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드담드담 영국드라마 <뉴블러드>
런던 도심에서 투신자살처럼 보이는 남자의 시신이 발견된다. 교통을 담당하던 젊은 경찰 라쉬(벤 타바솔리)는 이것이 살인이라는 결정적 단서를 찾아내고 경장연수생 기회를 얻어 사건을 계속 수사하게 된다. 같은 시기, 영국 중대범죄수사청(SFO)에 근무하는 신입 요원 스테판(마크 스트레판)은 세계적인 제약회사 ‘유케이(UK) 레미콘’의 비리를 수사 중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조사를 진행해나가던 두 주인공은 단서가 숨어 있는 주요 장소에서 자꾸만 마주치고, 마침내 접점이 없어보였던 두 사건에 6년 전 인도 뭄바이에서 벌어진 임상시험이 관련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지난 달 영국 <비비시>(BBC)에서 방영을 시작한 7부작 드라마 <뉴 블러드>는 직업도, 성격도, 자라온 환경도 다른 두 젊은이가 우연히 만나 함께 거대기업의 범죄를 뒤쫓는 수사극이다. <셜록 홈즈: 실크하우스의 비밀>, <셜록 홈즈: 모리어티의 죽음>과 같은 책으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 영국의 저명한 소설가 앤터니 호로비츠가 각본을 맡아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됐다. 작가의 명성에 걸맞게 플롯도 흥미진진하고, 영국 수사물 특유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와 다르게 감각적인 연출도 눈길을 끈다. 빠르고 현란한 편집과 촬영 등 전체적인 스타일에서 ‘신세기 셜록 홈즈’를 선보였던 <비비시> 드라마 <셜록>의 영향이 느껴지기도 한다.
더 흥미로운 건 핵심 플롯의 이면에 은은하게 깔려있는 현대 영국사회의 조감도다. 최근 브렉시트를 계기로 폭발한 다양한 갈등과 정치사회적 문제가 드라마 전체에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다. 두 주인공의 배경부터가 무척 시사적이다. 라쉬 사야드는 이란에서 벌어진 혁명으로 경찰인 아버지가 사망한 뒤 런던으로 망명한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스테판 코와스키 역시 일자리를 찾아 런던으로 온 폴란드계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났다. 이민자로서 이들의 사회적 소외감은 명시적으로는 크게 드러나지 않되, 일상적으로 겪는 주거불안, 고용불안 등의 고민에 복합적으로 새겨져 있다. 라쉬가 뛰어난 수사실력에도 조직과 섞이지 못하는 것이나, 스테판이 낡고 더러운데다 비싸기까지 한 월세집에서도 오래 머물지 못하는 사연은 그들의 인종적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다.
세대갈등도 심각하다. 라쉬와 파트너 샌즈 경감(마크 애디)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라쉬를 ‘건방지고 새파란 애송이’라 부르며 무시하고 억압하면서도 그의 재능에 어쩔 수 없는 질투를 느끼는 중년의 샌즈는,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신세대를 향한 기득권 구세대의 복합적인 심경을 절묘하게 표현한다. 가난한 스테판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은인이자 상사인 마커스(앨리욘 버케어)의 태도도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위장 잠입 임무 도중 성희롱을 당한 스테판의 괴로움을 묵살하는 그에게, 정의에도 중요 순위는 따로 있다고 믿는 기득권 개혁인사들의 한계가 비춰진다. 이 외에도 자국 기업에 힘을 실어주려는 정부나, 인도를 신약 개발 하청 기지로 삼는 거대기업을 통해 엿보이는 민족주의, 제국주의 등 브렉시트 사태에서 불거져 나온 여러 이슈가 예리하게 번득인다. 혼돈의 시대에도, 영국 대중문화의 저력만큼은 아직 변함없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작품이다.
티브이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