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스>가 <가요무대>도 제꼈다!’ 한 연예 기사 제목이다. 이제 월화드라마가 <가요무대>(한국방송1 월 밤 10시)를 이기면 뉴스가 된다. 6월20일 의학드라마 <닥터스>(에스비에스 월화 밤 10시) 첫 회는 시청률 12.9%(티엔엠에스 집계), <가요무대>는 12.2%를 기록했다. 6월27일에는 각각 12.8%와 11.5%로 차이는 더 벌어졌다. 안심은 이르다. 1985년 시작해 중장년층 이상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가요무대>다. 올 4월부터 6월13일까지 5월23·30일 두 회를 빼고는 모두 동시간대 1위에 올랐다. 건강 상식을 제공하는 <생로병사의 비밀>(한국방송1 수 밤 10시)은 최근 5주 연속 동시간대 1위였다.
<가요무대> <생로병사의 비밀>의 시청률을 견인하는 세대는 짐작하듯 노령 세대다. <가요무대>의 경우 6월13일 평균 시청률 11.6%인데, 고령층인 60대 이상은 남자 14.2%, 여자 14.6%로 평균을 웃돌았다. 반면, 중년층인 50대 여자 시청률은 5%에 불과했다. 티브이 시청층의 노령화는 통계청 자료에도 드러나고 있다. 통계청 ‘2015 고령자 통계’를 보면, 세대별 티브이 시청 시간의 경우 2014년 20~64살은 하루 평균 1시간43분인 반면, 65~69살은 3시간18분, 80살 이상은 4시간37분으로 나타났다. 노령층은 이제 태블릿피시, 모바일 등으로 빠져나간 젊은 시청자들을 대신해 시청률 순위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노령층에 대한 방송계의 관심이 유독 낮다는 점이다. 노령층보다 구매 성향과 구매력이 높고 에스엔에스 등을 통한 화제 전파력 또한 막강한 젊은 세대의 눈길을 끌기 위한 경쟁에만 치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성스럽게 티브이 앞을 지키는 노인 세대에 대한 티브이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인들만의 티브이 월드에 대한 탐색이 요구되는 것은 노인 세대의 티브이에 대한 의존도가 다른 어떤 세대보다 높기 때문이다. 경상남도 합천군에 혼자 사는 강봉학(90) 할머니의 보물 1호는 손자가 사 주고 간 42인치 대형 티브이다. 열여섯에 시집와 평생을 산 동네에 또래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이제 2명뿐. 그나마도 몸이 아프다며 놀러 오는 발길이 부쩍 줄었다. “테레비? 내 제일 친한 친구 아이가. 심심해서 아무 때나 틀어놓고 사람 소리 듣는 기지.” <아침마당>(한국방송1) 진행자가 바뀐다니 “뭘 잘못했다고 구박을 하노” 하며 역정을 낸다. “서운해서 우짜노….” 프로그램 이름은 거의 다 잊어버렸지만 <전국노래자랑>과 <가요무대>만은 또렷하다. 때론 ‘검은 화면’이 나올 때까지 새벽까지 잠이 안 올 때도 많다. 어쩔 수 없이 천장을 쳐다보며 티브이가 ‘사람 소리’를 낼 때까지 뒤척인다.
이런 모습은 도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독거노인 30여명의 안전확인(주 1회 방문, 주 2회 안부전화)을 맡고 있는 서대문노인종합복지관 윤일구(50) 독거노인생활관리사는 “병원 가거나 운동 나가는 시간을 빼면, 독거노인들은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끼고 사신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어르신 티브이 좀 끌까요” 물어보면 그렇게 싫어하신단다. “많이 외로우시니까.” 그는 “어르신들은 일일드라마 줄거리를 꼭 이웃집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처럼 줄줄 읊는다. 나쁜 놈 나왔다고 화내고, 바람피웠다고 또 화내는 식이다. 말벗을 해드리려면 나도 드라마를 안 챙겨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드라마족’도 있지만 하루 종일 뉴스 채널만 보시는 분도 있단다. 요즘은 종편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어르신 중에는 글 모르는 분도 많고 85살 넘으면 동네에서도 어른이라 또래 친구가 없다. 나이가 들수록 티브이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70대 이상 노인들의 인기 프로그램들은 뭘까. 시청률 조사 기관 티엔엠에스(TNMS)에 의뢰해 올해 1월1일부터 6월28일까지 지상파, 종편 포함 352개 채널을 대상으로 연령별 시청률 순위를 추려봤다. 70대 이상에선 역시 ‘일일드라마’가 선전했다. 방송이 끝난 <우리집 꿀단지>(한국방송1)가 1위(36.3%)에 올랐고, 현재 방송 중인 <별난 가족>(한국방송1)이 2위, 주말극 <부탁해요 엄마>(한국방송2)가 3위에 올랐다. <전국노래자랑>(한국방송1)이 18%로 11위, <시니어 토크쇼 황금연못>(한국방송1)이 15.5%로 15위에 올랐다.
지난해 1월 시작한 <시니어 토크쇼 황금연못>은 고령자들이 느끼는 격세지감, 손주 자랑, 요양원 입소 고민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외주제작을 맡은 아이엠티브이(IMTV)의 조성택(41) 피디는 “어르신들을 주인공으로 조명하는 프로그램이 별로 없다. 청년실업도 문제지만 늘어나는 고령 인구를 위한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별난 가족’이 뭔지 아직도 감이 잘 안 오는 당신, 노인들의 티브이 월드는 우리 곁에 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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