 고민을 털어놓는 엄마들의 대화에서는 ‘가족의 수호신’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개성적 존재로서 서사가 언뜻언뜻 드러난다. 연하 남편과의 성생활이 불만인 미란, 뒤늦게 자신의 건강이 걱정스러워지는 일화, 고향 오빠 무성(최무성)과의 관계를 고민하는 선영 등 솔직한 수다로 꽃피는 여성적 연대 안에서 엄마들의 목소리는 가족을 떠나 그녀들만의 자리를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

<응팔>이 기존 ‘응답 시리즈’와의 진정한 차별화를 선보일 수 있는 길도 그 가능성에 있다. 기존 시리즈의 공통점이 가부장적인 아버지 성동일(성동일)의 말괄량이 “개딸”이 이끌어가는 청춘성장서사였다면, <응팔>은 거기에 부재하다시피 하던 엄마의 목소리에 비로소 주목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분명 숭고한 모성 판타지라는 한계가 있지만, 우리가 그동안 애써 귀 기울이지 않고 지나쳤던 엄마들의 생생한 목소리도 존재한다. 이 드라마의 팬들이 미란, 일화, 선영(사진)을 인기 걸그룹에 빗댄 “쌍문동 태티서”라 부르며 응원하는 이유도 그 엄마들의 부름에 대한 응답일 것이다. 엄마들은 더 자주 엄마 외의 이름으로 불릴 필요가 있다.

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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