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로 변신한 개그맨 김현철이 1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자, ‘아를의 여인’ 중 미뉴에트 한번 해볼까요? 해보고 괜찮으면 이번 공연에 넣을게요. 하프를 대신해줄 악기는 뭘로 하죠? 클라리넷 어떨까요? 잠깐 연주해볼래요?” 지휘자의 조근조근한 얘기에 클라리넷이 기지개를 켠다.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아아 말도 안 돼.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다. 세상 진지한 저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네 맞습니다. 저 맞아요. 왜요? 하하하하.” 보기만 해도 웃긴 남자, 김현철이 변했다.
16일 서울 강남에서 만난 개그맨 김현철은 20일 경기 의정부 예술의 전당 공연을 앞두고 오케스트라 연습에 한창이었다. <무한도전>에 나와 “더이상 웃기는 사람이 아니다”며 지휘자로 변신했다는 얘기를 했을 때만 해도, 취미 삼은 ‘일탈’이겠거니 했다. “2013년 객원으로 연주한 이후, 여기저기서 찾더라고요. 꾸준히 무대에 올랐어요. 12월에는 중국 8개 도시에서 순회 공연도 합니다.” 그는 현재 샤롯아마추어오케스트라 단장과 은평 국제청소년오케스트라 명예지휘자, 홀트 학교오케스트라 명예지휘자를 맡고 있고, 2014년 9월 창단한 자신의 이름을 건 ‘김현철의 유쾌한 오케스트라’도 이끌고 있다.
‘그래 봤자, 개그맨’이라고 얕봤다가는 부끄러워진다. 전문 지휘자만큼은 아니겠지만, 평가가 좋다. 공연을 본 관객들은 김현철의 진지한 모습에 한번, 수준 높은 실력에 두번 놀란다. 특히 ‘클래식 길라잡이’ ‘지휘 퍼포머’를 자처하며 클래식을 친숙하게 느끼게 하려는 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공연마다 곡에 대한 해설을 덧붙이고, 연주를 하면서 머리를 흔드는 등 간혹 재미있는 동작으로 즐거운 감상을 돕는다. 그는 “클래식이 어렵다는 편견이 있는데, 그건 클래식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 곡이 왜 나왔는지, 반복되는 멜로디는 뭘 상징하는지 등 관련 정보를 해설해주면 클래식을 더 친숙하게 느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전문 지휘자보다 액션도 크게 하고 목을 많이 흔들어서 목 디스크도 심하다”며 웃었다.
좋아하는 것에 빠지면 약도 없는 성격이라는 그는 지휘도 독학으로 공부했다. 악보도 보지 못한다고 했다. “매일 음악을 반복해서 듣고 외우고 영상을 보며 지휘 연습을 해요. 악보를 볼 줄 몰라 답답한 부분이나 잘 모르는 부분은 전문 지휘자한테 물어보기도 하는 등의 과정을 반복합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은 곡이 30곡이나 된다. “최근에는 ‘아를의 여인’ 중 미뉴에트를 연습했죠.” 새로운 곡을 외우는 데는 1주일, 지휘까지 해내는 데는 1~2개월 정도 소요된다. “계속 듣다 보면 한 음이던 소리들이 서라운드 식으로 들리기 시작해요. 쉽게 말해 악기가 제각각 소리들을 내지만 하나의 멜로디처럼 들리는 걸 대위법이라고 하는데 이걸 정리한 게 음악의 아버지 바흐이고…” 어쩌고저쩌고, 기계처럼 자동으로 클래식 정보들이 술술 나온다. “원래 잡다하게 습관처럼 외워요. 훈민정음, 국민교육헌장 등을 다 외운다”며, 한참을 읊어댔다.
지켜보니, 누리꾼들 사이 돌고 있는 ‘김현철 천재론’에 믿음이 간다. 지휘 역시, 클래식에 대한 기본기가 있어서 가능했다. 그는 ‘의외로’ 클래식에 조예가 깊다. 1985년 영화 <아마데우스>를 본 이후 30년 동안 모차르트와 클래식 음악에 푹 빠져 살았다. 1994년 갓 데뷔 뒤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도 “당장이라도 음악회에 나가 지휘하고 싶은 게 나의 작은 소원이다”라고 했다. <이숙영의 파워 에프엠>에서 ‘김현철의 어설픈 클래식 음악’을 진행한 지도 5년. 연필로 빼곡히 공부한 노트만 여러 권에 이른다. 주변에서 정규 교육을 받거나 유학을 권하기도 한단다. “딜레마예요. 좀 더 전문적으로 공부하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하는데, 사람들이 나한테 바라는 건 그런 정통성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보시는 분들이, 조언 좀 해주세요.”
지난 16일 김현철이 이끄는 ‘김현철의 유쾌한 오케스트라’ 연습 모습. 오후 7시부터 시작해 밤 10시를 훌쩍 넘겼다. 트럼본 연주자 김성민(29)은 “연습이 재미있고, 즐겁다. 외워서 하는 데도 틀린 부분을 하나하나 잘 지적하는 게 놀랍다”고 했다. 남지은 기자
<무한도전>에 나온 이후 다시 활발히 개그를 해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 클래식을 고민하는 사이, 개그맨 김현철의 존재감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1994년 에스비에스 개그콘테스트 수상 이후 <좋은 친구들>의 ‘제3의 사나이’로 데뷔하자마자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1996년 문화방송 공채 개그맨이 된 이후 <코미디 하우스> ‘1분 논평’으로 인기를 얻었다. 어눌한 말투 속 영특한 재능이 다른 개그맨들과 남달랐다. 얼굴에 팬터마임적인 분위기가 읽힌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치고 올라오는 한 방이 없었다. 들으면 마음 편해지는 클래식처럼, 그는 한 방의 인기에 크게 개의치 않는 듯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는 그가 클래식을 하는 궁극적인 목표도 오래전부터 시도했던 ‘클래식 음악 개그’의 완성이다. “오케스트라 활동이 많이 알려지고 인정받고 나면 개그와 클래식을 접목한 클래식 음악 개그를 하는 게 마지막 목표예요.” 26년 전 ‘제3의 사나이’에서도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뜬금없는 음악에 맞춰 지휘하는 식의 클래식 개그를 선보인 바 있다. “그때는 시대를 너무 앞서갔지만, 이제는 되지 않을까요?” 당장은 연말에 차 한잔 하면서 즐겁게 볼 수 있는 클래식 공연을 계획중이다. 클래식이 왜 좋냐는 우문에 그는 “좋은 데 이유가 있나요. 그냥 너무 좋다”는 현답을 내놨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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