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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가부장제에 대한 호쾌한 날아차기

등록 2016-06-16 14:44수정 2016-06-16 21:31

황진미의 TV톡톡
4부작 드라마 <백희가 돌아왔다>
<백희가 돌아왔다>(한국방송2)의 한 장면.
<백희가 돌아왔다>(한국방송2)의 한 장면.

<백희가 돌아왔다>(한국방송2)는 4부작 코믹 드라마로, 여성주의적인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전설의 싸움짱이자 미모로 이름을 날리던 양백희(강예원)가 엄청난 추문과 함께 고향을 떠난 뒤, 18년 만에 자연요리 전문가이자 의사 남편을 둔 양소희가 되어 섬월도로 돌아온다. 섬사람들은 ‘놀던 년’이 시집은 더 잘 갔다고 수군댄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다르다. 백희는 남편의 도박 빚을 갚아야 한다. 남편은 비웃음으로 일관하지만, 백희는 딸 옥희(진지희)가 결혼할 때까지만 결혼생활을 유지하자고 말한다. 백희 못지않은 당돌함과 싸움 실력을 지닌 18살 옥희를 둘러싼 섬사람들의 반응이 다채롭다. 특히 범용, 종명, 두식은 자신이 옥희의 생부일 수 있다는 생각에 각별한 애정을 쏟는다. 드라마는 옥희의 친부 찾기를 경유하여, 모두에게 합당한 몫이 돌아가는 완벽한 해피엔딩에 도달한다.

여기 극단적인 두 이미지에 둘러싸인 여성이 있다. ‘백희파’의 창시자이자 무수한 염문과 ‘빨간 양말 비디오’의 주인공인 양백희, 그리고 자연요리 전문가이자 신사임당을 존경하는 현모양처로 진수성찬의 식탁을 차리며 딸을 위해 껍데기뿐인 가정을 유지하려는 양소희. 둘 사이엔 아무런 연결점이 없다. 드라마는 18살 미혼모로 홀로 타지에 던져진 백희가 어떻게 자연요리 전문가로 성공하였으며, 동창이었던 남편과 어떻게 재회하여 결혼하였는지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두 개의 극단적인 이미지를 한 몸에 지닌 백희의 분열된 자아를 보여줄 뿐이다. 이는 ‘창녀’와 ‘어머니’라는 극단적인 이미지로 분열된 여성 일반에 대한 비유로 읽힌다.

드라마는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적 평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옥희의 친부 찾기를 통해 밝혀지는 진실은 짝사랑이나 선망이 빚은 우스꽝스러운 오해다. 그러나 언론까지 편승한 ‘빨간 양말 비디오’와 백희가 고향을 떠난 뒤 창궐한 뒷담화는 소문을 증폭시켰다. 뒷담화와 소문과 비디오의 피해자인 양백희는 양소희가 된 후에도 악성 댓글과 스토킹에 시달린다. 뒷담화, 소문, 비디오, 악성 댓글, 스토킹. 이는 가부장적 질서에서 벗어난 여성을 길들이려는 사회 전체가 가하는 폭력이다.

드라마는 모녀 혹은 부녀 관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신의 과거와 단절한 채 정상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던 백희는 옥희와 끊임없이 불화한다. 스스로 억압되어 있는 엄마가 가하는 모순적인 억압을 딸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백희가 감추어온 추문을 안 옥희는 오히려 자랑스러워한다. 옥희는 ‘백희파’의 창시자이자 미혼모였던 엄마를 자신과 동등한 인간으로 놓고 봄으로써 엄마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냉랭한 현재의 아버지 대신 자신에게 정을 쏟는 아저씨(들)을 아버지로 받아들인다.

누가 진짜 아버지인가. 드라마는 ‘누가 엄마랑 잤는가’를 묻는 추문에서 출발하여, ‘아버지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묻는 자성으로 나아간다. 아저씨들은 “옥희가 클 때 무슨 도움을 주었다고”, “개·돼지도 남의 새끼를 몇 년간 품으면 내 새끼인 줄 알 것”, “한번 내 마음에 들어온 딸은 내 딸”이란 말을 들려준다. 이는 무슨 뜻인가. 유전자만 주었다고 아버지가 아니요, 가족으로 산다고 다 아버지가 아니다. 오히려 혈연이나 법보다 중요한 게 ‘아버지 노릇’이다. 드라마는 마지막에 돈을 벌겠다고 가족을 떠나는 아버지도 진정한 아버지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드라마는 비디오, 악성 댓글, 스토킹 등 백희를 괴롭혀온 모든 악을 남편의 짓으로 수렴시키며 18년 만에 뭉친 ‘백희파’가 백희의 이혼을 성사시키는 장면을 카타르시스의 정점으로 삼는다. 그리고 다른 아버지(들)에 의해 옥희가 ‘선도’되고, 백희가 가장 사랑했고 백희를 가장 사랑했던 남자와 새로 사랑을 이어가는 것으로 끝맺는다. 노름꾼인 남편에게 돈가방을 던져주고 이혼하는 백희의 앞날을 응원하는 드라마의 결말은 쿨하다 못해 모골이 송연하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 대한 호쾌한 ‘날아차기’가 아닌가.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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