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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헤비메탈을 아느냐

등록 2016-10-14 17:24수정 2016-10-14 21:04

[토요판]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사람도 기업도 국가도 모두 흥망성쇠의 흐름을 겪는다. 대중음악의 수많은 장르들도 마찬가지다. 전성기는 끝없이 이어질 것 같지만 어느새 정신 차려보면 좋았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게 되는 건, 다 마찬가지다.

이 시대 아재들의 청춘을 상징하는 헤비메탈이라는 장르도 그랬다. 그 이름부터가 왠지 아재스럽게 느껴지는 헤비메탈의 전성기는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군부정권의 암울한 그늘이 아직 짙디짙던 시절, 미국은 공급의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는 레이거노믹스를 바탕으로 풍요와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세금은 획기적으로 줄고 기업과 중산층의 수입은 반대로 급증하면서 흥청망청 돈과 방종을 즐기는 분위기가 만연했고, 그 토양 위에서 헤비메탈의 질주가 이어졌다.

술과 여자, 파티를 찬양하는 가사로 점철된 음악은 80년대 미국의 정서에 기막히게 잘 어울렸지만 반대로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정권에서 숨죽여 살던 우리 국민들에게는 공감이 될 턱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도 헤비메탈의 전성기는 80년대였다. 왜일까? 답답하고 암울한 현실 속에서 오히려 딴 세상의 환락을 노래하는 음악에 귀를 기울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듣기만 해도 속이 시원한, 감상의 쾌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헤비메탈은 이제 40대가 되었을, 당시 소년(간혹 소녀)들의 귀를 사로잡았고 나 역시 헤비메탈에 경도된 소년들 중 하나였다.

헤비메탈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 앞에서 말한, 신나는 리듬과 멜로디에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식의 가사를 실은 파티록 성향의 음악을 ‘엘에이 메탈’(LA Metal), 혹은 팝메탈이라고 부른다. 치렁치렁한 머리, 화려한 의상과 메이크업을 즐기던 밴드들의 본거지가 엘에이를 위시한 미국 서해안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머틀리크루, 래트, 엘에이 건스, 포이즌 등의 밴드들이 대표 선수들이다. 이와 반대로, 어두운 멜로디에 빠르고 과격한 리듬, 폭력과 절망, 분노 등을 꽉꽉 눌러 담은 헤비메탈을 ‘스래시 메탈’(Thrash Metal)이라고 부른다. 때리다, 부수다, 뒤흔들다 등의 뜻을 가진 이름에서 음악의 특징을 유추할 수 있겠다. 대표적인 밴드로는 국내외에서 모두 스래시 메탈 ‘빅4’라고 공인받는 메탈리카(사진), 메가데스, 슬레이어, 앤스랙스 등이 있다.

내가 처음 헤비메탈에 빠져들었던 때는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87년. 인터넷이 없던 그 시절은 라디오가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경상북도 울진이라는 시골 중의 시골에서 태어나 살다가 갑자기 강남 한복판으로 이사를 와서 극심한 멘탈 붕괴를 경험하고 있던 소년은 매일 저녁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사춘기까지 겹쳐 원인 모를 답답함에 끙끙 앓던 녀석이 강렬한 사운드의 헤비메탈 음악에 빠져든 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지금은 누구보다 사회의 질서에 순응해 살고 있을 많은 아재들이 소싯적 나와 비슷한 감정의 통로로 헤비메탈의 세계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그 시절은 지금처럼 무역이 활발하지 못했고, 문화에 대한 심의와 검열도 무척이나 엄중했다. 외국의 헤비메탈 음반이 정식으로 수입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나온다 해도 심의에 걸려 12곡 중에 5곡이 금지곡으로 묶이는 식의 기형적인 음반으로 발매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돈이 많이 있을 때는 ‘원판’이라고 불리던 외국 수입음반을 샀지만 대부분의 경우 헤비메탈을 듣는 경로는 ‘빽판’이라고 불리던 불법복제 음반이거나 누군가가 원판을 녹음한 테이프였다. 지글거리던 빽판의 소리도, 친구가 녹음해준 공테이프에서 나오던 눅눅한 소리도 메탈신의 복음이니 그저 감사할 뿐. 이래저래 꽉 닫힌 사회에서 자라던 소년들은 작은 자유에도 참 크게 감동했다.

당시 우리 메탈키드들은 늘 몇 가지 정해진 주제로 논쟁을 벌였다. 최고의 기타리스트는 누구인가? 팝메탈은 계집애들이나 듣는 말랑한 음악이고 진짜 메탈은 스래시 메탈인가? 키보드를 사용하는 본조비 같은 그룹은 헤비메탈로 쳐주면 안 되나? 등등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주제로 열을 올리고 심지어 주먹질까지 하곤 했다. 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던 친구와 종종 다투곤 했는데, 녀석은 내가 좋아하는 메탈 밴드들이 악마를 숭배한다며 공격을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복음메탈 그룹인 ‘스트라이퍼’를 들으라고 강요했는데, 나는 스트라이퍼의 음반을 들어보고 이렇게 평해주었다.

“난 이런 한심한 음악을 헤비메탈이라고 불러줄 만큼 너그럽지 못해.”

사실 나는 스트라이퍼를 좋아했다. 무척 너그러운 성격이기도 했고. 다만 녀석이 자꾸 귀찮게 구는 게 못마땅했을 뿐.

문득 궁금해진다. 그 시절 빽판 가게에서 마주쳤던 소년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헤비메탈을 녹음한 공테이프를 대량 제작해서 친구들에게 팔던 안경잡이 녀석은 부자로 살고 있을까?

마음 같아서는 모든 헤비메탈 밴드들을 다루고 싶지만 우리 아재들의 청춘에 오직 헤비메탈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우리들의 영웅 둘만 소개하고 다른 음악 이야기를 해야겠다. 다음 시간, 메탈리카 형님들을 만나러 가자!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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