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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대영제국 군주의 위엄은 잠시 잊어라

등록 2016-09-02 19:16수정 2016-09-02 19:19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영국 드라마 <빅토리아>

<빅토리아>는 영국 아이티브이(ITV) 채널이 새롭게 내놓은 시대극이다. 최근까지 <다운턴 애비>, <미스터 셀프리지> 등 에드워드 7세 재위 시절 시대극을 연속으로 성공시킨 아이티브이는 이번엔 시간을 좀 더 되돌려 빅토리아 시대 배경을 선택했다. 단순히 배경만이 아니라 빅토리아 여왕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간 빅토리아 시대 사극은 많았어도 정작 여왕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은 드물었다는 점에서 방영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빅토리아>는 여왕의 긴 생애 가운데서도 18세의 어린 나이에 군주로서 막 첫발을 내디뎠던 시절을 그리고 있다. 앞선 2009년 개봉한, 역시 빅토리아 여왕 초기 시절을 다룬 영화 <영 빅토리아>와 다소 겹치는 이야기다. 그러나 앨버트 공과의 사랑 이야기 비중이 높은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여왕의 내면에 더 초점을 맞춘다. 엄격하게 통제된 삶을 살아온 18세 ‘소녀’ 알렉산드리나가 그녀를 ‘미숙한 여자아이’로만 보는 이들의 편견에 맞서 여왕 빅토리아로 성장하기까지가 주 내용이다.

메인스토리는 역사서에 기술된 여왕의 생애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빅토리아는 실제로 어렸을 때부터 엄마인 켄트 공작부인과 측근 존 콘로이의 강압적인 훈육 아래 고독하고 어두운 성장기를 보냈고 버킹엄궁에 입성하자마자 엄마와 철저히 거리를 두며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이미 ‘역사가 스포일러’이기에 밋밋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에 <다운턴 애비> 스타일의 하층계급 묘사, 총리 멜버른과의 미묘한 관계 묘사처럼 ‘극적 보완’이 가미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극의 핵심에는 어디까지나 여왕의 성장기가 놓여 있고, 이 과정에서 그녀의 심리에 집중하는 섬세한 연출이 드라마에 입체성을 부여한다.

빅토리아와 각료들의 첫 대면 장면이 대표적이다. 전원이 나이든 남성들로 이루어진 각료 집단의 불신에 찬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그들을 향해 꿋꿋이 한발 한발 나아가는 빅토리아를 느리고도 끈질기게 따라가는 카메라는 이 어린 여왕을 짓누르는 압박감과 동시에 왜소한 몸 아래 숨어 있는 강인함을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궁 밖에 몰려온 국민들에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발코니로 나가기 전 그녀는 멜버른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선언서에는 내 이름이 알렉산드리나 빅토리아라고 쓰여 있어요. 난 알렉산드리나는 싫어요. 지금부터는 빅토리아라 불리길 바랍니다.”

결국 드라마가 중점을 두고 그리는 여왕은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군주로서의 위엄 이전에 한 독립적 개체로서 여성의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인물이다. 시대극의 주인공은 지금 여기 대중들의 욕망을 반영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빅토리아>의 재해석은 현대 여성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만하다. 캐스팅 당시만 해도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던 주연 제나 콜먼도 상처 입고 예민한 소녀와, 대담하고 독립적인 신여성의 얼굴을 오가며 군주 빅토리아의 초상을 입체적으로 되살려내 호평을 받고 있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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