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방송·연예

재난에 대처하는 정보전달자들의 사투

등록 2016-09-23 19:28수정 2016-09-23 20:17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드라마 <고베신문의 7일간>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을 위한 시스템 점검으로 인하여 현재 웹서비스가 지연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지난 12일, 경주 지진 발생 직후 국민안전처 누리집이 제공한 정보는 저 문장이 다였다. 관측 사상 역대 최대 규모라는데 지상파는 한 줄 속보를 내보낸 뒤 정규방송을 계속했고 인터넷에서도 짧은 속보 외의 뉴스를 찾기 어려웠다. 국민들은 재난 뒤, 정보의 부재라는 더 큰 재앙을 실감해야 했다.

경주 지진으로 인해 새삼 조명받는 사건이 일본 한신·아와지 대지진이다. 이전까지 지진 안전지대로 꼽혀 대응체계가 부족했던 탓에 유독 피해가 컸던 지역명을 따 고베 대지진으로도 불린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이 참사 이후 지진 대응 시스템을 완전히 바꾼 예를 들어 지금부터라도 대응체계를 마련할 것을 주장한다. 그런데 고베 대지진에서 배워야 할 더 중요한 교훈이 있다. 적어도 주민들은 정보 부재의 고통을 겪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본사와 인쇄 시설이 파괴된 최악의 환경에서도 신문을 발행한 고베신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재난 상황과 고베신문의 사투를 생생하게 기록한 드라마가 바로 <고베신문의 7일간>이다. 2010년 고베 대지진 발생 15주년을 맞아 <후지티브이>가 방영한 이 작품은 하루아침에 집과 가족을 잃고도 비극의 실체를 가늠조차 하지 못했던 주민들에게 자세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했던 고베신문의 실화를 그려낸다. 인터넷 시대 이전 전화도, 텔레비전 전파도 끊긴 상황에서 정보의 존재는 생명과도 같다. 고베신문 사원들은 똑같이 재난을 당한 피해자이면서도, 그 어느 전국지보다 고베를 잘 아는 자신들이 정보를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 하나로 신문을 만들어냈다.

실제 취재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다큐드라마는 비극이 얼마나 무참했고 그것을 담고자 하는 이들의 사투가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임시편집국에서 컴퓨터도 없이 두 대 남은 전화에 의지해 원고를 받아 적는 악조건도 고베신문의 사명감을 막지는 못했다. 물론 그들의 숭고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드라마가 단순히 이를 전하는 데만 그쳤다면 평면적 영웅담과 감동 실화에 그쳤을 것이다. 드라마는 거기서 더 나가 혹독한 비극 앞에서 그것을 어떻게든 재현해야 하는 사명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주저앉은 피해자를 향해 차마 셔터를 누르지 못한 채 오열하고, 엄청난 시신에 할 말을 잃은 채 발길을 돌리는 기자들의 모습은 그들의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고베신문이 모든 악조건과 정신적 위기를 극복하고 찾은 해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이 비극을 생생하게 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난의 규모가 아니라 피해자의 고통을 전하기 위해, 그래서 결코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그들을 절대 잊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추모의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결말은 지금 우리가 앞선 재난에서 배워야 할 가장 시급한 교훈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